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AI 투자 모두 피하고 있다”…뉴욕증시, 기술·반도체 약세 속 변동성 확대

신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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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15일 뉴욕(USA) 증시에서 미국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회의감이 이어지며 3대 지수가 일제히 하락했다. 직전 거래일 급락 이후 반발 매수세가 유입되기도 했지만, AI 관련주 중심의 차익 실현이 쏟아지면서 기술·반도체주 전반이 약세로 돌아섰다. 이번 흐름은 AI 붐을 이끌어 온 핵심 종목들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위험 자산 기피 정서가 글로벌 증시에 미칠 파장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 대비 41.49포인트(0.09%) 내린 48,416.56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10.90포인트(0.16%) 떨어진 6,816.51, 기술주 비중이 큰 나스닥종합지수는 137.76포인트(0.59%) 하락한 23,057.41에 장을 끝냈다. 현지시각 기준 장 초반에는 직전 급락에 따른 반등 기대감이 우세해 상승 출발했지만, 곧이어 기존 보유 물량을 정리하려는 매물이 대거 출회되며 지수는 약세로 선회했다.

뉴욕증시 3대 지수 하락…AI 투자 회피 지속 속 기술·반도체 약세
뉴욕증시 3대 지수 하락…AI 투자 회피 지속 속 기술·반도체 약세

시장 참가자들은 이날 반등 흐름을 “기존 AI 관련 포지션을 줄일 수 있는 기회”로 해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스닥 지수는 장중 한때 낙폭을 0.79%까지 확대했고, 위험 선호 심리 위축이 성장주와 기술주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다. 최근 미국 AI 산업의 성장성에 대한 의구심이 풀리지 않으면서, 투자자들은 고평가 논란이 제기된 종목들에서 벗어나 보다 방어적인 자산과 업종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AI 투자 회피 정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종목은 반도체 설계·솔루션 업체 브로드컴이다. 브로드컴 주가는 이날 5.59% 추가 하락하며 3거래일 연속 약세를 이어갔다. 최근 3거래일 누적 하락률은 20%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AI 수혜 기대를 반영해 급등했던 주가가 단기간에 강한 조정을 받는 국면이다. 브로드컴 급락 이후 AI 관련 종목 전반을 둘러싼 경계 심리가 증폭되며, AI 인프라와 반도체 생태계 전반으로 매도세가 확산됐다.

 

반도체 대표 지수인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이날 0.61% 내려 3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구성 종목 가운데 엔비디아는 강보합권을 유지했지만, TSMC, AMD,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주요 종목은 1%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그간 AI 서버와 고성능 반도체 수요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반영됐다는 판단 아래, 실적 현실화 이전에 이익 실현에 나서는 움직임이 강화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나스닥에 상장된 대형 기술주 역시 약세를 면치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애플이 각각 1% 안팎의 하락률을 기록하며 지수 전반에 부담을 줬다. AI와 클라우드, 디지털 광고 등 성장 모멘텀을 공유해 온 빅테크 종목들이 동반 조정을 받으면서, 뉴욕증시에서 지난 수년간 이어져 온 ‘성장주 중심 랠리’에 속도 조절이 이뤄지는 양상이다.

 

다만 AI 관련주와 일부 기술주를 제외한 업종 전반은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업종별로 기술주는 1%가량 하락했고, 에너지와 통신서비스 업종도 동반 약세를 나타냈다. 반면 그 외 대부분 업종은 상승 마감했다. 특히 의료·헬스케어 업종은 1.27% 오르며 강세를 보였다. 이는 경기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가진 종목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통 제조업과 가치주, 우량주를 향한 자금 순환도 뚜렷했다. 대형 우량주 가운데 JP모건체이스, 존슨앤드존슨, 프록터앤드갬블(P&G), 머크, 골드만삭스 등이 1% 안팎으로 올랐다. 바이오·제약주인 암젠은 2%를 상회하는 상승률을 기록했다. AI 고성장주에서 유출된 자금이 배당과 실적 안정성이 부각된 종목으로 옮겨가는 순환매 장세가 전개되는 모습이다.

 

이 같은 흐름과 관련해 앱투스캐피털어드바이저스의 데이비드 와그너 주식 부문 총괄은 “현재 시장에서는 모든 이가 AI 관련 투자를 기피하는 분위기”라면서도 “매그니피센트7은 영업 레버리지를 고려하면 여전히 저평가 상태이며, 이 핵심 기업들이 앞으로도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AI를 둘러싼 단기 조정에도 불구하고, 장기 성장성을 가진 빅테크 중심의 구조적 강세장은 지속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개별 종목 중에서는 테슬라가 3% 넘게 상승해 눈에 띄었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약 8천억달러 규모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투자 기대가 커졌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성장 스토리가 다시 부각되면서, 머스크가 이끄는 기업 전반에 대한 관심이 동반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질로우는 8% 급락했다. 구글이 부동산 매물을 검색 결과에 직접 표시하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에서는 플랫폼 경쟁 심화와 질로우 비즈니스 모델 훼손 가능성을 우려했다. AI와 검색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빅테크 기업의 신규 서비스가 전통 플랫폼 업체에 구조적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불안이 재차 부각된 셈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차기 의장 인선을 둘러싼 정치권의 움직임도 투자 심리를 흔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CNBC에 따르면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차기 연준 의장 후보군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주변 고위 인사들 사이에서 해싯 위원장이 대통령과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연준의 독립성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가 힘을 얻으면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가 유력한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부상했다. 예측 시장에서는 워시 전 이사가 해싯 위원장을 제치고 차기 의장 가능성 1위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12월 초까지만 해도 해싯 위원장 쪽으로 쏠리던 기대가 최근 워시 전 이사 쪽으로 기울면서, 향후 통화정책 기조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연준 수장의 성향에 따라 금리 경로와 금융 규제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글로벌 금융시장은 인선 과정 전개를 면밀히 지켜보는 분위기다.

 

통화정책 전망과 관련해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내년 1월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을 75.6%로 반영했다. 시장은 단기적으로 추가 인상 가능성보다 현 수준 유지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경로와 경기 둔화 속도에 따라 시나리오가 바뀔 수 있다는 경계심도 남아 있다.

 

시장 변동성 지표인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는 전장 대비 0.76포인트(4.83%) 오른 16.50을 기록했다. AI 투자에 대한 불신과 연준 의장 인선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주식시장 전반의 변동성이 서서히 높아지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AI 관련주 중심의 조정과 방어주로의 회귀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면서도, 실적과 정책 방향이 명확해지는 시점에 다시 성장주와 기술주를 둘러싼 매수세가 살아날 여지도 있다고 보고 있다. 국제사회와 글로벌 투자자들은 뉴욕증시의 AI 조정 국면이 향후 자산 재배분과 세계 증시 흐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하고 있다.

신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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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증시#브로드컴#ai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