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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P1로 비만 잡는 반려동물 신약…미국바이오, 새 시장 연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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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비만이 전 세계적인 건강 이슈로 부상하면서 동물용 비만 치료제 시장이 새로운 바이오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 사람용 비만 치료제에서 사용되는 GLP1 기반 기전이 고양이와 개 등 반려동물에게로 확장되며, 장기지속형 제형을 앞세운 기술 경쟁도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반려동물 의료비 지출 확대와 맞물려 향후 동물헬스케어 산업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미국 네슬레 산하 반려동물 연구기관 퓨리나 인스티튜트는 전 세계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지난해 기준 반려묘의 비만율이 63퍼센트, 반려견이 약 59퍼센트 수준이라고 밝혔다. 조사 방식과 표본이 국가별로 다르지만 북미와 유럽, 아시아를 가리지 않고 비만 반려동물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은 공통된 흐름으로 제시된다.

비만은 반려동물에게도 단순 외형 문제를 넘어 심혈관계 질환, 관절 질환, 대사성 질환 위험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고양이는 당뇨병과 소화 장애 등 만성질환 발병률이 높고, 8세 이상 비만 개체는 정상 체중 개체 대비 사망 위험이 몇 배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여러 연구에서 보고돼 있다. 보호자 의료비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예방과 체중 관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약물 기반 치료 옵션을 찾는 움직임도 커지는 상황이다.

 

제약 바이오 업계는 사람에서 이미 검증된 GLP1 기반 비만 치료 기전을 반려동물 영역으로 옮기는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GLP1은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혈당 조절과 식욕 억제에 관여한다. 이 물질을 모방하거나 강화한 약물을 투여하면 위 배출 속도가 느려지고 포만감이 오래 유지돼 음식 섭취량과 체중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 등 사람용 블록버스터 비만 치료제의 핵심 타깃이 바로 GLP1이다.

 

동물용 비만 치료제 개발 기업들은 같은 GLP1 축을 활용하되 종 특성, 체중, 대사 속도에 맞춘 제형과 용량 설계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장기지속형 단백질이나 펩타이드 구조를 통해 투약 주기를 최대한 늘리는 방향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주 1회 또는 월 1회 투여가 가능해지면 보호자 편의성은 물론, 동물 스트레스 감소와 순응도 개선이 기대된다.

 

미국 바이오텍 액스턴 바이오사이언스와 프로릭스 테라퓨틱스가 이 분야 선두주자로 거론된다. 액스턴은 과체중 및 비만 고양이를 대상으로 GLP1 계열 후보물질 AKS-562c의 초기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시험 규모는 최대 140마리까지 확대될 수 있으며, 주 1회 투여를 목표로 프로토콜을 설계했다. 실제 동물 임상에서는 체중 감소율뿐 아니라 식욕 변화, 활동량, 대사 지표, 안전성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사람용 비만 치료제와 유사한 지표 체계를 적용하는 흐름이다.

 

AKS-562c는 동물 면역체계 반응을 고려해 설계된 단백질 기반 약물로 알려졌다. 항체 구조의 특정 부위에 결합해 분해를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체내 반감기를 늘리는 접근을 택했다. 사람용 장기지속형 항체 약물에서 활용되는 설계 개념을 반려동물에 맞게 튜닝한 형태다. 이렇게 체내 체류 시간을 늘리면 저용량으로도 장기간 효과를 유지할 수 있어, 부작용과 비용 모두를 줄일 여지가 생긴다.

 

프로릭스 테라퓨틱스는 월 1회 투약을 목표로 하는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구체적인 후보물질 구조나 비임상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GLP1 또는 GLP1과 유사한 인크레틴 축을 타깃으로 한 펩타이드 혹은 융합 단백질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는 분위기다. 월 1회 제형에 성공할 경우 반려동물용 주사제 가운데 상단 가격대와 프리미엄 포지셔닝을 확보할 수 있어, 사람용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이미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을 동물헬스케어로 확장하는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반려동물용 비만 치료제의 시장성은 비만 유병률과 보호자 지출 성향이 동시에 뒷받침하고 있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보험, 건강검진, 수술 등 의료 서비스에 대한 지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비만은 관절염, 심장질환, 호흡기질환 등 복합적인 질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체중 관리가 장기 의료비 절감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인식도 확산되는 중이다. 아시아 역시 1인 가구 증가로 반려동물 양육이 늘면서 예방 중심의 헬스케어 수요가 커지고 있다.

 

다만 사람용 GLP1 비만 치료제와 달리 동물용 제품은 종별 차이를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는 과제가 뒤따른다. 개와 고양이는 대사 속도, 체지방 분포, 식습관, 호르몬 반응이 서로 다르다. 같은 GLP1 계열 약물이라도 종마다 최적 용량과 투여 간격, 부작용 양상이 달라질 수 있어 임상 개발 단계에서 충분한 표본 확보와 장기 관찰이 중요해진다. 특히 구토, 설사 등 위장관 부작용은 반려동물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허용 가능한 수준에 대한 논의가 필수적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사람용 비만 치료제를 둘러싼 경쟁이 정점을 향해가고 있다. 노보노디스크, 일라이릴리, 암젠 등 대형 제약사들은 차세대 GLP1·GIP·글루카곤 복합 작용제까지 개발하며 효능과 편의성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이와 맞물려 동물용 시장에서도 비슷한 복합 작용제나 경구 제형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뒤따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현재로서는 주사형 장기지속 GLP1이 가장 앞선 기술 축으로 평가된다.

 

규제 측면에서는 사람용과 동물용 의약품이 서로 다른 심사 체계를 적용받는다. 미국에서는 식품의약국 산하 동물용 의약품 센터가 신약 허가를 담당하며, 안전성뿐 아니라 반려동물과 보호자의 편의성, 투여 경로에 따른 리스크 등도 함께 검토한다. 유럽, 일본, 한국 역시 각국의 동물의약품 규정에 따라 허가 절차와 요구 데이터 수준을 정하고 있다. 데이터 기준과 심사 기간에 따라 상용화 일정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어느 지역에서 먼저 허가를 받을지 전략 수립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윤리와 사회적 인식도 넘어야 할 관문으로 거론된다. 사료 관리와 운동량 조절 등 비약물적 체중 관리를 선행하지 않고 약물에 의존하는 방식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존재한다. 수의사 단체에서는 비만 치료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생활습관 관리와 병행돼야 한다는 전제를 강조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람과 동물 모두에서 GLP1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아질 경우 장기적인 대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업계에서는 향후 3년에서 5년 사이 동물용 GLP1 비만 치료제의 상용화 여부가 동물헬스케어 산업 지형을 가르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본다. 후발 주자들은 경구 제형이나 복합 작용제 등 차세대 플랫폼으로 진입을 노릴 가능성도 있다. 반려동물 비만을 질환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치료할 것인지, 생활습관 교정과 약물요법 간 균형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따라 시장 성장 경로도 달라질 수 있다. 산업계는 반려동물용 비만 치료제가 실제 수의 진료현장과 보호자 선택 속에서 어느 수준까지 자리 잡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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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턴바이오사이언스#프로릭스테라퓨틱스#glp1비만치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