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 출혈 막고 움직임 높였다”…헴리브라, A형 혈우병 치료 전략 재편
A형 혈우병 환자의 예방요법 패턴이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혈액응고 제8인자 투여 위주에서 장기 예방효과를 앞세운 비후천성 항체 타깃 치료제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흐름이다. 에미시주맙 성분의 헴리브라를 중심으로 관절 건강과 신체 활동 수준까지 동시에 개선됐다는 중간 임상 분석이 제시되면서, 출혈 억제뿐 아니라 삶의 질 지표를 포함한 통합 관리 전략이 향후 치료 패러다임을 바꿀 분기점으로 거론된다.
JW중외제약은 22일 A형 혈우병 치료제 헴리브라 예방요법으로 전환한 환자를 추적 관찰한 결과, 관절 건강 지표와 신체 활동 수준이 모두 개선되는 경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헴리브라는 체내에서 부족한 혈액응고 제8인자의 기능을 모방해 혈액 응고 연쇄 반응을 보완하도록 설계된 표적 치료제로, 기존 제8인자 제제에 대한 내성 항체 보유 여부와 무관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최대 4주에 한 번 피하주사만으로 예방 효과를 유지할 수 있어 정맥주사 위주였던 기존 예방요법 대비 투여 편의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헴리브라는 2023년 5월부터 국내 건강보험 급여가 만 1세 이상 비항체 중증 A형 혈우병 환자까지 확대됐다. 항체 보유 환자뿐 아니라 비항체 환자에서도 예방요법 옵션이 넓어지면서 실제 진료 현장 적용 폭이 커지는 국면이다. 주기적 정맥주사로 제8인자를 보충하던 방식에서 일정 간격 피하주사를 통한 예방 중심의 관리로 옮겨가는 환자가 늘어날 여지가 생긴 셈이다.
이번 분석은 미국 워싱턴대학교 혈액종양내과 레베카 크루제-야레스 교수 연구팀이 수행 중인 BEYOND ABR 연구에서 도출됐다. 연구팀은 기존 제8인자 제제에 대한 항체를 보유하지 않은 중등증 및 중증 A형 혈우병 환자 136명을 대상으로, 예방요법을 헴리브라로 전환했을 때 관절 건강과 신체 활동, 출혈 패턴 변화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중간 결과는 이달 6일부터 나흘간 미국 올랜도에서 열린 미국혈액학회 연례회의 2025에서 포스터 형태로 공개됐다.
연구의 핵심 평가지표 가운데 하나는 HJHS였다. HJHS는 무릎, 발목, 팔꿈치 등 주요 관절의 형태·가동범위·통증·근력 등을 의료진이 직접 평가해 점수화하는 혈우병 관절 전용 점수 체계로, 총점 120점 중 낮을수록 관절 상태가 좋다는 의미다. 이번 분석에는 전체 참여자 가운데 88명의 HJHS 자료가 포함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헴리브라 전환 전 대상자의 평균 HJHS는 10.1점으로, 전반적으로 경미한 수준의 관절 손상이 관찰되는 단계였다. 헴리브라 예방요법으로 전환한 뒤 12개월 시점에 평균 HJHS는 2.8점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 환자 기준으로 보면 4점 이상 호전을 보인 환자가 23명으로, HJHS 평가 대상의 26.1퍼센트에 해당했다. 전문가들은 HJHS에서 수점 단위 개선이 관절 통증 감소와 기능 회복 등 실제 일상 움직임에 반영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표적 관절 변화도 두드러졌다. 표적 관절은 일정 기간 동안 같은 관절에서 반복적인 출혈이 발생하는 부위를 가리키며, 장기 관절 손상과 활동 제한으로 이어지는 주요 위험인자로 꼽힌다. BEYOND ABR 연구 시작 이전 기준으로 15명의 환자에서 총 27개 표적 관절이 확인됐지만, 헴리브라 전환 후 12개월 시점에는 해당 표적 관절이 모두 더 이상 관찰되지 않았다. 반복 출혈이 멈추고 무출혈 상태가 유지된 것이다.
신체 활동 수준 평가는 국제신체활동설문 IPAQ를 활용해 이뤄졌다. IPAQ는 걷기, 중등도 운동, 격렬한 운동 등 다양한 강도의 활동 시간을 종합해 신체 활동량을 낮음, 중간, 높음으로 분류하는 도구다. 연구에서 헴리브라 전환 전 신체 활동이 낮은 범주에 해당했던 환자 비율은 30.8퍼센트였다. 전환 12개월 시점에는 이 비율이 23.4퍼센트로 줄어든 반면, 고활동 범주에 속하는 환자 비율은 전환 전 44.2퍼센트에서 3개월 시점 52.4퍼센트로 늘어났고 12개월 시점에도 50.0퍼센트 수준을 유지했다.
연구팀은 출혈 억제 정도도 동시에 추적했다. 헴리브라 투여 후 25주에서 48주 구간 동안 134명을 분석한 결과, 105명, 비율로는 78.4퍼센트의 환자가 치료가 필요한 출혈을 한 차례도 경험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됐다. 예방요법으로 전환한 이후 관절 출혈과 전신 출혈 모두에서 상당수 환자가 무출혈 상태를 유지했다는 의미다.
이 같은 데이터는 기존 제8인자 제제 예방요법과 비교할 때 헴리브라가 출혈 빈도 감소를 넘어 관절 구조 보존과 활동성 확보에 기여할 여지를 시사한다. 과거에는 반복 관절 출혈로 인해 조기부터 관절염, 변형, 보행 장애가 누적되는 환자가 적지 않았지만, 장기간 안정적 출혈 억제가 가능해지면 성장기·성인기 모두에서 물리치료, 운동요법 등을 병행한 적극적 활동 유지 전략을 설계하기 수월해질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해외에서는 이미 헴리브라를 포함한 비항체 기반 A형 혈우병 예방요법이 표준 관리 옵션으로 자리 잡아 가는 추세다. 북미와 유럽 일부 국가는 건강보험 체계 안에서 제8인자 제제와 헴리브라 간 비용 효과성, 장기 관절 손상 예방 효과 등을 비교하는 실제 진료 데이터 리포트를 축적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반면 국내에서는 급여 확대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아 축적된 장기 추적 데이터가 제한적이어서, 이번 미국 연구 결과가 국내 치료 전략 논의에도 참고 지표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규제와 보험 측면에서는 헴리브라와 같은 혁신 혈우병 치료제가 중증 환자 중심에서 중등증 환자, 소아·청소년 환자로 급속히 확대되는 과정에서 재정 부담과 접근성 사이 균형이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 건강보험 급여 범위와 본인 부담 구조에 따라 환자와 의료진의 치료제 선택 패턴이 달라지는 만큼, 추가 임상 근거와 실제 진료 현장의 효과 데이터를 토대로 한 재평가와 조정 작업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JW중외제약은 BEYOND ABR 연구 후속 추적을 통해 장기 관찰 데이터를 추가로 축적한다는 방침이다. 출혈 빈도뿐 아니라 관절 영상, 기능 검진, 삶의 질 설문 등 다면적 지표를 확보해 국내외 가이드라인 개정과 진료 현장 의사결정에 활용될 수 있는 근거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성장기 환자에서 초기 예방요법 선택이 평생 관절 건강과 활동 능력을 좌우하는 만큼, 연령대별·질병 중증도별 세분화된 데이터 확보가 관건으로 꼽힌다.
JW중외제약 관계자는 헴리브라 전환 환자의 출혈 예방 효과뿐 아니라 관절 건강과 활동성 지표 변화를 함께 관찰한 점에 주목하며, 치료제 전환을 고민하는 환자와 의료진이 관절 상태와 운동 수행에 대한 우려를 임상 데이터로 점검하는 데 의미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헴리브라를 비롯한 새로운 예방요법이 실제 국내 의료현장 표준으로 안착할지, 그리고 장기 데이터 축적에 따라 혈우병 관리 패러다임 전환 속도가 얼마나 빨라질지 눈여겨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