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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의 밤 첫 법적 판단 임박”…한덕수, 내란 방조 재판 마무리 단계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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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을 둘러싼 책임 공방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방조 혐의가 법정에서 정면 충돌했다. 내란 혐의로 기소된 국무위원 사건 가운데 첫 선고가 예고되면서 정치권과 법조계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이진관 부장판사는 24일 한 전 총리에 대한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사건 속행 공판을 열고 피고인 신문을 진행한다. 이어 26일에는 특별검사팀의 구형과 한 전 총리의 최후 진술을 듣는 결심공판을 진행한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 사건 선고 기일을 내년 1월 21일이나 28일 중 하루로 고지한 상태다. 일정대로라면 지난 9월 16일 첫 공판준비기일 이후 약 4개월 반 만에 1심 판단이 내려진다.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는 국무위원들 가운데 가장 먼저 법원의 판단을 받는 셈이라 다른 관련 재판의 기준점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재판부는 심리 속도를 높이기 위해 10월에는 매주 한 차례, 11월에는 매주 두 차례씩 공판을 열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실 폐쇄회로TV 영상과 국무위원 다수의 법정 증언이 공개되며 이른바 계엄의 밤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법정에 제출된 대통령실 CCTV 영상에는 계엄 선포 당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의 동선과 행동이 담겼다. 영상 속에서 한 전 총리가 윤 전 대통령의 특별 지시사항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을 꺼내 읽는 장면,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필요성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 등이 확인됐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한 전 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접견실에 남아 약 16분간 서로 가진 문건을 돌려보며 협의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 과정에서 이 전 장관이 웃는 표정을 짓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한 전 총리 재판에는 모두 9명의 당시 국무위원이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 선포 전후 상황을 증언했다. 일부 증인은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 뒤에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또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전 총리에게 "50년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려 하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다고 증언했다.

 

최 전 부총리는 이 전 장관을 겨냥해 "예스맨이니 노라고 못했겠지"라고 말했다고도 법정에서 밝혔다. 박상우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무위원으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이 벌어졌다"며 "국무위원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해 다른 증언과 대비되는 인식을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은 증인으로 법정에 나와 한 전 총리가 계엄을 반대하는 취지로 자신을 설득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한 전 총리 측은 이를 근거로 적극적인 내란 가담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고, 특검 측은 CCTV 영상과 다른 증언들을 토대로 방조 혐의 입증에 주력하고 있다.

 

재판 진행 과정에서 이진관 부장판사의 직설적인 질문과 강경한 법정 관리도 주목을 받았다. 이 부장판사는 한 전 총리에게 "비상계엄 그 자체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고 당시 많은 경찰과 무장 군인이 투입된 점이 확인됐다"며 국민을 위해 어떤 조치를 했는지 따져 물었다. 박 전 장관의 "국무위원들도 피해자" 발언에는 "그렇게 말하는 게 적절하냐"고 질타했다.

 

증언을 거부한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는 "당당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하고픈 말은 없느냐"고 질문을 던지며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증인들의 소극적 태도와 책임 회피성 답변을 정면으로 비판한 셈이다.

 

이 부장판사는 소환에 불응한 주요 증인들에게는 과태료와 구인영장을 잇따라 발부하며 재판부 권한을 적극 행사했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이 전 장관이 예정된 증인신문 기일에 출석하지 않자 곧바로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하고 구인영장을 발부했다.

 

이상민 전 장관은 지난 19일 재소환에 응해 법정에 나왔으나 증인선서를 거부했고, 재판부는 과태료 50만원을 추가로 부과했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은 재소환에도 불응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재판부가 구인영장 집행을 시사하자 입장을 바꿔 당일 공판에 출석했다.

 

김 전 장관 측 대리인단을 둘러싼 법정 소동도 있었다. 19일 공판에서 김 전 장관 측 변호인 이하상·권우현 변호사가 증인 신뢰관계인 동석을 요구했으나 이 부장판사가 받아들이지 않자, 두 변호사는 법정에서 거칠게 항의했다. 재판부는 퇴정을 명령한 뒤 두 변호인에게 감치 15일을 선고했다.

 

다만 감치 집행 과정에서 서울구치소가 두 변호사의 인적 사항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했고, 법원은 집행이 곤란하다고 보고 같은 날 집행명령을 정지했다. 석방된 두 변호사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이 부장판사를 노골적으로 비난했고, 서울중앙지법은 관련 발언에 대해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 전 총리 1심 선고는 12·3 비상계엄 전반에 대한 첫 본격 판단이 되는 만큼, 다른 국무위원과 군 지휘부 등 관련 내란 사건 재판의 양형과 책임 범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도 향후 판결 내용을 토대로 당시 청와대와 내각의 책임 공방을 재정비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중앙지법은 한 전 총리 사건 선고 이후 다른 내란 사건도 순차적으로 심리한다는 방침이다. 정국의 핵심 뇌관이 된 비상계엄 책임 논쟁이 법원의 1차 판단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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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윤석열#이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