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세력 확장 위해 정치세력과 결탁”…윤영호 징역 4년 구형, 내달 28일 선고
정치권 로비 의혹을 둘러싼 공방과 민중기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정면으로 맞붙었다.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으로 김건희 여사 및 국민의힘 인사 대상 금품 제공 의혹을 받는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에게 특검이 징역 4년을 구형하면서, 여야를 향한 로비 의혹은 다시 정국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우인성 부장판사는 10일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에서 업무상 횡령, 정치자금법 위반, 증거인멸,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윤 전 본부장에 대한 결심공판을 열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징역 2년, 횡령과 청탁금지법 위반, 증거인멸 등 나머지 3개 혐의에 징역 2년을 각각 구형해 총 징역 4년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선고기일은 내년 1월 28일로 정해졌다.

이날 법정의 관심은 윤 전 본부장의 최후진술에 집중됐다. 그는 앞서 5일 공판에서 2022년 통일교 교단 행사와 관련해 국민의힘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과도 접촉해 지원했다는 취지로 진술해 민주당 인사 실명 거론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재판 전부터 취재진이 대거 몰리며 정치권 추가 폭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윤 전 본부장은 정작 법정에서 구체적 정치인 명단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해야 할 교단이 꼬리 자르기, 증거인멸하고 가족을 위협하는 걸 바라보며 그동안 교단에 헌신한 제 인생이 정말 모든 것이 부정되는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고 말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이 모든 것이 제 업보이며,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이라 책임이라 생각했다"며 "이제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으니 나머지 재판도 성실히 임할 수 있도록 보석을 허가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최후진술 도중 목이 메어 말을 멈추는 등 감정이 복받친 모습을 보였다.
당초 예고됐다는 평가가 나오던 민주당 인사 명단 언급이 빠지면서 그 배경을 둘러싼 해석이 이어졌다. 우선 정치권에선 최근 이재명 대통령 발언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 대통령은 9일 종교단체 등 법인도 반사회적 행위를 하면 해산 대상이 돼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했고, 여야와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엄정 수사해야 한다며 성역 없는 수사를 주문한 사실이 알려졌다.
또 한편에서는 윤 전 본부장이 향후 수사와 재판 전략을 고려한 선택을 했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특검이 그동안 확보한 진술 자료를 경찰에 이첩해 별도 수사가 진행될 조짐을 보이는 만큼, 윤 전 본부장이 자신이 가진 정보를 향후 피의자 또는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활용하려 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아울러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서 최대한 선처를 받기 위해 불필요한 파장을 자제했다는 해석도 있다.
특검팀은 최종 의견 진술에서 윤 전 본부장이 통일교 관련 현안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김건희 여사를 각각 연결 고리로 삼았다고 규정했다. 특검 측은 "윤 전 본부장은 통일교의 세력 확장과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정치세력과 결탁했다"며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이며 국민들 신뢰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중대한 결과가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특히 권성동 의원을 통로로 통일교 관련 청탁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특검팀은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통일교 신도들을 동원했다"며 통일교 조직력이 특정 정치 과정에 개입한 정황을 제시했다. 또 김건희 여사 관련해서도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성배씨를 매개로 윤 전 본부장이 고가의 목걸이와 샤넬 명품 가방 등을 여러 차례 건넸다는 혐의를 거듭 부각했다.
특검에 따르면 윤 전 본부장은 통일교의 캄보디아 메콩강 개발사업 지원, 통일교의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 교단의 핵심 현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금품 제공을 활용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검은 이런 로비가 통일교 이해관계와 윤 전 본부장 개인 입지를 동시에 강화하려는 시도였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윤 전 본부장 측 변호인은 최종 변론에서 정치권 지원 범위가 특정 정파에 국한되지 않았다고 맞섰다. 변호인은 "통일교의 평화주의 이념에 따라 여러 정파를 아우르려면 당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 대선 후보가 참석하는 게 절실했다"며 "통일교가 어느 특정 정당에 접근한 건 아니라고 보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또 "특정 정당만 접근한 것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하며 민주당 의혹과 관련한 해석에 선을 그었다.
정치권 안팎에선 윤 전 본부장이 정작 민주당 인사 실명을 언급하지 않은 점을 놓고 엇갈린 시각이 나온다. 일부에선 통일교와 관련해 거론된 여야 정치인들이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만큼, 실제 로비의 실체와 범위를 추가 수사로 따져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반대로 최종진술에서 침묵을 택했다는 점이 그간 발언의 신빙성을 둘러싼 논란을 키울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윤 전 본부장은 통일교 한학자 총재의 최측근으로 꼽히며 통일교 세계본부장을 지냈다. 교단 자금 집행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고, 정치권과 통일교를 잇는 주요 창구였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그는 2022년 전성배씨를 통해 김건희 여사에게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명품 가방 등을 건넨 혐의, 통일교 자금을 사적으로 빼돌렸다는 의혹, 관련 자료를 없애려 했다는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가 내년 1월 28일 선고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통일교 로비 의혹에 대한 추가 수사와 정치권 파장은 계속될 전망이다. 검찰과 경찰, 특검은 향후 관련자 소환 조사와 계좌 추적 등 후속 절차에 나설 가능성이 크고, 국회 역시 종교단체 정치자금 규제와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를 둘러싼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