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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바꾼 부의 판도…2030 세대, 초고속 억만장자 부상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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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이 자산 축적의 시간을 단축시키며 글로벌 부의 지형을 재편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과 초거대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에 벤처 자본이 대거 유입되면서, 설립 3년이 채 안 된 기업의 가치가 수십억 달러에 도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기술 혁신의 성과가 주로 장기간 연구개발과 제조 인프라를 통해 축적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알고리즘과 데이터, 클라우드 인프라를 활용한 소프트웨어 기업이 부의 집중 축으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인공지능 경쟁의 가속과 함께 자본 시장의 위험 선호가 결합된 결과로 보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9일 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최근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인물 다수가 20대와 30대의 젊은 남성 창업자라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챗GPT가 등장하며 인공지능 투자가 폭증한 시기에 회사를 설립했고, 제품 출시 초기 단계 혹은 출시 전임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수십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과거 전기차나 로켓, 인터넷 인프라와 같이 물리적 자본이 많이 필요한 산업과 달리, 인공지능 플랫폼은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 형태로 비교적 빠르게 글로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점이 부의 집중 속도를 높인 요인으로 분석된다.

오픈AI 최고 임원 출신인 미라 무라티는 이러한 변화의 상징적 인물로 거론된다. 37세 여성인 그는 올해 2월 인공지능 스타트업 띵킹 머신즈 랩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독자 모델 개발, 알고리즘 최적화, 데이터 인프라 구축 등을 목표로 하는 초기 단계 기업임에도 6월 기준 약 10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았다. 특히 아직 상용화된 제품을 시장에 내놓지 않은 상황이어서, 기술력과 팀 구성,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선제적 가치 평가가 극단적으로 반영된 사례로 해석된다. 인공지능 핵심 인력의 이력과 과거 성과가 벤처 투자 판단의 핵심 지표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질의응답 기반 인공지능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퍼플렉시티의 아라빈드 스리니바스 최고경영자 역시 대표적인 젊은 AI 억만장자로 꼽힌다. 31세인 그는 2022년 회사를 설립한 뒤, 대형 언어모델을 활용한 검색·요약 서비스로 시장 주목을 받았다. 퍼플렉시티의 기업 가치는 약 200억 달러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는 설립 3년이 채 안 된 시점에 달성한 수치다. 스리니바스는 언론 인터뷰에서 재산에는 큰 관심이 없고 회사를 통해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찾겠다고 언급했지만, 그의 지분 가치만으로도 이미 글로벌 자산가 반열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교를 중퇴한 20대 창업자의 사례도 이번 인공지능 자본 쏠림 현상을 상징한다. 22세의 메르코 최고경영자는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설립한 뒤, 2023년 조지타운대를 중퇴하고 사업에 전념했다. 설립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는 2024년 10월 기준으로 기업 가치 100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연구개발 인력과 데이터 인프라에 대한 선제 투자를 위해 대형 벤처캐피털과 빅테크 전략 투자가 결합된 결과다. 실질 매출이나 흑자 전환 이전에 기업 가치가 급상승하는 현상은 과거 인터넷 버블 당시를 연상시키지만, 동시에 인공지능 기술의 구조적 확산 가능성을 반영한 지표로도 읽힌다.

 

이번 흐름의 특징으로는 젊은 남성 창업자 중심의 동질적 인맥 구조가 꼽힌다. 마거릿 오마라 워싱턴대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가 젊은 층을 단기간에 부자로 만들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남성 창업자가 특히 두드러지는 이유로 비슷한 교육 배경과 실리콘밸리 네트워크, 벤처 투자 생태계를 공유하는 동질성을 지적했다. 스탠퍼드, MIT 등 소수 엘리트 교육기관과 대형 빅테크 출신 인력이 스타트업과 투자사, 자문단으로 얽힌 구조가 반복적으로 부의 사다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성과 비백인 창업자는 인공지능 핵심 생태계에서 아직 소수에 머물고 있어, 기술이 가져온 부의 재편이 동시에 새로운 격차를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인공지능 기반 기업이 단기간에 초고속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배경에는 기술 구조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대형 언어모델과 생성형 인공지능은 클라우드 인프라와 그래픽처리장치 기반 연산 자원을 활용해 글로벌 서비스로 빠르게 확장할 수 있다. 과거 제조업과 달리 생산설비 구축과 재고 관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기획과 개발 단계에서 일정 수준의 기술 경쟁력만 확보되면 시장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구조다. 다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학습 데이터와 고가의 연산 자원이 필요해 초기 투자 규모가 커지는 만큼, 자본 시장과의 밀접한 연계가 필수 요건이 되고 있다.

 

글로벌 자본 시장에서는 인공지능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보고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분위기다. 미국과 유럽의 대형 벤처캐피털은 인공지능 스타트업에 수억 달러 규모의 시리즈 투자를 단기간에 집행하고 있으며, 상장 전 단계에서 기업 가치가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유니콘을 넘어, 100억 달러 이상을 의미하는 데카콘 기업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와 빅테크 규제 강화의 영향으로 인공지능 스타트업 성장 속도가 한동안 둔화됐으나, 최근 자체 반도체와 대체 클라우드 인프라를 기반으로 반등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관측된다.

 

이 같은 부의 재편은 정책과 규제 측면에서도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알고리즘 편향, 개인정보 오남용, 저작권 침해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스타트업에 자본이 과도하게 쏠리는 현상이 장기적으로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유럽연합이 인공지능법을 통해 고위험 인공지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미국에서도 인공지능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규제 강도가 높아질 경우, 현재와 같은 고속 성장과 자본 쏠림 구조가 조정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새로운 부의 사다리를 만든 것은 분명하지만, 그 사다리에 접근할 수 있는 인구가 제한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고급 소프트웨어 역량, 연구개발 경험,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인력이 벤처 자본과 결합해 초고속 부 축적을 이루는 반면, 전통 산업과 비디지털 부문 종사자는 상대적으로 소외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교육과 재훈련 정책을 통해 더 많은 인력이 인공지능 생태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산업계와 정책 당국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새로운 부의 흐름이 사회 전반의 혁신과 포용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시하는 분위기다.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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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억만장자#오픈ai#퍼플렉시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