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의약 비밀유지약정…한캐나다 규제공조로 공급망 대응
식품과 의약품 안전 관리 체계가 국경을 넘어 연결되고 있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캐나다 보건부가 식의약 분야 비밀유지약정을 체결하며, 두 규제 당국 간 정보 공유와 공동 대응의 폭이 크게 넓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신기술 기반 의료제품 확산 속에서 양국이 안전성 정보와 규제 동향을 실시간에 가깝게 교환하는 구조를 갖추면, 허가 심사 효율과 위기 대응 속도가 모두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이번 약정이 의료기기 단일심사제도 참여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한국 기업의 북미 진출 전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27일 캐나다 보건부와 식의약 분야 상호협력을 위한 비밀유지약정을 체결했다고 3일 밝혔다. 한국 측에서는 우영택 기획조정관이, 캐나다 측에서는 Linsey Hollett 규제운영집행국 차관보가 체결권자로 참여했다. 이번 약정은 영상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양국 규제 당국이 서로 비공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식 채널을 제도화했다.

약정의 핵심은 식품과 의료제품 전반에 걸친 정보 공유 범위를 명문화했다는 점이다. 식품 분야에서는 안전성, 영양학적 품질, 공중 보건 영양 관련 정보가 대상이다. 예를 들어 신종 오염물질 검출 사례나 특정 원료에 대한 위해성 평가 결과, 영양 표시 기준 개정 동향 등이 양국 사이에서 비밀유지 하에 교환될 수 있다. 의료제품 분야에서는 허가 심사와 규정, 관련 연구, 과학·기술적 전문지식, 약물감시, 제조소 실사 결과, 규정 준수와 집행 정보, 공급 부족 대응 전략 등이 공유 대상이다.
특히 이번 약정은 기존 공개 문서 수준을 넘어, 각국 규제기관 내부에서 생성되는 심사 자료와 안전성 평가, 리스크 관리 전략까지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예를 들어 새로운 바이오의약품이나 첨단 의료기기와 관련해 양국이 보유한 이상사례 데이터나 품질 리스크 정보를 조기에 교환하면, 개별 국가가 단독으로 대응할 때보다 부작용 탐지와 규제 조치 결정 속도를 앞당길 수 있다.
식약처는 한캐나다 비밀유지약정 체결을 통해 허가심사와 안전성 관련 주요 정보 및 동향을 보다 신속하게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 안전관리 역량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글로벌 공급망 차원에서 원료 의약품과 완제 의약품, 의료기기, 특수 영양식품 등에서 일어나는 수급 불안에 대해서도, 캐나다와 함께 조기 경보 체계를 구축해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혔다. 특정 품목의 생산 차질이나 수출 규제와 같은 이슈가 발생할 경우, 사전 정보를 토대로 대체 수입선 발굴이나 허가 절차 조정 등 정책 대응을 신속히 검토할 수 있다.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국제 단일심사제도인 MDSAP와의 연계가 주목된다. MDSAP는 Medical Device Single Audit Program의 약자로,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브라질이 정회원으로 참여해 의료기기 제조와 품질 시스템을 공동 기준으로 심사하는 협의체다. 이 제도에서 인증을 받으면 다섯 나라에서 제조·품질 인증 심사의 전부 또는 일부를 면제받을 수 있어, 글로벌 진출을 노리는 의료기기 기업에 중요한 제도적 인프라로 평가된다.
캐나다는 MDSAP 정회원으로, 자국 의료기기 시장에 진입하려는 기업에 MDSAP 심사 성적을 폭넓게 활용해왔다. 식약처는 이번 약정을 계기로 캐나다 규제당국과 의료기기 심사와 품질관리 경험을 보다 긴밀히 교환하고, 한국의 MDSAP 가입을 위한 정책적·기술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이 MDSAP 체계에 정식으로 참여하게 되면, 국내 심사 역량이 국제 기준과 직접적으로 연동되며 국내 기업의 심사 절차가 단순화될 여지도 있다. 반대로, MDSAP 수준의 품질 시스템이 요구되면서 국내 제조사의 규제 대응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어 업계 준비가 관건이다.
양국의 규제 공조는 약물감시와 실사, 규정 집행 영역에서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실제로 글로벌 제약사는 여러 국가에 동시에 제품을 공급하는 만큼, 한 국가에서 포착된 중대한 이상사례 정보가 다른 국가의 안전성 조치로 바로 이어지는 구조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번 약정을 통해 캐나다에서 수집된 부작용 정보나 제조소 품질 문제 정보가 한국에 보다 빨리 공유되면, 국내에서의 허가 유지 여부나 사용상 주의사항 개정, 리콜 여부 판단이 한층 과학적 근거 위에서 이뤄질 수 있다.
국제 비교 측면에서 보면, 주요 규제 선진국들은 이미 의약품과 의료기기 정보 공유를 위한 양자·다자 약정을 통해 공조 체계를 구축해왔다. 미국과 유럽연합, 일본 등은 유사한 비밀유지약정을 기반으로 신약 허가자료, 실사 정보, 안전성 경보를 교환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규제 기준의 상호 수렴이 촉진되며, 다국적 임상시험과 글로벌 공급 전략 수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과 캐나다의 이번 합의는 이런 흐름 속에서 규제 네트워크를 넓히는 행보로 볼 수 있다.
다만 정보 공유 확대는 데이터 보안과 기업 기밀 보호,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새로운 과제를 낳을 수 있다. 허가 신청 자료에는 기업의 제조 공정과 임상 설계, 분석 기법 등 영업비밀 정보가 포함돼 있고, 약물감시 데이터에는 환자 정보 보호 이슈도 뒤따른다. 비밀유지약정은 이런 민감 정보가 제3국에 유출되거나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법적·기술적 안전장치를 전제로 한다. 실제 운용 과정에서 양국이 어떤 범위와 형식으로 데이터를 교환할지에 대한 세부 가이드라인과 감사 체계가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우영택 식약처 기획조정관은 체결식에서 이번 약정을 통해 양 기관이 지식과 경험을 신속히 공유하며 식의약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체계를 유지하고, 안전하고 고품질인 제품에 대한 접근성 향상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규제 당국의 정보 격차가 줄어들수록 신흥 위험 요인에 대한 공동 경보와 대응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산업계도 긍정적 신호로 보는 분위기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앞으로 실질적 성과를 가를 변수로 실행 속도와 범위를 꼽는다. 공급망 불안, 신기술 제품의 규제 불확실성, 데이터 보호와 같은 난제 속에서 양국이 어느 수준까지 정보를 개방하고, 그 결과를 허가 심사와 안전조치에 반영할지에 따라 약정의 무게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식품과 의약품, 의료기기를 아우르는 이번 규제 공조가 실제 시장에서 안전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는 구조로 안착할 수 있을지 산업계는 향후 이행 과정을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