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시민 아닌 임시정부 요인 자격으로 환국"…김민석 총리, 최고예우로 맞았다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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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기억을 둘러싼 국가와 시민의 간극이 좁혀졌다. 광복 80년을 맞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 장면이 80년 만에 후손들의 발걸음으로 되살아나면서, 정부가 최고 수준의 예우를 내세워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섰다.

 

23일 오후 서울 김포공항에서 정부 주관으로 임시정부 요인 환국 재현 행사가 열렸다. 1945년 11월 23일 임시정부 요인들이 귀국한 날을 기념해, 당시 입국 장면을 후손들이 재현하며 역사적 의미를 국민에게 다시 환기하는 자리였다.

청자색 한복을 차려입은 독립운동가 후손 17명이 오른손에 태극기를 들고 입국 게이트를 통과하자, 육군·해군·공군·해병대와 전통의장대로 구성된 의장대가 도열해 사열을 실시했다. 과거 국제정세의 제약 속에 '시민 자격'으로 입국했던 임시정부 요인들과 달리, 이번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자격에 걸맞은 공식 의전이 준비됐다.

 

입국장에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우원식 국회의장 등 주요 인사들이 미리 대기해 후손들을 맞이했다. 두 사람은 한 명 한 명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환영의 뜻을 전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일부 후손들은 눈물을 훔치며 격정에 잠긴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김구 선생의 후손인 김진 광복회 부회장은 환국성명에서 당시 김구 선생의 발언을 되새기며 "나와 우리 동료는 일개 시민의 자격이 아닌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의 자격으로 오늘 당당하게 귀국했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감동적이고 감개무량하다"고 소회를 밝힌 뒤 "우리 모두 완전히 독립 자주할 통일된 새로운 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동포들과 함께 공동 분투하자"고 강조했다.

 

김민석 총리는 환영사에서 임시정부의 역사적 위상을 부각했다. 그는 "임시정부는 국권을 빼앗긴 암흑 속에서도 국체를 민주공화제로 선언해 대한민국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대한민국의 뿌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총리는 또 "광복 80주년을 맞는 오늘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을 공식적으로 환영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현재의 도전 과제와 연결해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혹독한 식민 치하에서 모든 것을 걸고 독립을 위해 싸우셨던 선열들의 고난과 용기를 떠올린다면 넘지 못할 벽은 없다"고 강조했다.

 

입법부 수장으로 참석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임시정부의 역할 재평가와 정신 계승 의지를 드러냈다. 우 의장은 "이번 행사가 뒤늦게나마 임시정부의 역할과 기여를 제대로 세우고 그 정신을 올곧게 계승해 나가겠다고 하는 우리의 의지를 굳게 다지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우 의장은 자신의 외조부인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을 언급하며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어 "해방된 조국 땅을 다시 밟아보지 못한 채 이름 없이 쓰러져간 독립운동가들을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회의장이 독립운동가 후손의 입장에서 아픔을 공유하며, 국가 차원의 기억과 책임을 거듭 강조한 셈이다.

 

행사장 곳곳에서는 후손들의 복잡한 심경이 교차했다. 공연과 환영사가 이어지는 동안 일부 후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독립유공자 윤기섭 선생의 후손 윤한옥 여사는 취재진에 "아버지께서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며 "아버지 생각을 하니까 기쁘면서도 눈물도 난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부가 임시정부 요인 환국을 공식 행사로 재현하고 최고 수준의 예우를 내세우면서,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둘러싼 역사 인식 논의도 다시 주목받을 전망이다. 정치권은 광복 80주년을 계기로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 예우 제도, 역사교육 강화 방안 등을 두고 추가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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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총리#우원식국회의장#김진광복회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