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패턴은 설계의 문제”…방미통위, 금지행위 명문화로 공백 메운다
디지털 서비스 화면 설계가 이용자의 선택을 교묘하게 왜곡하는 다크패턴 문제가 소비자 피해를 넘어 자기결정권과 자율성 침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탈퇴나 구독 해지 과정에서 반복 확인 창을 띄우거나 경로를 숨기는 식의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대표적이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다크패턴을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행위로 명문화하겠다고 밝히면서, 규제 공백을 메우기 위한 법·제도 정비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와 학계는 다크패턴을 개별 화면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생태계 전반에 스며든 설계 구조로 보고, 인공지능과 초개인화 환경에서 파급력이 더 커질 것으로 우려한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22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와 디지털미래연구소가 공동 개최한 디지털 이용자 권리보장 정책 토론회에서 디지털 환경에서의 설계 구조가 이용자의 선택을 사실상 좌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보량은 폭증했지만 이용자에게 제시되는 방식과 흐름 때문에 특정 선택이 유도되고, 실제보다 선택지가 좁게 인식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개인화와 초개인화 기술 결합으로 서비스가 맞춤형으로 보이더라도, 결과적으로 이용자가 접하는 옵션이 줄어드는 역효과가 커질 수 있다고 봤다. 이용자는 스스로 결정했다고 느끼지만, 어느 지점까지가 자신의 판단인지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다크패턴이 눈에 띄는 기만 행위를 넘어 시스템 전반에 내재화된 구조로 굳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단순한 불편이나 금전 손실을 넘어 시간 낭비, 개인정보 과다 수집, 프라이버시 침해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는 자유로운 의사결정 능력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디지털 플랫폼 설계가 이용자 선택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가 된 만큼, 기술 설계 단계에서부터 이용자 권리 보호 관점이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크패턴을 소비자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게 만들지만 실제로는 다른 결론으로 유도되는 선택 구조라고 정의했다. 가격, 해지 조건 등 핵심 정보가 명확하게 전달돼야 소비자가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데, 화면 설계가 이를 의도적으로 흐릴 경우 자기결정의 전제가 깨진다는 설명이다. 수백에서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온라인 약관을 예로 들며, 과잉 정보가 소비자에게 실질적으로 읽기 불가능한 부담을 지우고 결국 무의미한 동의 버튼 클릭만 양산하는 구조도 다크패턴의 전형적인 모델이라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이러한 기만적 구조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기존 오프라인 환경에도 존재하던 과잉 정보와 불명확한 고지 관행이 디지털 환경에서 더욱 정교하고 자동화된 형태로 진화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특히 인공지능 기반 추천과 맞춤형 인터페이스가 확산되면서, 이용자의 이해력과 디지털 리터러시 수준에 따라 정보 이해도와 선택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편차가 심화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AI가 개개인의 반응 패턴을 학습해 설계를 최적화할수록, 이용자는 자신에게 유리해 보이는 선택지를 제시받는 동시에 특정 방향으로 더욱 정교하게 유도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책 측면에서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다크패턴을 단순 모니터링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우선적으로 다크패턴의 정의와 유형 분류 기준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자가 반드시 준수해야 할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법 위반 시 실효성 있는 제재가 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플랫폼 설계 단계에서부터 사업자가 스스로 위험을 관리하도록 만드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다크패턴 규제와 관련해 여러 부처가 동시에 관여하고 있어 자칫 규제 중복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표시광고법과 전자상거래법을 통해 기만적 영업행위를 규율하고 있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과도한 정보 수집과 동의 절차를 감독한다. 금융위원회는 금융플랫폼과 디지털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의 소비자 보호를 담당한다. 이번에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까지 다크패턴 규제에 나서면서 부처 간 역할 충돌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수경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다크패턴 규제가 여러 부처 소관 법률에 걸쳐 있어 이슈 중복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다크패턴 자체가 소비자에게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피해라기보다, 그동안 투명한 정보 공개 요구가 충분히 이행되지 않은 결과 심화된 문제라고 해석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핵심 정보를 알 권리가 있었지만, 실제 사업자 설계와 운영 과정에서 이 권리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해 해지 경로 숨김, 자동 결제 유도 등 문제 사례가 누적됐다는 분석이다. 그는 새로운 규제를 무작정 추가하기보다 각 부처의 역할과 관할 범위를 명확히 정리하고, 사업자가 어떤 기준을 따라야 하는지 통일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소비자단체는 다크패턴에 대한 명확한 제재 규정과 실질적 패널티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정지연 사무총장은 인공지능 시대에 다크패턴을 어떻게 규율할지는 디지털 소비자 보호의 핵심 과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여러 부처가 앞다퉈 다크패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상황에 대해 규제 중복 우려가 존재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관심과 감독이 강화되는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제도 간 충돌로 인해 규제의 허점이 생기거나, 각 기관이 책임을 서로 미루는 공백 상황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규제 중복보다 규제 공백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주연 조사기획총괄과장은 다크패턴을 특정 서비스의 사용자 경험 차원이 아니라 공정한 시장 질서와 소비자 신뢰, 나아가 디지털 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과제로 규정했다. 방미통위는 전기통신사업법을 근거로 다크패턴 관련 점검 조사를 강화하고, 나아가 다크패턴 행위가 법상 금지행위 조항에 직접 포섭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통신과 플랫폼 서비스 전반에 대해 탈퇴 방해, 정보 비대칭 설계, 과도한 동의 유도와 같은 행위를 명확히 제재하겠다는 의도다.
조 과장은 현재 공정거래위원회 법령만으로는 디지털 서비스 환경 전반에서 발생하는 다크패턴을 포괄적으로 규율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특히 통신 인프라와 결합된 플랫폼 서비스 영역에서 해지, 요금제 변경, 부가서비스 가입처럼 통신사업 특유의 절차가 얽힌 사례가 많아, 통신 분야 특성을 반영한 별도 기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크패턴 근절을 위해 공정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와 공동 대응을 이어가되, 동일 사안에 대한 중복 조사를 막기 위해 조사 범위와 역할을 조율하는 협력 체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류신환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비상임위원은 이용자 보호와 서비스 혁신 촉진 사이의 균형을 강조했다. 디지털 경제에서 서비스 설계 실험과 사용자 경험 개선은 필수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이용자의 자율성과 정보에 기반한 선택권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다. 류 위원은 관련 제도의 정비와 가이드라인 보완을 통해 사업자가 사전에 위험을 인지하고 설계 단계에서부터 다크패턴을 회피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민관 협력 채널을 통해 플랫폼 사업자, 학계, 시민단체가 함께 논의하는 구조를 마련해, 규제와 혁신이 충돌하기보다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도록 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전문가들은 다크패턴 규제가 단발성 점검이나 캠페인 차원에 머물 경우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알고리즘과 인터페이스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환경에서, 법과 제도도 정기적으로 재검토하고 개선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용자 교육과 디지털 리터러시 강화가 병행되지 않으면, 새로운 형태의 다크패턴이 등장할 때마다 뒤늦게 대응하는 상황이 반복될 위험도 있다. 산업계는 이용자 보호 원칙을 설계 기준으로 내재화할 수 있을지, 정책 당국은 부처 간 역할 분담과 규제 공백 해소에 성공할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기술과 윤리, 산업과 제도 간 균형이 디지털 사회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좌우하는 조건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