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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지능 1만배 ASI 온다"…손정의, 투자 시동에 논쟁 확산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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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 진화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산업 패러다임 논쟁의 무게추가 초인공지능으로 옮겨가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업무 자동화와 콘텐츠 제작 영역을 파고든 데 이어, 글로벌 빅테크는 인간 수준을 겨냥한 범용 인공지능을 사실상 가정한 채 그다음 단계인 초인공지능 달성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AI를 국가 핵심 인프라로 간주하는 논의도 힘을 얻으면서, 초인공지능을 둘러싼 기술 개발 구도와 함께 과장된 마케팅이라는 비판이 동시에 제기되는 양상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10년이 AI 패권 경쟁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보는 흐름이 커지는 분위기다.

 

5일 이재명 대통령과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회동한 것은 이런 흐름의 상징적 장면으로 받아들여진다. 손 회장은 이 자리에서 초인공지능 시대 준비를 강조하며 한국 내 AI 인프라 사업에 대한 지원과 투자 의지를 밝혔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등 글로벌 AI 기업 수장과 잇따라 접촉하며 한국을 AI 강국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재차 드러내 왔다. 그는 AI를 상하수도와 같은 기본 인프라로 보급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며 AI 기본사회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기술 발전의 목표점도 달라지고 있다. 기존에는 특정 업무에 특화된 좁은 인공지능을 넘어, 인간과 유사한 사고와 학습, 창의성을 갖춘 범용 인공지능 확보가 업계 최대 화두였다. 최근 오픈AI, 구글, 메타를 포함한 글로벌 빅테크는 이 범용 수준 도달을 중장기 전제로 깔고, 모든 지적 과제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초인공지능에 초점을 맞추는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손 회장이 언급한 인간 지능 1만 배 수준의 시스템은 이른바 특이점 도달을 가정한 시나리오로, 10년 내 실현 가능성을 거론하며 시장의 기대를 자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초인공지능의 구현을 위해서는 현 수준을 크게 뛰어넘는 연산 자원과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가 요구된다. 이에 따라 주요 기업들은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 논의, 자체 AI 반도체 개발 등 토대 구축부터 서두르는 모양새다. 특히 메타는 초지능 개발을 전면 목표로 내걸고 컴퓨팅 인프라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6월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가 발표한 메타 초지능 연구소 설립은 이 같은 전략의 핵심 축으로, 애플 등 경쟁사에서 대규모 AI 인재를 영입하며 조직을 빠르게 키우는 움직임도 병행되고 있다. AI가 스스로 코드를 작성하고 알고리즘을 개선하며 성능을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리는 구조를 상정한 것이다.

 

클라우드 사업자들 역시 초지능 경쟁을 위한 기반 다지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연례 행사에서 신규 AI 전용 칩 트레이니움3와 이를 탑재한 울트라 서버를 공개했다. 전 세대 대비 연산 성능을 높이는 동시에 전력 사용량을 줄였다는 점을 내세우며, 엔비디아 GPU 대비 비용 효율을 강조했다. 클라우드와 전용 칩, 모델이 결합된 수직 통합형 인프라를 구축해 차세대 대규모 모델 학습 수요를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행보가 초인공지능 연구에 필요한 장기적 컴퓨팅 수요를 겨냥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다만 범용 인공지능조차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초인공지능을 전면에 내세우는 기류를 둘러싸고 우려도 만만치 않다. 특히 현재 기술의 주류인 거대언어모델 구조가 갖는 인식상의 한계가 지적된다. 확률적으로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방식은 언어 패턴에 기반한 응답 생성에는 강점을 보이지만, 세계의 물리 법칙을 스스로 구성해 이해하는 능력이나 심층적 상식, 자율적인 목표 설정과 같은 고차원 기능 확보와는 거리가 있다는 진단이다.

 

얀 르쿤 뉴욕대 교수는 AI가 물리 세계에 대한 직관과 인간 수준의 상식을 갖추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하며, 현 단계에서 초지능 도래 시점을 앞당겨 예단하는 태도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지도학습과 강화학습에 의존하는 현재 접근법만으로는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지식을 구성하는 인간식 학습에 도달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시각은 초인공지능 담론과 실제 기술 성숙도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로 꼽힌다.

 

초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투자 유치를 겨냥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대규모 모델 학습과 인프라 확충 과정에서 단기 수익 모델이 불투명해진 기업들이, 대중에게 생소하지만 인상적인 개념을 앞세워 기대를 유지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상장사나 대형 벤처의 경우 미래 성장 스토리 제시가 필수 과제가 되면서, 과학적 정의가 정립되지 않은 용어도 적극 차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이다.

 

맹성현 태재대학교 AI융합전략대학원장은 범용 인공지능 이후 단계를 설명하는 수준에 머문 초인공지능 개념은 학계에서도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그는 초인공지능이 공상과학에 가까운 구상 단계에 불과해, 기업인이나 과학자가 전문 용어처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범용 인공지능의 구현 수준과 한계는 산업계와 학계 사이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초인공지능 준비를 언급하는 것은 매우 먼 미래를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AI를 기반 인프라로 구축하겠다는 전략과, 글로벌 기업들의 초지능 경쟁이 맞물리면서 정책 방향 설정의 어려움도 커지는 양상이다. 국가 차원에서 고성능 연산 인프라와 데이터센터를 확충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어떤 수준의 지능을 목표로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데이터 편향과 에너지 소비, 일자리 구조 변화, 책임 소재 등 기술 외적 쟁점도 초인공지능 논의와 함께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향후 인공지능 정책과 투자가 실제로 닿을 수 있는 기술 궤적을 바탕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초인공지능이라는 상징적 목표가 단기 투자와 규제 완화 명분으로만 소모될 경우, 연구 방향과 인력 양성 전략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등장한다. 산업계는 초인공지능 경쟁 구도 속에서 국내 AI 생태계가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그리고 장기 비전과 현실적인 기술 로드맵 사이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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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이재명#초인공지능a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