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발사로 뉴스페이스 시동”…누리호 4차, 민간·과학 임무 시험대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3차 발사 성공 이후 2년 반 만에 네 번째 도전에 나선다. 오는 27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진행될 4차 발사는 국내 첫 야간 발사이자, 민간이 제작을 주도하는 첫 발사다. 차세대중형위성 3호와 12기의 큐브위성을 한 번에 쏘아 올리며, 과학 관측에서 우주 의약, 위성 폐기, 6G 통신까지 다양한 임무를 검증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발사를 정부 주도의 발사체 개발이 민간 상업 우주 서비스로 넘어가는 전환점으로 보는 분위기다.
누리호 4차 발사의 가장 큰 변화는 발사 시각이다. 발사관리위원회 최종 확정 전이지만,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발사 예정 시각을 27일 밤 0시 55분 전후로 잡았다. 국내 우주발사체가 자정을 넘긴 새벽 시간대에 발사되는 것은 처음이다. 항우연은 야간 발사가 기술적으로 주간과 큰 차이는 없지만, 국내 첫 시도로 운용 인력 피로도와 관제 실수를 막기 위한 인력 배치,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했다고 설명한다.

한밤중 발사 결정의 핵심 배경은 주탑재 위성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의 임무 특성이다. 이 위성은 고도 600킬로미터의 태양동기궤도에 진입해 지구 자기권 플라즈마를 측정하고, 오로라와 대기광을 관측해 지구 에너지 유입량을 분석하는 과학 임무를 수행한다. 오로라와 대기광은 매우 희미한 빛이라 태양광 간섭이 최소인 시간대에 관측해야 한다. 항우연은 위성이 특정 시간대에 적도를 통과하도록 역산해 나로우주센터 발사 시점을 새벽 0시 55분 안팎으로 도출했다. 이 시간을 넘기면 목표 궤도 맞춤 발사는 24시간 뒤로 미뤄진다.
이번 발사는 체계 전환 관점에서 의미가 크다. 누리호 4호기의 발사체 제작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총괄했다. 1·2·3차 발사까지는 정부 출연연구기관인 항우연이 개발과 제작을 중심에서 이끌었다면, 4차부터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작, 총조립, 부품 참여업체 관리 등 전 과정을 책임지는 민간 주도 구조로 바뀐다. 발사 운용은 항우연이 주관하되,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공동 참여하는 민관 합동 체계다.
우주항공청 출범을 앞두고 있는 정부와 항우연은 이번 발사를 뉴스페이스, 즉 민간 주도 상업 우주 시대로 넘어가는 첫 실전 시험대로 보고 있다. 정부가 쌓아온 설계·시험·발사 노하우가 대형 민간 기업으로 이전되면서, 향후 한국 기업이 자체 브랜드로 발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위성 발사 수요를 상용 시장에서 수주할 기반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스페이스X가 공공 발사 계약을 바탕으로 상업 시장을 확대한 흐름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궤적을 그릴 가능성도 있다.
기술 구성은 3차 발사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유지한다. 1·2·3단 액체엔진 구조와 주요 시스템 사양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대신 임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탑재체 구성과 상단부 구조가 조정됐다. 3차 발사에는 8기의 위성이 실렸지만, 4차 발사에는 차세대중형위성 3호와 큐브위성 12기 등 총 13기가 탑재된다. 전체 탑재 질량은 약 960킬로그램으로, 3차 때 500킬로그램 수준이던 것에 비해 약 2배로 늘어난다. 차세대중형위성 3호의 질량만 516킬로그램에 달해 지난 발사 전체 탑재량에 맞먹는다.
위성 수 증가에 맞춰 다중 위성 분리 장치도 업그레이드됐다. 4차 누리호 상단에는 다중 위성 어댑터가 새로 적용돼, 서로 다른 임무와 질량, 형상을 가진 13기를 순차적으로 분리한다. 차세대중형위성 3호의 길이가 3차 때보다 길어진 점도 반영됐다. 기체 3단 탑재부에는 소음 저감용 카울이 추가돼 위성에 전달되는 음향 충격을 완화한다. 발사 후 위성 분리와 궤도 안착 과정을 더 정밀하게 확인하기 위해 상단부 탑재 카메라도 기존 1대에서 3대로 늘렸다. 발사 성공 여부뿐 아니라 위성별 상태를 세밀히 분석하려는 의도다.
탑재체 구성에서는 과학·산업 융합 색채가 한층 짙어졌다. 주탑재 위성 외에 12기의 큐브위성이 ‘손님 위성’으로 동행하며 첨단 실험을 수행한다. 크기는 작지만 임무는 다양하다. 스페이스린텍의 비천은 세계 최초로 소형 위성을 활용해 단백질 결정 성장을 실증한다. 지구 중력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우주 환경에서 단백질이 더 규칙적인 결정 구조를 형성하는 특성을 이용해, 신약 후보 물질 분석에 유리한 고품질 단백질 결정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제약 업계는 성공 시 우주발 단백질 결정 데이터가 AI 기반 신약 설계와 병행돼 ‘우주의약’이라는 새로운 연구 영역을 여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우주쓰레기 문제에 대응하는 실험도 포함됐다. 우주로테크의 코스믹은 임무를 마친 소형 위성이 스스로 궤도를 낮춰 대기권으로 진입, 소각되는 과정을 검증한다. 성공하면 ‘위성 폐기’ 기능을 위성 설계 초기부터 탑재하는 개념이 현실성을 얻는다. 저궤도 위성 수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탈궤도 기술은 국제 규범 논의에서도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어, 국산 기술 실증은 향후 글로벌 시장 진출의 레퍼런스로 활용될 수 있다.
항법과 통신 분야에서도 실증이 진행된다. 세종대학교의 스파이론은 저궤도 위성에서 항법 신호를 직접 생성해 지상 수신기로 보내는 실험을 수행한다. 특정 주파수 대역에서 GPS를 보완하거나 부분 대체하는 구조를 검토하는 것이다. 위성항법 서비스 다변화는 군·항공·자율주행 등 분야에서 전략적 의미가 크다. KAIST는 홀추력기 시험을 통해 차세대 전기추력 기술을 검증하고, 서울대는 다수의 위성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편대 비행 기술 실증에 나선다. 전자통신연구원은 차세대 6G 네트워크를 겨냥한 위성 기반 사물인터넷 데이터 통신 서비스를 시험한다. 저궤도 통신위성 군집은 육상 기지국이 닿지 않는 해양·극지·재난 지역에서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번 실증 결과는 국내 6G 표준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발사 준비는 막바지 점검 단계에 들어갔다. 누리호는 나로우주센터 조립동에서 1·2·3단 조립을 마치고 최종 총조립과 기능 점검을 진행 중이다. 항우연은 25일 발사체를 발사대로 이송해 직립과 고정 작업을 수행하고, 26일 발사관리위원회를 열어 기상과 설비 상태, 위성 탑재 준비 상황을 최종 검토해 발사 시각을 확정할 계획이다. 새벽 시간대 발사를 위해 발사대 주변과 추적 관측 지점에는 고휘도 조명이 대거 추가 설치됐고, 발사체 주변과 궤적을 촬영할 카메라도 30대 이상 배치된다. 발사 순간부터 상단부 분리, 위성 분리까지 전 구간을 다각도로 기록하기 위한 조치다.
최종 발사 여부는 발사 8시간 전에 결정된다. 지상 풍속, 기온, 습도 등 기상 조건과 함께 태양 활동, 우주 방사선, 궤도 상 다른 물체와의 충돌 가능성 등 우주 환경 요소가 종합적으로 반영된다. 특히 새벽 시간대 대기 안정도와 해양 안전 통제 구역 내 선박 분포 등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발사가 하루 연기될 경우 위성 임무 시간 창을 다시 반영해 동일한 시간대 발사를 다시 시도하게 된다.
글로벌 우주 시장은 이미 민간 기업이 정부 발사 수요를 흡수하고, 상업 발사와 위성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하는 구조로 재편되는 중이다. 미국과 유럽, 중국 기업들은 소형 발사체와 재사용 로켓, 위성군 서비스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누리호를 통해 독자 발사 역량을 확보한 뒤, 본격적인 민간 상업 모델 수립 단계에 접어서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누리호 4차 발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이후 반복 발사와 성능 개량, 재사용 발사체 개발로 이어지는 로드맵이 현실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본다.
우주항공청 출범과 연계한 제도 정비도 과제로 남는다. 상용 위성 발사 서비스, 우주 실험 결과의 산업 활용, 우주쓰레기 저감 의무 규제 등은 향후 법·제도 틀이 정교해져야 하는 영역이다. 민간 기업이 발사 실패나 궤도 이상에 따른 책임을 어떻게 분담할지, 위성에서 얻은 과학·의료 데이터를 어떤 규칙으로 활용할지도 논의 대상이다. 기술과 산업 전략뿐 아니라 안전과 윤리, 국제 규범을 아우르는 정책 설계가 병행돼야 민간 주도의 우주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누리호 4차 발사는 단일 발사 성공 여부를 넘어, 대한민국이 민관 협력 구조로 뉴스페이스 경쟁에 본격 진입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발사체 반복 발사 경험과 민간 주도 제작 체계, 과학·산업 융합 임무가 한 번에 검증되는 만큼, 산업계는 이번 발사가 향후 한국형 상업 발사 서비스와 우주 비즈니스 확장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