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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MA로 의사 수 예측 논란"…의협, 정부 추계 정면 비판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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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수급을 둘러싼 통계 모델 논쟁이 2027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 국면에서 첨예하게 부상하고 있다. 정부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가 2040년 국내에서 최대 1만8천여 명의 의사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으면서다. 의료계는 사용 모델과 기준 시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이를 토대로 한 대규모 의대 정원 증원은 성급하다고 반박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논쟁이 향후 의료 인력 정책과 디지털 헬스케어 수요 예측의 신뢰도를 가른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는 이달 22일 열린 제11차 회의에서 2027학년도 의대 정원 규모를 확정할 계획이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위원회는 30일 추가 회의를 열어 연내에 최종 결론을 내겠다는 계획이다. 논의의 핵심은 2025년부터 2040년까지 의사 수요와 공급 추계 결과다.

추계위는 여러 전제를 바탕으로 2040년 의사 공급을 13만1498명으로 추산했다. 현재 의대 정원 3058명 중 89.6퍼센트가 임상 현장에 진출하고, 65세 이상 의사 중 20퍼센트가 은퇴한다는 가정을 반영한 수치다. 반면 전체 의료 이용량과 1인당 의료 이용량을 고려해 계산한 같은 시기 의사 수요는 14만5933명에서 15만237명 수준으로 제시됐다. 이 수치를 비교하면 2040년에 최소 1만4435명에서 최대 1만8739명의 의사가 부족해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결과는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추진하면서 근거로 제시했던 2035년 의사 인력 1만5000명 부족 추계와도 유사한 규모다. 정부는 이런 추계를 근거로 고령화, 만성질환 증가, 지역 의료 격차 확대 등 구조적 수요 증가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의사 공급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추계위의 분석 틀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정부에 과학적 의사 인력 추계와 투명한 거버넌스 이행을 요구했다. 그는 현재 수급추계위원회에서 사용하는 ARIMA 모형의 한계를 정면으로 지적했다.

 

ARIMA 모형은 시계열 자료의 과거 패턴을 분석해 미래 값을 추정하는 통계 기법으로, 수요 예측과 경제 지표 전망 등에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의협은 의료 이용량처럼 제도 변화와 정책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는 변수에 ARIMA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기준 시점에 따라 결과가 널뛰기 할 수 있다고 본다.

 

김 회장은 분석에 포함하는 기간과 기준 시점을 어디로 두느냐에 따라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과도, 반대로 여유가 있다는 결과도 모두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 장기 의료 인력 계획을 이런 불안정한 결과에만 의존해 결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대표 사례로 제시된 것이 입원일수 증가율 데이터다. 건강보험 자료를 보면 2004년에서 2010년 사이 입원일수 증가율은 95.3퍼센트에 이르지만, 2010년에서 2023년 사이에는 28.4퍼센트 증가에 그친다. 2008년 요양병원 종별이 신설되고 일당 정액수가 제도가 도입되면서 요양병원이 급증했고, 이 시기 입원 환자 수와 입원일수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뛰어오른 영향이다.

 

의협은 2010년 이후에는 입원일수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증가세를 보인 만큼, 2008년 전후 구조 변화 구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ARIMA 기반 예측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의료 제도와 수가체계 변화, 장기요양보험 도입과 같은 비연속적 정책 변수는 단순 시계열 모델로는 포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의사 인력 추계에서 단순 인원 수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 진료에 투입되는 시간과 노동 강도를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 회장은 전일제 환산 취업자수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전일제 환산 취업자수는 풀타임 기준으로 얼마나 많은 의사가 환자 진료에 참여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파트타임 근무와 비진료 활동 등을 감안해 인력 규모를 다시 계산하는 방식이다.

 

그는 진료 외 행정 업무, 교육 및 연구, 디지털 헬스케어 시스템 관리 등으로 실제 환자 진료에 투입되는 시간이 줄어드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고 봤다. 고령 의사 비중 확대, 전공 선택 패턴 변화, 여성 의사 비율 증가에 따른 근무 형태 변화도 전일제 환산을 통해 정교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의협은 ARIMA 모델 한 가지에 지나치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조성법 등 다른 통계 기법과 시나리오 분석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인구 구조 변화, 만성질환 유병률 추세, 의료전달체계 개편, 디지털 헬스케어 도입에 따른 대면 진료 구조 변화 등 다양한 변수를 가정해 다각도의 검증을 진행하자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의협은 의료정책연구원과 보건의료인력 양성지원연구센터 등을 통해 자체적인 의사 인력 추계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정부가 제시한 자료의 전제와 수치, 통계 처리 방식에 대한 검증과 더불어, 의료 현장 데이터를 활용한 대안 추계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의협은 객관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자체 연구 결과를 공개하고 정부 추계의 문제점을 과학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의료계의 수급 예측이 상충할 경우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책 결정 과정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사 인력 수급 논쟁이 단순 정원 숫자 논쟁을 넘어, 인공지능 진단 보조와 원격의료, 디지털 치료제 등 IT 기반 의료 기술 확산 속도와도 맞물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첨단 기술이 어느 정도까지 의사의 업무를 대체하거나 보조할지에 따라 장기 수요 곡선이 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당장 2040년을 겨냥한 인력 계획에서는 고령화와 의료 이용량 증가 추세, 지역 의료 공백 문제 등을 감안해 일정 수준의 인력 확충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통계 모델의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정책 결정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급 전망은 필요하다는 현실론이다.

 

정부는 연내 추계위 논의를 마무리한 뒤 의대 정원 조정 로드맵을 확정할 방침이다. 의료계는 과학적이고 투명한 추계 과정이 선행되지 않을 경우 현장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논의를 계기로 데이터 기반 인력 예측 체계와 의료 정책 거버넌스가 한 단계 진화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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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arima모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