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입법, 국민 눈높이에 맞게”…이재명, 정청래·김병기와 만찬 회동
정기국회 후반 정국을 둘러싼 개혁 입법을 두고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맞붙었다. 사법개혁 법안을 밀어붙이던 민주당은 대통령 메시지를 계기로 속도조절에 나선 가운데, 내년 정국 구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점쳐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9일 저녁 서울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병기 원내대표와 2시간 30분가량 만찬 회동을 갖고 사법개혁을 포함한 국정 전반을 논의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개혁 입법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처리되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왜곡죄 신설 등 민주당이 추진해 온 사법개혁안에 대해 국민 여론과 헌법적 정합성을 함께 고려해 달라는 주문으로 해석된다. 사법부에 대한 개혁 요구는 인정하되, 위헌 소지가 제기된 조항은 입법과정에서 충분히 걸러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민주당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둘러싸고 법조계뿐 아니라 당내에서까지 위헌 우려가 제기되자 추가 숙의 절차에 착수했다. 정당한 사법개혁이라는 명분과 권력분립 침해 논란 사이에서 수위를 조정하는 국면이다. 당 지도부는 법안 수정 여부를 포함해 속도조절을 검토하며 후속 일정을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앞서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 출연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방향과 관련한 대통령 구상을 일부 전했다. 우 수석은 당시 “내란전담재판부를 설치하되, 2심부터 가동하는 것이 지혜롭지 않으냐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 1심 재판부의 독립성과 2심 제도의 전문성을 병행하는 절충안 성격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이 대통령은 만찬 자리에서 외교 현안도 직접 설명했다. 그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진행한 중동·아프리카 4개국 순방 성과를 공유하며 “한국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더라”는 소회를 밝혔다고 박 수석대변인은 전했다. G20 무대와 신흥 지역 순방을 통해 외교·경제 지평을 넓혔다는 인식이 반영된 발언으로 보인다.
지난 2일 국회에서 여야가 내년도 예산안을 합의 처리한 데 대한 평가도 나왔다. 이 대통령은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에게 “고생이 많았다”고 말하며 합의 처리 과정의 노고를 격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 대치가 반복된 정기국회 상황에서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일단의 협치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국정 전반, 특히 민생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눴다”며 만찬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좀 더 자주 만남을 갖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 간 정례적 소통 채널을 가동해 민생·개혁 어젠다를 사전 조율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날 회동은 올해 정기국회 폐회를 계기로 마련됐으며,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지적 사항에 대한 후속 조치 논의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각 부처 정책 보완 과제와 함께, 사법개혁과 민생 법안 추진 전략이 함께 테이블에 오른 셈이다.
한편 여당 내부 현안도 회동의 숨은 의제로 거론됐다. 정청래 대표의 핵심 공약인 1인1표제가 당 중앙위원회 표결에서 부결되고, 최고위원 보궐선거가 친명, 친청 구도로 비치는 상황을 두고 당 내홍 우려가 제기돼 왔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대통령이 이번 만찬을 통해 당내 계파 갈등 이미지를 누그러뜨리려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사법개혁 법안의 위헌 논란과 여당 내부 구도는 향후 국회 일정과 정국 운영에 직접적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민주당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등 쟁점 법안의 수위와 방식 조정에 나설 경우, 야당과의 협상 구조 역시 재편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회는 향후 회기에서 사법개혁 후속 입법과 민생 예산 집행 점검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