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값 더 못 올린다”…미국, 전기차 혜택 종료·고물가에 자동차 시장 냉각 우려
현지시각 기준 지난달 30일, 미국(USA) 전역 자동차 시장에서 물가 상승과 고용 둔화, 전기차 세액공제 종료 등 복합 요인이 겹치며 판매 둔화 조짐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기차 세제 혜택 축소와 소비 위축이 맞물리면서 신차 수요가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고 전하며, 이번 흐름이 글로벌 자동차 산업과 전기차 보급 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지시각 기준 9월 말을 끝으로 최대 7천500달러에 달하던 미국 연방 전기차 세액공제가 종료된 뒤, 10월 들어 미국 자동차 판매 속도가 1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고 WSJ는 전했다. 세액공제가 유지되던 3분기까지는 인센티브에 힘입어 전기차 중심의 수요가 앞당겨지며 완성차 업체 실적이 호조를 보였지만, 지원이 끊기자 시장 열기가 급격히 식어가는 양상이라는 설명이다.

WSJ는 딜러 인터뷰와 업계 자료를 토대로 미국 소비자들이 신차 구매 가격에 명확한 상한선을 두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물가 상승과 대출 금리 부담, 관세 인상 가능성이 겹치면서 구매를 유보하거나 차급을 낮추는 ‘절약형 소비 패턴’이 자동차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텍사스주 동부에서 자동차 대리점을 운영하는 로버트 펠티에는 고객들이 구매 상담 단계부터 월 납입액 부담을 먼저 따지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그는 “고객들이 ‘이걸 어떻게 감당할 수 있나’라고 되묻는 일이 많아졌다”며, 비교적 가격이 낮은 소형 SUV 쉐보레 트랙스 같은 차종에 대한 문의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뉴욕주 뉴로셸의 쉐보레 대리점을 운영하는 마이클 사사노도 오프라인 전시장과 웹사이트 방문자 수가 모두 감소했다며, “지금 한 달에 500달러를 내고 있는데 700달러까지 늘리고 싶지 않다”는 소비자들이 구매 결정을 미루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조치는 주변 산업에는 상반된 파장을 미치고 있다. 소비자들이 신차 교체 주기를 늘리면서 보유 차량을 더 오래 사용하는 경향이 강해지자, 정비·수리 등 자동차 서비스 부문은 오히려 수요가 늘며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WSJ는 분석했다. 반면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세액공제 종료와 수요 위축이 겹치며 매출 감소 압박에 직면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당초 코로나19 팬데믹과 반도체 공급난 충격에서 벗어난 미국 자동차 업계가 생산 정상화를 바탕으로 3년 연속 연간 판매 증가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최근 판매 속도 둔화가 이어지면서, 올해 판매가 거의 늘지 않거나 소폭 증가에 그칠 수 있다는 수정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이는 미국 자동차 시장 회복 국면이 예상보다 빨리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소득 계층에 따라 소비 여력이 갈리는 ‘K자형 경제’ 현상이 자동차 시장에서도 본격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자산이 늘어난 일부 고소득층은 인플레이션 상황에도 열선 스티어링 휠, 마사지 시트,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등 고급 옵션을 갖춘 SUV와 픽업트럭에 적극 지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중·저소득층은 가격 민감도가 크게 높아지며 차량 교체 시기를 늦추거나 더 저렴한 차종과 중고차를 선택하는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다.
WSJ는 이러한 양극화가 전기차 보급에도 변수를 던지고 있다고 전했다. 고소득층 중심의 고가 전기차 수요는 어느 정도 유지되더라도, 세액공제 종료로 중산층과 서민층의 전기차 접근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기차 초기 시장을 이끌어온 미국 수요가 둔화할 경우,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전동화 전략과 투자 계획에도 조정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미국 자동차 시장의 둔화는 주요 교역 상대국에도 파급 효과를 줄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 완성차와 부품을 수출하는 한국, 일본(Japan), 유럽(Europe) 업체들은 전기차 세제 환경 변화와 수요 위축을 반영해 생산·수출 계획을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동시에 각국 정부가 자국 내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어떤 인센티브와 규제 조합을 택할지에 따라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구도도 달라질 수 있다.
시장에서는 향후 미국 연방 및 주정부 차원의 새로운 전기차 지원책, 금리 인하 여부, 노동시장 흐름 등이 자동차 수요 회복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세제 혜택 축소와 고물가 압력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 자동차 시장의 성장세가 완만한 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며, 이번 흐름이 글로벌 자동차 산업과 전기차 전환 전략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 주목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