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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얼굴 1달러 주화” 민주당 제동…정치 양극화 상징 논란

임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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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새긴 1달러 수집용 기념주화 발행을 둘러싸고 미국 정치권의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 재집권 이후 연방 정부의 상징물과 기념 사업 전반에 친트럼프 색채가 강화되는 가운데, 이번 주화 논란은 행정부의 상징정치와 의회의 견제가 정면 충돌한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내년 미국 건국 250주년을 앞두고 상징 자산을 둘러싼 정치적 프레이밍 경쟁이 격화되는 양상으로, 미국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9일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제프 머클리 오리건 상원의원과 캐서린 코테즈 매스토 네바다 상원의원 등 민주당 인사는 살아 있거나 재임 중인 대통령의 초상을 미국 통화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체인지 커럽션 법안을 10일 상정할 계획이다. 법안 초안에는 어떠한 미국 통화에도 생존 또는 현직 대통령을 닮은 초상이 등장해선 안 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최근 재무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트럼프 대통령 1달러 기념주화 초안에 직접적인 제동을 거는 장치로 해석된다.

논란의 대상이 된 주화는 내년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해 발행이 검토되고 있는 1달러 수집용 기념주화다. 유통을 전제로 한 실질적인 통화는 아니지만, 미국 통화 체계와 동일한 형식 위에 현직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사실상 국가 상징 체계의 개편 시도에 가깝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미국 재무부는 현행 법령상 수집용 목적의 1달러 기념주화를 발행할 수 있고, 2024년에는 해리엇 터브먼과 이른바 위대한 세대를 기리는 기념주화를 선보인 바 있다.

 

재무부는 지난 10월 공개한 트럼프 대통령 기념주화 초안을 통해 이번 발행 추진의 의미를 적극 부각했다. 당시 재무부는 급진 좌파의 강압적 셧다운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 리더십 아래 미국은 건국 250주년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강하고 번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화당과 트럼프 지지층의 정치적 서사를 재무부 공식 메시지에 반영한 것으로, 기념주화가 단순한 수집품을 넘어 정치 캠페인과 유사한 상징 효과를 노린 것으로 읽힌다.

 

공개된 초안 이미지에는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치켜든 트럼프 대통령이 묘사돼 있고, 전면에는 싸우자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가 세 차례 반복돼 새겨져 있다. 미국 대통령 초상 표기 관행과 달리 투쟁적 구호가 반복된 디자인은, 전통적으로 통화가 강조해온 통합과 안정의 이미지와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비판을 키우는 요소로 꼽힌다. 특히 지난해 펜실베이니아 유세 도중 피격된 뒤 비밀경호국 요원들의 호위 속에 퇴장하던 장면과 구도가 유사하다는 해석까지 더해지며, 일부에서는 개인 영웅화를 노린 연출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민주당 측은 역사적 관행과 제도적 안전장치를 근거로 강경 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다. 머클리 의원 등은 미국 순환 통화에서 살아 있거나 재직 중인 대통령의 초상을 사용한 전례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생존 대통령을 화폐에 올리는 순간 통화가 특정 정치세력의 선전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머클리 의원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가 북한 김정은을 연상시키는 권위주의적 상징정치라고 비판하며 이번 법안 추진 필요성을 재차 부각했다.

 

통화와 기념주화는 전통적으로 국가 정체성과 민주주의의 역사를 집약하는 매체로 기능해왔다. 미국의 경우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나 역사적 합의가 이뤄진 상징물을 중심으로 초상과 문구를 배치해 왔고, 생존 인물 기재에 대해서는 사실상의 금기 관행이 이어져 왔다. 민주당이 이를 입법으로 명문화하려는 움직임은, 특정 정권이 재량권을 활용해 통화 디자인을 정치화하는 흐름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다만 실제 법제화까지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미 상원과 하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확보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의 당내 영향력도 여전한 만큼 해당 법안이 상임위 심사와 본회의 표결 단계를 모두 통과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공화당 내 강경 지지층이 기념주화를 트럼프 재집권의 상징으로 소비하고 있는 상황 역시 민주당의 입법 전선을 어렵게 만드는 변수로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미국 정치가 공공 상징을 둘러싸고 벌이는 헤게모니 경쟁의 전형적 사례라고 진단한다. 통화 디자인과 기념주화 발행은 통상 행정부와 재무부의 기술적 절차로 여겨져 왔지만, 정치 양극화 심화로 인해 정책 영역 대부분이 진영 간 상징 경쟁의 장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학계에서는 향후 건국 250주년을 둘러싸고 기념 사업, 디지털 콘텐츠, 공공 인프라 명칭 등 다양한 영역에서 유사한 상징 경쟁이 확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트럼프 기념주화 논란은 한 국가의 화폐가 어디까지 정치성을 띨 수 있는지, 누구의 역사 해석을 전면에 둘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힘겨루기 속에서 최종 발행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미국 사회가 통합을 상징해야 할 공적 자산마저 진영 갈등의 무대로 끌어들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다. 산업계와 금융권에서도 이번 논란이 실제 발행 여부를 넘어 미국 통화와 금융 시스템의 상징성과 신뢰도에 어떤 장기적 영향을 남길지 주시하는 분위기다.

임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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