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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레이더스 흥행 돌풍”…넥슨, 글로벌 투자 결실로 게임패러다임 흔든다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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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트랙션 슈팅 장르 신작 아크레이더스가 글로벌 PC·콘솔 시장에서 예상 밖 흥행을 이어가며 게임 산업 경쟁 구도를 흔들고 있다. 유료 패키지 기반 신규 지식재산임에도 스팀 동시 접속자, 매출, 인기 순위에서 기존 대표작들을 위협하는 성과를 내고 있어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단일 타이틀의 성과를 넘어 넥슨이 지난 수년간 공들여 온 글로벌 스튜디오 투자, 장기 개발 지원, 라이브 서비스 역량 내재화 전략이 구체적 숫자로 검증되는 분기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성과가 스웨덴 엠바크 스튜디오와 한국 데브캣 스튜디오를 축으로 한 넥슨 개발 생태계 전반의 체질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넥슨 신작 아크레이더스는 지난달 말 출시 이후 2주 만에 최고 동시 접속자 수 70만명을 기록하고 스팀 글로벌 최고 인기 게임과 매출 1위 자리를 유지했다. 누적 판매량도 400만장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팀 최다 플레이 게임 순위에서 카운터스트라이크2, 도타2 같은 무료 플레이 타이틀과 나란히 최상위권에 오른 점이 눈길을 끈다. 유료 패키지 기반 신규 IP가 F2P 중심 상위권 구도를 뚫었다는 점에서 독특한 성과로 받아들여진다. 배틀필드 최신작과 비교해도 스팀 주요 차트에서 앞서는 흐름을 보이고 있어 중장기 판매량 추가 확대 여지도 크다는 분석이다. 더 게임 어워드 수상 유력 후보로 거론될 만큼 인지도와 평가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아크레이더스 흥행 핵심 요인으로는 익스트랙션 슈팅 장르 특유의 높은 진입 장벽을 과감히 낮춘 설계가 꼽힌다. 종전 익스트랙션 게임은 장비 준비 과정이 복잡하고 초반 난도가 높아 신규 이용자가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무기 파밍, 인벤토리 관리, 정교한 세팅을 선행해야 제대로 된 플레이를 즐길 수 있어 마니아층 위주 시장으로 한정되는 경향이 있었다. 아크레이더스는 이러한 구조를 단순화해 초보자도 전투, 탐색, 탈출이라는 장르 핵심 루프에 빠르게 진입하도록 설계했다는 평가다.  

 

대표적으로 게임 시작과 동시에 기본 장비를 제공하는 무료 로드아웃 시스템을 도입해 초반 장비 파밍 부담을 낮췄다. 이동 중 동행하는 반려 수탉 꼬꼬가 자원을 자동 수집해주는 보조 시스템은 수집과 파밍에 소요되는 반복 노동을 줄여 진입 피로도를 낮추는 장치로 작동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시스템 덕분에 장르 초보자도 빠르게 전투의 재미를 체감하고, 반복 플레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깊이 있는 메타를 학습하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본다.  

 

시각적·청각적 완성도도 흥행에 힘을 보탰다. 아크레이더스는 폐허화된 미래 지구를 배경으로 1970년대와 1980년대가 상상한 미래상을 재해석한 카세트퓨처리즘 미학을 전면에 내세웠다. 아날로그 카세트 테이프, 브라운관 디스플레이, 투박한 메카닉 디자인 등 복고적 요소와 사이언스픽션 설정을 결합해 기존 밀리터리·근미래 슈팅과 다른 분위기를 구현했다. 언리얼엔진5 기반 고해상도 그래픽과 환경광, 볼류메트릭 조명 같은 최신 렌더링 기법이 적용되면서 거친 아날로그 질감과 현대적 표현이 공존하는 독특한 비주얼 아이덴티티가 완성됐다는 평가다. 여기에 총기 반동, 피격, 폭발 등을 세밀하게 표현한 사운드 디자인과 모션 연출이 더해져 몰입도를 끌어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완성도를 바탕으로 아크레이더스는 출시 후 스팀에서 이용자 평가 매우 긍정적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아크레이더스 성과는 넥슨의 장기 글로벌 투자 전략과 직결된 결과로도 읽힌다. 개발사 엠바크 스튜디오는 스웨덴에 기반을 둔 스튜디오로, 넥슨은 2018년 초기 투자로 기술력과 성장성을 확인한 뒤 2021년 지분 100퍼센트를 인수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다. 당시 넥슨이 엠바크를 품은 배경은 단순한 개발 인력 보강이 아니라 서구권 AAA 개발 문화와 클라우드 기반 차세대 개발 환경을 그룹 역량으로 내재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신규 대형 IP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에 있었다.  

 

인수 이후 넥슨은 엠바크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완성도를 우선하는 장기 투자 기조를 유지해 왔다. 넥슨 본사와 엠바크 간에는 개발 지원, 인프라 구축, 라이브 기획, 운영 전반에 걸친 상시 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엠바크 개발진이 넥슨을 방문해 라이브 인프라와 운영 정책을 조율하고,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와 지스타에 참석해 한국 개발자들과 기술·기획 경험을 공유하는 구조도 자리 잡았다. 지리적으로는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지만 퍼블리싱 역량과 개발력이 결합된 공동 개발 생태계가 구축된 셈이다.  

 

전작 더 파이널스에서 축적한 라이브 서비스 경험 역시 아크레이더스 운영 체계에 접목됐다. 넥슨이 쌓아온 라이브 게임 운영 데이터와 결합하면서 일일·주간 미션 설계, 시즌 패스 운영, 밸런스 패치 주기, 이용자 리텐션 지표 관리 등에서 체계적인 프레임워크가 정착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패트릭쇠더룬드 엠바크 대표는 외신 인터뷰에서 모회사 넥슨은 단기 매출 목표보다 게임의 완성도와 장기 지속성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지원해 왔다며 이러한 신뢰 기반 지원 구조가 아크레이더스 성공을 떠받친 핵심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아크레이더스와 함께 마비노기모바일의 성과도 넥슨의 개발 조직 독립 지원 전략이 낳은 결과로 평가된다. 넥슨은 2020년 데브캣 스튜디오를 별도 법인으로 분리해 프로젝트별 의사결정 자율성을 대폭 높이고, 장기 개발에 필요한 인력·재원·기술 지원을 제공해 왔다. 그 결과 마비노기모바일은 원작 특유의 생활형 콘텐츠와 세계관을 모바일 환경에 맞게 재해석하면서도 과도한 과금 요소를 지양하는 이용자 친화적 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올해 3월 출시된 마비노기모바일은 안정적인 이용자 지표를 바탕으로 장기 흥행 체제를 마련했다. 최근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원작 IP 확장 성공 사례로 공식 인정받았다. 단기 매출 극대화보다 IP 가치와 이용자 경험을 중시한 장기 개발 전략이 수면 위로 드러난 셈이다.  

 

모바일 캐주얼 RPG 메이플 키우기도 넥슨의 포트폴리오 다변화 흐름을 보여준다. 메이플스토리 IP의 친숙한 세계관과 비주얼을 앞세운 이 타이틀은 지난 6일 출시 직후 모바일 양대 앱마켓 매출 1위를 기록했다. 기존 PC 온라인 중심이던 메이플스토리 IP를 방치형·수집형 모바일 장르로 확장해 신규 이용자층을 흡수하는 동시에 기존 팬들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아크레이더스, 마비노기모바일, 메이플 키우기 등 신·구 IP가 동시에 성과를 거두면서 넥슨의 매출 포트폴리오는 수직·수평 양방향으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피파온라인 등 기존 핵심 프랜차이즈가 견조한 실적을 유지하는 가운데, 아크레이더스와 마비노기모바일이 신규 성장 축으로 더해지며 외연 확대가 가속화되고 있다. 넥슨이 제시한 2027년 연 매출 7500억엔, 한화 약 6조9900억원 달성 목표도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거론되는 분위기다.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는 이미 장기 라이브 서비스 기반 AAA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 대형 퍼블리셔들은 AI 기반 콘텐츠 제작, 실시간 데이터 분석, 크로스플랫폼 통합 운영 등 차세대 개발·라이브 인프라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넥슨이 엠바크, 데브캣 등 독립 스튜디오에 장기 투자를 이어가는 전략은 이러한 글로벌 흐름과 궤를 같이하는 행보로 읽힌다.  

 

업계 전문가들은 넥슨의 이번 성과가 단일 타이틀 흥행을 넘어, 서구 AAA 개발 문화와 한국식 라이브 서비스 역량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이 실효성을 입증한 사례로 본다. 동시에 신작 성과가 장기적인 이용자 만족과 브랜드 신뢰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리고 내부 개발 생태계가 추가적인 신규 IP를 안정적으로 배출할 수 있을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로 거론된다. 산업계는 아크레이더스를 기점으로 넥슨의 글로벌 전략 전환이 실제 시장에서 얼마나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질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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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아크레이더스#마비노기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