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10년, K콘텐츠는 세계로 KOTT는 위기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이 10년차에 접어들면서 K콘텐츠 산업은 글로벌 확산과 제작 역량 고도화라는 성과와 함께 제작비 급등, 지식재산권 종속 심화라는 구조적 부담을 동시에 떠안게 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 OTT가 이런 양면적 변화를 방치할 경우 장기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제작 생태계 안정화와 자체 IP 축적을 통한 구조 전환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글로벌 플랫폼 의존도를 줄이고 라이센싱 중심의 수익 구조를 확보하지 못하면 KOTT는 외형과 달리 속이 빈 상태에 머물 수 있다고 경고했다.
5일 더불어민주당 이기헌·조인철 의원이 공동 주최한 국내 OTT 생태계 진단 및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과제 세미나에서는 넷플릭스 국내 진출 10년을 돌아보며 제작 시스템과 시장 구조가 어떻게 재편됐는지에 대한 분석과 함께 정책·산업 측면의 대응 방향이 논의됐다.

발제자로 나선 유건식 성균관대 교수는 넷플릭스 국내 진출 10년 조망 및 시사점을 주제로 한국 콘텐츠 산업 전반의 변화를 짚었다. 그는 넷플릭스가 한국 드라마와 예능을 글로벌 동시 유통하는 창구 역할을 하면서 K콘텐츠의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렸고, 사전 제작 정착, 다양한 장르 실험, 표현 수위와 소재의 확장 등 제작 문화의 질적 변화도 가속화됐다고 평가했다. 기존 방송 편성 구조에서 흥행에 실패했던 작품이 OTT에서 뒤늦게 재조명되는 현상은 이용자 주도형 소비 패턴이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됐다.
동시에 넷플릭스 효과가 국내 제작 생태계를 구조적으로 재편하며 불균형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 교수는 넷플릭스가 점유율이 낮은 유료방송 플랫폼을 선제적으로 공략한 뒤 대형 통신사로 확장하는 약한고리 깨기 전략을 통해 국내 시장 안착에 성공했고, 이어 CJ ENM, JTBC, MBC, SBS 등 주요 제작사와의 계약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며 산업 내부까지 영향력을 깊숙이 파고들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상당수 제작사가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구조에 편입됐고, 시간이 흐를수록 구매 단가 협상력에서 글로벌 플랫폼이 주도권을 갖게 되는 방향으로 힘의 균형이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 교수는 가장 큰 부담으로 제작비 상승과 IP 소유권 불균형을 꼽았다. 회당 제작비가 크게 오르며 블록버스터급 프로젝트가 가능해진 반면, 정작 제작사가 IP를 확보하지 못한 채 사실상 용역 형태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계약 관행이 고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IP는 2차 저작, 리메이크, 파생 상품, 글로벌 재유통 등 장기 수익의 핵심 자산인데, 글로벌 OTT가 IP를 선점하면서 국내 제작사와 플랫폼은 단기 제작비 수급에 만족해야 하는 구조에 머무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러한 글로벌 플랫폼 중심 구조가 강화될수록 국내 OTT의 자생적 경쟁력은 약해지고, 장기적으로 미디어 산업 기반이 취약해질 위험이 커진다고 우려했다.
대응 방향으로 유 교수는 국내 OTT가 구조적 종속을 벗어나려면 자체 IP를 장기간 축적할 수 있는 유통·제작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글로벌 플랫폼의 영향력이 큰 환경일수록 국내 제작사가 핵심 판권을 유지하면서 해외 유통을 확대하는 라이센싱 전략의 중요성이 커진다고 짚었다. 동시에 창작자에 대한 공정한 보상 체계를 정비해 IP 가치를 공유하는 구조를 마련하고, 플랫폼과 통신사 간에 갈등이 반복되는 망 이용료 규범을 정리해 비용과 수익 구조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내 OTT가 넷플릭스와 동일한 모델로 경쟁하는 대신, 고유한 브랜드 정체성과 차별화된 콘텐츠 전략을 구축해야 지속 가능한 성장 경로를 확보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권호영 한국콘텐츠진흥원 박사는 한국 OTT 플랫폼의 가장 큰 약점으로 핵심 IP 부족을 지목했다. 그는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 확대, 시스템적인 신규 IP 발굴 체계 구축, 제작사와 플랫폼 간 협력 구조 재정비, 판권과 수익 배분 모델 개선 등을 구체 과제로 제시했다. 권 박사는 국내 IP 경쟁력을 강화해야만 제작사가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고, OTT 플랫폼이 글로벌 시장에서 독자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토론에 참여한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넷플릭스가 한국 미디어 산업에 딜레마를 안겼다고 평가했다. 그는 넷플릭스가 제작 단계에서는 자금과 기회를 제공하는 메시아와 같은 존재일 수 있지만, 생태계 관점에서는 토종 종을 위협하는 외래종에 비유될 만큼 압도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OTT 시장이 플랫폼보다 콘텐츠 경쟁력 중심으로 성장해왔음을 상기시키며, 콘텐츠를 잃으면 전체 미디어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는 만큼 콘텐츠 중심 미디어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책 측면에서 조인철 의원은 OTT 경제가 이미 글로벌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전략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세미나에서 제시된 의견을 토대로 국내 OTT와 콘텐츠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입법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제작비 상승과 IP 독점에 따른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공정 거래와 저작권 보호, 데이터 활용 규범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OTT포럼 안정상 회장은 넷플릭스 진출 이후 국내 콘텐츠 시장 규모가 커지고 글로벌 인지도가 높아진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그 이면에서 제작단가 급등과 IP 독점 심화 같은 구조적 위험이 빠르게 누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KOTT가 외형만 성장하고 내실은 취약한 외화내빈 상태에 놓여 있다며, 내년을 새로운 도약의 전환점으로 만들기 위해 산업계와 정부, 전문가가 함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이번 논의가 실제 제도와 비즈니스 구조 개선으로 이어져 K콘텐츠의 글로벌 성과가 토종 OTT의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