정치

“계엄 1년, 사과·윤석열 절연 필요”...국민의힘, 중도층 향해 노선 수정 압박

윤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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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책임 공방과 노선 갈등이 맞물리며 국민의힘이 격랑에 휩싸였다. 12·3 비상계엄 사태 1년을 앞두고 당 지도부가 대국민 메시지 발표를 준비하는 가운데, 당내에서는 계엄에 대한 사과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포함할지를 두고 치열한 기류가 드러나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지지율 정체 속에 중도층을 향한 전략 수정 요구가 거세지는 양상이다.

 

국민의힘은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1년에 맞춰 공식 메시지를 내기로 하고 세부 방향과 문구 조율에 착수한 상태다.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메시지 발표 시점과 형식은 조만간 확정되지만, 구체적인 수위는 아직 논의 중이다.

논쟁의 핵심은 계엄에 대한 사과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거리 두기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부처가 될 수도권과 충청권 의원들 사이에서는 대국민 메시지에 계엄 사태에 대한 분명한 사과를 담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전언이다. 계엄과 탄핵 과정에서 이미 민심 이탈을 겪은 만큼, 최소한의 책임 인식이 있어야 중도층 신뢰 회복에 나설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요구도 공개 발언으로 분출되고 있다. 서울 서초을이 지역구인 신동욱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2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언급하며 “대체로 그런 취지의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과의 선을 분명히 긋는 방향이 당 재정비에 필요하다는 취지다.

 

초선 한지아 의원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과 계엄에 대한 진정 어린 사과부터 선행돼야 (당이) 설득력을 갖기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이 계엄과 탄핵의 정치적 부담을 털어내지 못한 채 선거를 치를 경우,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심판론을 피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장동혁 대표가 19일부터 20일까지 진행한 의원들과의 연쇄 회동에서도 유사한 기류가 확인됐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지역과 선수에 관계없이 “당 지지 기반을 중도층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됐다. 이 자리에서는 강경 보수층을 겨냥한 이른바 강성 우클릭 전략에 대한 우려가 나왔고, 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는 당명 변경까지 포함한 대대적 쇄신 요구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과 탄핵 사태를 거치며 치러진 대선에서 패배하고도 뚜렷한 쇄신 방향을 마련하지 못한 데 대한 반성도 쌓여 있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계엄 사태 사과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론이 본격 제기되는 배경에는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여론 지표도 이런 위기감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갤럽이 11월 2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42%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고 답했다. 야당인 국민의힘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35%였다. 한 달 전 조사에서의 여당 다수 39%, 야당 다수 36%와 비교하면 여당 선호가 더 벌어진 셈이다.

 

정당 지지율에서도 국민의힘은 박스권에 갇힌 모습이다. 같은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24%에 그쳤다. 한국갤럽은 “8월 중순 이후 더불어민주당 40% 내외, 국민의힘 20%대 중반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나 10·15 부동산 대책 등 여당발 논란에도 지형이 크게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 수도권 의원은 2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대장동 항소 포기와 10·15 부동산 대책 등 여당의 헛발질만으로도 충분히 민심을 잡을 수 있는데 상식과 거리가 있는 행보로 지지율이 박스권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당 리스크에 기대기보다, 당 스스로의 변화가 뒷받침돼야만 지지율 반등을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계엄 사태를 둘러싼 추가 사과를 두고는 여전히 반론이 맞선다. 당내 일각에서는 탄핵 직후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이미 수차례 계엄 관련 사과를 했다고 보고 있다. 또 사과 메시지가 나올 경우 여당이 국민의힘을 겨냥해 이른바 내란 세력 공세를 강화할 명분을 제공하고, 강성 지지층을 자극해 내부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장동혁 대표의 리더십 구상도 변수로 꼽힌다. 장 대표는 지난 8월 말 당 대표에 선출된 직후 우파 시민 연대론을 내세우며 지지층 결집을 강조해 왔다. 그는 전날 부산에서 열린 국민대회에서도 “하나로 뭉쳐서 싸워야 할 때”라며 단결을 거듭 주문했다. 이 같은 기조는 중도 확장 요구와 충돌할 소지가 있어, 대국민 메시지 수위 조절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추가로, 특검이 추경호 의원에게 청구한 구속영장 심사 결과도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계엄 1년 시점과 맞물려 내란주요임무종사 혐의가 적용된 구속영장이 실제로 발부될 경우, 당내에서는 강경 투쟁론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 이 경우 계엄 사과나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보다는 사법 대응과 정권 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이 재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방향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국민이 판단하는 상식적인 수준의 메시지를 내기 위해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강경 보수층과 중도층 사이에서 균형점을 모색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편 기사에 인용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11월 18일부터 20일까지 사흘간 만 18세 이상 1천 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접촉률은 46%, 응답률은 12.5%다. 세부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계엄 1년 메시지와 향후 사법 변수, 중도층 확장 전략을 함께 검토하며 지방선거 대비 전략을 재정비할 계획이다. 여당과의 공방이 거세지는 가운데, 국회는 향후 회기에서 계엄 책임 공방과 정치개혁 논의를 둘러싸고 한층 치열한 논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윤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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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윤석열전대통령#장동혁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