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토큰화는 기능 업그레이드 아니다”…스위프트 임원 발언, 블록체인 진영과 인프라 주도권 경쟁 재점화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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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2일, 국제은행간통신협정 스위프트(Swift)가 토큰화의 의미를 둘러싼 신경전에 다시 불을 지폈다. 톰 자크(Tom Zschach) 최고혁신책임자가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토큰화를 “금융이 청구권을 뒤섞는 것을 멈추고 진실을 동기화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라고 규정하면서, 전통 금융 인프라와 블록체인 기업 간 주도권 경쟁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 이번 메시지는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경영진이 토큰화를 “시장 인프라의 차기 주요 진화”로 평가한 직후 나온 반응이라는 점에서 국제 금융권의 이목을 끌고 있다.

 

유투데이(U.Today)에 따르면 자크는 토큰화가 “단순한 기능 업그레이드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전환과 연결짓는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과거 사설 토큰을 국경 간 결제의 ‘가교 통화’로 사용하는 구상을 팩스기에 빗대며 구식 솔루션이라고 평가한 바 있고, 그 과정에서 리플(Ripple)의 리플 XRP(XRP) 토큰을 은행들이 실제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 블록체인 업계의 반발을 산 인물이다. 이번 발언 역시 특정 프로젝트를 거명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기존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 결제 토큰 모델에 대한 견제성 메시지로 해석하고 있다.

스위프트 임원 토큰화는 기능 개선 아닌 금융의 진실 동기화
스위프트 임원 토큰화는 기능 개선 아닌 금융의 진실 동기화

자크의 메시지는 블랙록의 이코노미스트 기고에 대한 일종의 응답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와 롭 골드스타인 최고운영책임자는 최근 토큰화를 “시장 인프라의 차기 주요 진화”로 규정하며, 전통 자산을 디지털 토큰으로 전환하는 실물자산(RWA) 토큰화의 잠재력을 강조했다. 스위프트는 이에 대해 토큰화를 단순한 ‘디지털 포장’이 아니라 금융 청구권과 데이터가 일관되게 관리되는 새로운 신뢰 인프라의 출발점으로 묘사하면서, 글로벌 메시징 네트워크로서의 역할을 재정의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유투데이는 자크가 리플 XRP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그가 과거 리플 기술을 비판해온 전력을 고려하면 이번 발언이 블록체인 기반 결제 솔루션에 대한 원칙적 거리두기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리플 XRP 레저는 지난 10월 다목적 토큰(MPT) 업그레이드를 통해 복잡한 금융 상품과 구조화 증권의 온체인 구현을 지원하면서, 기관 투자자와 금융사들을 겨냥한 토큰화 전략을 강화해 왔다. 리플은 시큐리타이즈(Securitize)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펀드 간 교환을 지원하는 등 생태계 확장을 시도 중이다. 이런 진전이 스위프트의 기존 네트워크 모델을 잠재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견제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관측이 뒤따른다.

 

다만 외신 보도에 대한 비판적 검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크의 발언이 리플 XRP의 기술적 진보를 의도적으로 폄하했다는 주장은 매체의 추론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당사자 발언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스위프트가 언급한 ‘진실 동기화’ 개념은 각 금융기관과 중앙 인프라 간 장부 불일치를 줄이고, 중앙화된 신뢰 원장을 통해 거래와 정산 데이터를 일관되게 관리하겠다는 방향성을 가리킬 수 있다. 반면 퍼블릭 블록체인은 네트워크 참가자 다수의 검증을 통해 탈중앙화된 합의를 추구한다. 양측의 목표는 ‘신뢰 확보’라는 점에서 겹치지만, 접근 방식과 거버넌스 구조는 크게 다르다.

 

토큰화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변수도 기술적 우수성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국제 금융 규제 준수, 자금세탁방지(AML)와 고객확인(KYC) 체계 연계, 기존 금융 시스템과의 상호 운용성, 기관급 유동성 확보 등이 핵심 조건으로 꼽힌다. 리플을 포함한 여러 블록체인 기업이 토큰화 인프라를 확장하고 있지만, 실제 은행권·대형 운용사 수준에서의 대규모 도입 속도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각국 규제환경의 불확실성과 토큰화 자산의 법적 지위, 투자자 보호 장치 미비 등도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실물자산 토큰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인식된다. 블랙록을 비롯한 글로벌 자산운용사와 대형 은행들이 채권, 부동산, 펀드 지분 등을 온체인 형태로 발행하거나 시험하는 프로젝트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 속에서 스위프트는 자체 표준과 메시징 네트워크를 활용해 다양한 블록체인과 중앙집중식 시스템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자임하며, 기존 금융권의 신뢰를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반면 리플과 같은 블록체인 기업들은 퍼블릭 혹은 허가형 분산원장을 전면에 내세워 기존 중개자를 축소하고 거래·결제의 효율성을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주요 글로벌 매체들도 토큰화 경쟁 구도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USA)의 경제 전문지와 통신사들은 블랙록 등 대형 운용사의 참여를 “RWA 토큰화의 전환점”으로 평가하면서도, 규제 리스크와 거버넌스 문제를 반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유럽(Europe)의 일부 언론은 스위프트가 규제 친화적인 ‘중간지대’ 인프라를 제공할 가능성에 주목하며, 전면적 탈중앙화보다는 점진적인 디지털 전환 시나리오를 조명하고 있다. 한편 블록체인에 우호적인 매체들은 리플 XRP 레저의 기술 업그레이드와 파트너십 확대를 집중 조명하며, 기존 메시징 네트워크 의존도를 낮추는 새로운 금융 아키텍처의 가능성을 부각하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금융 인프라 시장이 단순한 자산의 디지털화 단계를 넘어 거래와 결제, 청산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는 ‘동시성 인프라’ 확보 경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스위프트 중심의 레거시 시스템과 블록체인 기반 신규 네트워크가 어느 수준까지 상호 보완적으로 융합할지, 혹은 규제와 이해관계 충돌 속에서 배타적 경쟁 구도를 이어갈지가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국제사회와 각국 규제당국이 어떤 표준과 인프라 모델에 힘을 실어줄지에 따라 글로벌 금융 질서의 판도가 바뀔 가능성도 제기된다. 토큰화를 둘러싼 스위프트와 블록체인 진영의 인프라 경쟁이 향후 국제 금융 관계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 주목된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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