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특화 AI 배키 공개”…NC AI, K소버린 모델로 AI G3 노린다
산업 특화 인공지능이 한국 핵심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게임 분야에서 AI 역량을 축적해 온 NC AI가 제조, 국방, 물류, 콘텐츠 등 국가 전략 산업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을 공개하며, 초거대 범용 모델 중심이던 시장 구도에 변화를 예고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행보를 한국형 소버린 AI 경쟁과 산업 AI 내재화의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이 나온다.
NC AI 컨소시엄은 31일 대한민국 산업 전반의 AI 전환을 목표로 한 파운데이션 모델 배키를 글로벌 오픈소스 플랫폼 허깅페이스에 공개한다. 30일 열린 1차 프로젝트 발표회에서는 배키 1단계 개발 완료 소식과 함께 제조, 국방, 콘텐츠 등을 아우른 실증 성과, 향후 고도화 로드맵이 함께 제시됐다. 배키는 한국 산업에 특화된 독자 AI를 지향하는 모델로, 범용 대형 언어 모델을 그대로 들여오는 방식에서 벗어나 산업 현장의 특수성과 규제·보안 요구를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배키는 이름 그대로 Vertical AI Engine for Transformation of Key Industries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 초거대 언어 모델 기반이지만, 한국 제조 공장, 군 보안망, 공항, 방송·문화 인프라 등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도메인 데이터를 학습해 산업별로 최적화된 응답과 제어 능력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NC AI는 이를 위해 롯데이노베이트, 포스코DX, MBC, 카이스트, ETRI, 고려대 등 산학연 14개 기관과 40개 수요처가 참여하는 대형 컨소시엄을 구성해, 데이터 확보부터 모델 개발, 현장 실증과 확산에 이르는 전 주기 생태계를 짰다.
기술 구조 측면에서 배키는 산업 적합성과 비용 효율성에 초점을 맞췄다. 글로벌 빅테크가 파라미터 수 확대 경쟁을 이어가는 가운데, NC AI 컨소시엄은 기업이 실제로 도입 가능한 최적 효율을 전면에 내세웠다. 배키는 1000억 개 이상의 파라미터를 가지는 대형 모델로 설계됐지만, MoE 구조를 적용해 추론 시에는 약 110억 파라미터만 선택적으로 활성화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고난도 업무에서도 성능을 유지하면서 GPU 사용량을 줄여 운영 비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이다.
여기에 NC AI가 독자적으로 고도화한 MLA, 즉 Multi Head Latent Attention 기술이 결합됐다. MLA는 주어진 입력에서 필요한 정보 표현만 선별적으로 집중하도록 해, 기존 모델 대비 메모리 사용량을 최대 83퍼센트까지 줄이고 연산 속도를 크게 높인 것이 핵심으로 소개됐다. GPU 인프라가 넉넉하지 않은 중견·중소 제조사, 공공기관, 국방·보안 환경에서도 배키를 도입해 쓸 수 있도록 만든 토대다.
배키 라인업은 초거대 모델에서 경량 현장형 모델까지 다층 구조를 이룬다. 100B급 메인 모델 외에 공장이나 군부대 등 온프레미스 환경에 설치할 수 있는 sLLM, 시각 정보를 함께 처리하는 VLM까지 포함한 멀티 스케일 구성이 제시됐다. 국방, 반도체, 국가 기반 시설처럼 보안이 절대적인 영역에서는 내부 서버에 배키를 구축해 데이터 외부 유출 우려 없이 활용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NC AI 컨소시엄은 이미 28개 이상의 산업 현장에서 배키를 적용한 확산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고 밝혔다. 단순 문서 요약이나 번역을 넘어, 로봇과 설비 제어, 공정 최적화 등 물리적 세계와 직접 맞닿은 피지컬 AI 영역을 겨냥한 점이 특징이다. 이는 가상의 텍스트 데이터 중심으로 작동하던 기존 LLM과 대비되는 지점으로, 실제 산업 프로세스 자체를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춘 접근으로 평가된다.
스마트 인더스트리 분야에서는 인터엑스와 협력해 자동차 부품 기업의 생산 라인 데이터를 분석하고 병목 구간을 파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센서 데이터, 설비 로그, 작업 지침서 등 이질적인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공정별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고 공정 조건을 자동 제안하는 방식으로 생산성 향상을 노린다. NC AI는 국내 주요 제조 대기업들과도 산업 AI 전환을 위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방·안보 영역에서는 육군본부와의 업무협약을 기반으로 폐쇄망 환경에서도 작동하는 국방 특화 AI를 공동 개발 중이다. 비밀 등급과 일반 등급 데이터를 물리적·논리적으로 엄격히 분리해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회의록 작성과 요약, 상황 공유에 배키를 활용하는 온프레미스 회의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외부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올리지 않고도 스마트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유통·물류 분야에서는 롯데이노베이트와 함께 도메인옵스 기반 플랫폼 구축을 논의하고 있다. 재고·물류 데이터, 매장 운영 지표, 고객 행동 분석 등을 결합해 공급망 전체를 최적화하는 산업용 AI 오케스트레이션을 겨냥한 협력이다. 국가 중요 시설인 공항에서는 데이터 샌드박스 환경을 설계해 배키를 활용한 스마트 공항 사업 제안을 준비 중이다. 비행 일정, 수하물 흐름, 보안 검색 데이터 등을 안전하게 활용해 효율성과 보안을 동시에 강화하는 한국형 스마트 공항 모델을 상정하고 있다.
문화 콘텐츠 영역에서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K콘텐츠 사업을 수주해 AI 프로듀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 역사 문헌과 방송 아카이브, 드라마·예능 대본, 시청자 반응 데이터 등을 학습한 배키 기반 모델이 작품 기획, 줄거리 구성, 콘티 작성, 후반 작업 가이드까지 제작 파이프라인 전반을 지원하는 구조다. 특히 한국 문화의 맥락과 정서를 이해하는 AI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K콘텐츠 제작 효율을 높이고, 국내 창작자와의 협업을 강화하는 방향이 도출되고 있다.
NC AI는 기업들이 AI를 도입하는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도메인옵스 플랫폼을 함께 제시했다. 도메인옵스는 개발자가 아닌 현업 실무자도 웹 기반 도구를 통해 자신이 보유한 도메인 데이터를 업로드하고, 프롬프트 설계와 미세조정을 거쳐 배키를 커스터마이즈할 수 있도록 설계된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은 최근 국제 학술대회 WITS 2025에 채택되며 기술적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또한 NC AI 컨소시엄은 학계와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배키 API를 개방해 상생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국민대, 계명대 등 대학과는 바르코 3D, 아트패션 등 실무형 커리큘럼을 운영해 산업용 AI 활용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배키 기반 서비스 개발 기업을 늘리고, 산업 현장에서 곧바로 투입 가능한 AI 인재 풀을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보면 배키는 미국과 유럽의 범용 모델 중심 전략과 차별화된 한국형 산업 특화 모델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미국에서는 오픈AI, 메타, 구글 등 대형 기술 기업이 범용 LLM을, 독일과 프랑스 등은 자국어 중심 소버린 AI를 강화하는 추세다. 반면 배키는 한국 핵심 산업 도메인 특화와 온프레미스 활용성, 비용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며 제조·국방 중심 국가의 특성을 반영한 노선을 택했다.
정책·규제 측면에서는 데이터 주권과 보안 요구가 배키의 활용 범위를 넓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국방과 국가 기간망 영역에서는 해외 클라우드에 의존하지 않는 소버린 AI가 선호되는 경향이 강하다. 다만 의료, 금융, 공공 행정 등 민감 분야로 확산되려면 개인정보 보호법과 AI 윤리 가이드라인, 알고리즘 책임성에 대한 국내 제도 논의가 병행돼야 할 과제가 남는다.
NC AI 컨소시엄은 1단계 성과를 발판으로 2027년까지 글로벌 톱 티어 AI 기업 수준으로 기술을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내년에는 글로벌 최고 수준 성능을 목표로 한 200B급 모델과, 텍스트·이미지·영상·3D·사운드를 통합적으로 이해·생성하는 LMM 개발을 추진한다. 이후 중동, 동남아 등 글로벌 사우스 시장에 K소버린 AI 패키지를 수출해, 인프라와 규제가 제각각인 국가들이 자체 산업 AI를 빠르게 구축하도록 돕는 모델을 구상 중이다.
이연수 NC AI 대표는 한국 제조, 국방, 콘텐츠 산업이 AI를 통해 세계 상위권으로 도약하는 데 배키를 핵심 인프라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NC AI 컨소시엄이 제시한 산업 특화 AI 전략과 오픈소스 공개가 실제 시장 도입과 수익 모델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리고 한국이 AI 기술 종속을 벗어나 AI G3를 향한 실질적인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