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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A치료제 핵심원료 선점"…코오롱, 글로벌 공급망 노린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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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핵산 기반 치료제가 차세대 바이오 의약품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이 핵심 원료 내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이 RNA 치료제 합성에 필수적인 포스포아미다이트를 자체 기술로 선보이며 글로벌 원료의약품 공급망에서 입지 확보에 나선 것이다. 업계에서는 빠르게 성장하는 RNA 치료제 시장에서 원료 경쟁력이 장기적인 수익성과 협상력을 좌우할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한다.

 

코오롱생명과학은 26일 신규 RNA 치료제 핵심 원료인 포스포아미다이트를 공개하고, 관련 생산 역량을 강화해 글로벌 파트너십 확보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번에 선보인 물질은 짧은간섭 RNA와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 등 다양한 RNA 기반 치료제의 합성 과정에서 사용되는 중간체이자 핵심 원료다. 회사는 원료의약품 제조 기술을 기반으로 차세대 포스포아미다이트를 공급하는 한편, 해외 RNA 신약 개발사들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협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포스포아미다이트는 특정 염기서열을 가진 짧은 핵산 조각을 화학적으로 합성할 때 핵심 빌딩블록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합성 효율뿐 아니라 약물이 체내에서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를 좌우하는 요소로, 원료의 구조와 순도에 따라 최종 약물의 안정성과 효능이 크게 달라진다. 특히 구조를 변형한 포스포아미다이트는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의 화학적 안정성을 높이고, 체내 분해효소인 뉴클레아제에 대한 내성을 강화해 반복 투여 간격을 늘리거나 용량을 줄이는 전략에 활용될 수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연속공정 시스템을 활용한 차별화된 생산 방식 확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회사는 다양한 포스포아미다이트 제품을 한 설비에서 유연하게 전환 생산할 수 있는 스위처블 공정을 연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연속공정은 반응과 정제 단계를 끊김 없이 이어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배치 공정 대비 품질 편차를 줄이고 제조 단가를 낮출 수 있는 기술로 평가된다. RNA 치료제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안정적 대량 공급과 고품질 유지가 가능한 공정 경쟁력은 원료 공급 계약 체결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시장 조사업체 이벨류에이트 파마에 따르면 글로벌 RNA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44억달러, 한화 약 6조4477억원 수준에서 2030년 약 266억달러, 약 38조9796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분석됐다. 연평균성장률 35퍼센트 이상이 예측되는 고성장 트랙으로, mRNA 백신을 포함해 siRNA, ASO, mRNA 치료제 등 파이프라인이 다변화되고 있다. RNA 합성과 수정에 사용되는 포스포아미다이트는 이러한 치료제 대부분에 공통적으로 투입되는 기반 원료라는 점에서 수요 확대가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 원료 전문 기업들이 RNA 치료제 업체와 장기 공급 계약을 늘려가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기존 케미컬 사업에서 축적한 합성·정제·품질관리 역량을 바탕으로 RNA 분야에 진입해, 아시아 기반 대체 공급원이라는 차별점을 내세운다는 전략이다. 미국과 유럽 일부에서는 특정 원료와 생산 국가에 편중된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원화 전략을 추진하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어, 한국 기업의 진입 여지는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회사는 올해 케미컬 부문 실적 개선으로 바이오와 케미컬 양축 사업 구조의 균형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기존 화학 원료와 바이오 원료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통해 경기 변동과 규제 변화에 대한 방어력을 확보하고, 동시에 RNA 치료제 원료 같은 고부가가치 영역 비중을 확대해 수익성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특히 RNA 기반 신약 파이프라인이 초기 단계인 기업들과 공동 개발이나 맞춤형 원료 공급 형태의 협력을 추진할 여지도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최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유럽 최대 RNA 전문 학회 TIDES EUROPE 2025에서 포스포아미다이트를 처음으로 해외 시장에 공개했다. 이 학회는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와 펩타이드 등 혁신 모달리티를 다루는 대표 행사로,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와 CDMO, 원료 공급사가 한자리에 모이는 네트워크 허브로 알려져 있다. 회사는 이번 참가를 계기로 해외 RNA 치료제 개발 기업과의 기술 상담과 영업 활동을 확대하고, 초기 프로젝트 수주를 통해 레퍼런스를 쌓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국내외 규제 환경 측면에서는 RNA 치료제 완제의 허가와 별개로 원료의약품에 대한 품질 기준과 트레이서빌리티 요구 수준이 높아지는 추세다. 미국과 유럽 규제기관은 제조 이력 추적, 불순물 관리, 공정 밸리데이션 등을 세밀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원료 단계에서의 품질 관리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연속공정과 고도화된 품질 시스템을 앞세우는 이유도 글로벌 수준의 규제 요건을 충족하는 벤더로 자리 잡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김선진 코오롱생명과학 대표는 안정적인 생산 인프라와 경제성, 고품질 기준을 강조하며 글로벌 고객사와의 협업 확대 의지를 밝혔다. 업계에서는 RNA 치료제 개발 경쟁이 심화될수록 원료 내재화와 공급선 다변화가 전략 과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는 코오롱생명과학이 이번 원료 기술을 실제 글로벌 공급망에 안착시켜 국내 RNA 생태계 확장에 어느 정도 기여할지 주시하고 있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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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생명과학#포스포아미다이트#rna치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