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첫차를 기다리며”…오이도역 트롤리 사고가 바꾼 출근길의 아침
요즘 아침 지하철역에서 멍하니 전광판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지하철은 정시에 온다는 믿음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언제든 멈출 수 있는 도시의 리듬 한 줄기가 됐다. 사소해 보이는 한 번의 지연 뒤에는, 수많은 사람의 하루가 미세하게 틀어지는 풍경이 숨어 있다.
25일 이른 아침, 경기 시흥시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는 출근길의 흐름을 끊어 놓은 사고가 벌어졌다. 오전 5시 10분께 궤도 유지보수 작업에 쓰이는 트롤리가 선로를 벗어나는 바람에 트롤리 15량 가운데 후미 4량이 탈선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직 도심이 완전히 깨어나기 전 시간대였지만, 이 한 번의 궤도 이탈은 곧바로 바쁜 출근길을 정조준했다.

사고 지점인 오이도역은 4호선의 시종착역이자 수인분당선과 서해선이 만나는 환승 거점이다. 수인분당선은 오이도에서 한대앞 구간까지, 서해선은 초지역 부근에서 4호선과 선로를 공유한다. 그러다 보니 한 노선의 문제는 곧장 인접 노선의 숨통까지 죄어 버린다. 전광판에는 예정 시각이 지날 때마다 ‘열차 지연’ 알림이 반복되고, 플랫폼 위 승객들 사이에서는 환승 앱을 뒤적이는 손놀림이 분주해졌다.
코레일 관계자는 “시흥차량기지에서 선로 장애로 전동열차 운행에 지장이 발생했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이어 “4호선, 수인분당선, 서해선 열차가 지연 중이니 바쁜 고객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길 부탁드린다”라고 안내했다. 한 문장의 공지였지만, 그 순간부터 수많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택시를 탈까, 버스로 돌아갈까, 회사에 뭐라고 말하지” 같은 계산이 동시에 떠올랐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수도권 대중교통 이용자 가운데 상당수는 지하철을 출퇴근의 ‘기준선’으로 삼는다. 특히 4호선과 수인분당선, 서해선을 잇는 시흥·안산·화성 일대는 자가용 없이 출근하는 직장인이 많은 지역이다. 선로 하나가 막히면, 버스 정류장 대기 줄이 길어지고, 택시 호출 앱 요금이 뛰고, 회사의 첫 회의 시간이 애매하게 미뤄진다. 도시의 시간표는 그렇게 연쇄적으로 흔들린다.
출근길 시민들의 반응도 복잡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왔는데도 지연 안내만 세 번째 듣고 있다”는 하소연부터 “이런 날은 그냥 재택근무하고 싶다”는 바람까지 다양한 글이 올라왔다. 누군가는 “기차가 늦어도, 내 하루까지 전부 늦을 수는 없다는 걸 매번 배운다”라고 토로했다. 얇게 짜인 일과 속에서, 이동 시간은 더 이상 여유가 아니라 가장 먼저 줄어드는 쿠폰처럼 느껴진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이동 불안”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약속 시간, 출근 체크, 어린이집 등·하원까지 모든 것이 분 단위로 맞물려 돌아가는 일상에서, 제때 도착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지는 순간 불안이 커진다는 뜻이다. 특히 환승 노선이 많은 수도권에서는 한 번의 사고가 여러 노선을 따라 번져 나가며 심리적 피로를 키운다. 안전과 유지보수의 중요성이 반복해서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기자가 비슷한 지연 상황을 겪었을 때, 플랫폼에서 가장 많은 움직임은 ‘우회 경로 찾기’였다. 버스 앱과 지도 앱을 번갈아 열어 보며, 평소라면 생각하지 않았을 경로를 조합해 본다. 평소보다 한두 정거장 더 걸어가 다른 노선으로 환승하기도 하고, 동료와 채팅창에서 “오늘은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짧은 양해를 구한다. 불편함 속에서도 일상을 어떻게든 이어 가려는 몸의 기억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안전한 유지보수를 위한 사고라면 이해하지만, 제때 알려 주는 정보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누군가는 “지하철이 늦어도, 내 마음까지 지연되지 않게 다독이는 연습을 하게 된다”라고 적었다. 반복되는 지연과 우회, 그 속에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유연함’이라는 생활 습관을 채워 넣고 있었다.
코레일은 트롤리 궤도 이탈의 정확한 원인을 조사하고, 열차 운행과 시설물 피해 여부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설명보다 “다시는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문제가 생겼을 때 조금 더 빠르고 세심한 안내다. 언제든 선로 위에서 멈춰 설 수 있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그만큼 자신의 삶이 얼마나 많은 것에 기대 서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출근길을 흔든 이번 사고는 거대한 재난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얇은 균형 위에 놓여 있는지 보여 주는 장면이 됐다. 오늘도 누군가는 예정에 없던 우회선을 거쳐, 가까스로 제 시간에 도착한 숨을 고르며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