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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티늄 동맹으로 RPT 속도전…SK바이오팜, 유럽 공급망 선점 노린다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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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동위원소 기반 항암 신약 개발 경쟁이 글로벌로 확산되는 가운데 SK바이오팜이 희소 자원인 악티늄225 공급망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북미 중심이던 수급 구조에서 벗어나 유럽 내 독립 공급선을 확보하며 방사성의약품 연구개발 리스크를 줄이고, 차세대 표적 항암제 시장 진입 시점을 앞당기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희귀 동위원소 선점이 향후 방사성의약품 산업의 승패를 가를 ‘보이지 않는 인프라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바이오팜은 독일의 GMP 등급 방사성 동위원소 기업 에커트앤지글러와 악티늄225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계약으로 SK바이오팜은 유럽 지역에 악티늄225 공급망을 선제적으로 구축해 방사성의약품 RPT 개발을 위한 안정적인 원료 수급 기반을 확보했다. 기존 글로벌 RI 업체 두 곳에 이어 세 번째 축을 더하면서 단일 지역과 공급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 셈이다.

악티늄225는 알파선 방출 방사성 동위원소로, 극히 짧은 거리에서 강한 에너지를 방출해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특성이 있다. 세포 DNA를 직접 손상시키는 강력한 암세포 살상력과 상대적으로 낮은 전신 부작용으로 차세대 항암 치료제로 꼽힌다. RPT에서는 표적 항체나 펩타이드에 악티늄225를 결합해 종양 세포에만 방사선을 집중 투여하는 방식이 주로 활용된다. 기존 베타선 기반 방사성의약품보다 암세포 파괴 효율이 높고 주변 정상 조직 손상이 적다는 점이 차별점으로 거론된다.

 

다만 악티늄225는 자연 발생량이 극히 적고, 원자로나 입자가속기를 통한 생산 역시 기술적 난도가 높아 전 세계 생산량이 제한적이다. 미국과 캐나다 일부 연구소, 소수의 상업 생산 기업 중심으로 공급이 이뤄져 왔으며, 공급 불안이 임상 개발 지연과 파이프라인 확장에 장애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특히 RPT는 한 번 확보한 동위원소를 후보물질 전임상부터 후기 임상까지 장기간 안정적으로 사용해야 하기에 원료 확보 경쟁이 곧 개발 속도 경쟁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SK바이오팜은 이번 계약으로 기존 북미 중심 수급 구조를 보완해 유럽 내 독립 라인을 추가 확보했다. 회사 측은 에커트앤지글러가 의료·과학·산업용 방사성 동위원소 분야에서 축적한 생산 기술과 글로벌 공급 역량을 기반으로, 기존 공급사와는 다른 원료와 공정을 활용한 별도 공급망을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급 경로를 다변화해 특정 생산 시설의 가동 중단, 규제 변경, 물류 차질 등 외부 변수에 대한 회복력을 높인 셈이다.

 

에커트앤지글러는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과 조제, 품질 관리 전 과정에서 GMP 기준을 충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사성의약품은 제조 공정의 미세한 차이도 투여 용량과 안전성에 영향을 줄 수 있어 GMP 수준의 일관된 품질 관리가 상용화 경쟁에서 핵심 기준으로 평가된다. 유럽을 거점으로 한 에커트앤지글러의 생산 인프라는 향후 SK바이오팜이 유럽 임상과 허가 전략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규제 대응 부담을 낮출 카드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SK바이오팜은 지난해 8월과 올해 2월 글로벌 RI 공급업체 두 곳과 잇따라 협력 관계를 구축하며 악티늄225 수급 경로를 넓혀왔다. 이번 유럽 공급망 확보로 북미와 유럽을 아우르는 다축 공급 구조를 갖춰, 생산량이 제한된 악티늄225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RPT 임상이 본격화될 경우 후보물질 수 증가와 병원 사용량 확대에 따라 동위원소 수요가 급증할 수 있는 만큼, 선제적인 수급 전략이 중장기 파이프라인 운영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현재 SK바이오팜은 악티늄225를 활용한 RPT 파이프라인을 단계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첫 번째 RPT 후보물질로 풀라이프 테크놀로지의 SKL35501을 도입했으며, 현재 임상 1상 진입을 위한 임상시험계획 IND 제출을 준비 중이다. 최근에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 기술이전기관 WARF로부터 두 번째 후보물질 WT-7695를 추가 도입해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초기에는 적응증과 타깃이 각기 다른 후보를 확보해 임상 결과와 시장 반응을 비교 분석하며 전략적 우선순위를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방사성의약품 시장은 글로벌에서 이미 치열한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립선암, 신경내분비종양 등을 겨냥한 베타선 기반 RPT가 상용화되며 매출을 확대하고 있고, 다국적 제약사와 바이오텍들이 악티늄225 같은 알파선 동위원소로 적응증을 넓히는 임상을 진행 중이다. 생산이 어려운 악티늄225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경쟁사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확보하느냐가 향후 적응증 확대와 병용 요법 전략에서 우위를 가르는 변수로 부각되는 상황이다.

 

규제 측면에서도 방사성의약품은 이중 관리 체계가 적용된다. 방사선 안전 규제와 의약품 허가 규제가 동시에 작동해 생산 시설 인허가, 운송, 보관, 투여 등 전 단계에서 국가별 규정을 충족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EMA와 각국 방사선 규제기관이, 미국에서는 FDA와 원자력규제위원회 등이 관여해 절차가 복잡하다. GMP 인증을 갖춘 유럽 파트너와의 협력은 SK바이오팜이 향후 다국가 임상과 허가 전략을 수립할 때 규제 리스크를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하랄트 하셀만 에커트앤지글러 CEO는 악티늄225가 차세대 RPT 개발에 필수적인 핵심 동위원소라며 항암 치료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협력이라고 평가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은 악티늄225 수급 안정화가 성공적인 신약 개발의 선결 과제라며, 선제적으로 구축한 글로벌 파트너십과 다변화된 공급망을 기반으로 항암 신약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SK바이오팜의 이번 행보를 RPT 분야에서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원료 인프라 투자’로 본다. 향후 악티늄225 생산 기술이 확장되고 경쟁사들도 공급망을 강화하더라도, 선제적 확보를 통해 초기 임상과 적응증 확장 전략에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평가다. 산업계는 방사성 동위원소 수급 경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SK바이오팜의 RPT 파이프라인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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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바이오팜#에커트앤지글러#악티늄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