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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사용료 중복 부담"…알뜰폰, 존립 위기 호소

신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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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맞춤형 요금제 경쟁이 이동통신 시장 전면으로 번지면서 알뜰폰 업계가 구조적 부담에 직면한 상황이 드러났다. 이동통신 3사가 자급제 중심의 저가 요금제를 앞세워 가격 경쟁에 뛰어든 가운데, 알뜰폰 사업자들은 전파사용료와 도매제공 대가 체계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사업 지속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부가 통신비 절감을 명분으로 육성해 온 알뜰폰 정책이 제도 환경 변화와 대형 통신사 전략에 밀려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는 25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알뜰폰 시장 현황과 수익 구조 악화를 설명했다. 협회에 따르면 이동통신 3사의 월 가입자당평균매출은 약 3만5000원, 알뜰폰은 약 1만6000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알뜰폰 이용자가 1인당 매월 약 1만9000원을 절감하는 셈이고,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전체적으로 약 2조2800억원 규모의 통신비 절감 효과가 발생하는 구조다.  

고명수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장은 “알뜰폰 업계가 대국민 통신비를 연 2조원 이상 절감하는 효과를 내고 있어 사회적 기여가 작지 않다”면서도 “사업 현장에서는 여러 규제와 비용 요인으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고, 이를 풀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가입자 확대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알뜰폰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으로 알뜰폰 사업자의 1.5%가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적자 비중과 폭이 모두 커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가입자는 늘지만 이익은 줄어드는 구조적 불균형이 심화되는 셈이다.  

 

업계가 꼽는 핵심 부담 요인은 전파사용료, 도매제공 대가, 그리고 대형 통신사의 저가 공세다. 우선 전파사용료의 경우 그동안 대기업 통신사가 대부분 부담해 왔지만, 올해부터 중소사업자에게도 단계적으로 부과되기 시작했다. 중소 알뜰폰 사업자는 올해 전파사용료의 20%를 내야 하고, 2025년 50%, 2027년에는 100%까지 부담률이 높아질 예정이다.  

 

알뜰폰 업계는 전파사용료 100% 전가 시 알뜰폰 사업 전체의 적자 비율이 연 3.9%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추산한다. 특히 알뜰폰 사업자가 도매제공 대가를 통해 이미 원사업자인 이동통신사에게 전파사용료 상당액을 지불하고 있어, 직접 납부까지 병행할 경우 사실상 중복 부담 구조가 형성된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했다.  

 

황성욱 알뜰통신사업자협회 부회장은 “올해는 적자 기조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 중소 알뜰폰 사업자의 존립이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이어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과 금융범죄 예방을 위한 투자에 더해 전파사용료까지 추가 부담이 시작됐는데, 도매제공대가로 이동통신사에 지불한 몫과 별도로 또 내야 하는 구조여서 이중 부담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알뜰폰 사업자들의 보안과 금융범죄 대응 비용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협회 집계에 따르면 회원사 18개 기준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 획득과 보이스피싱 등 금융범죄 방지 투자를 위해 2023년 382억원, 2024년에는 425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회성 지출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성격의 비용으로, 가입자 1인당 연간 약 4671원의 고정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도매제공 대가 협상 방식 변경도 수익성 악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올해부터 알뜰폰 도매대가 협상이 기존의 사전규제 방식에서 사후규제로 전환되면서 실질적인 대가 인하를 끌어내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 업계 입장이다. 사전규제는 협상 전에 기준과 상한선을 명확히 설정하는 구조였지만, 사후규제 체계에서는 시장 자율에 우선권을 주고 사후 점검에 나서는 방식이라 알뜰폰 사업자와 원도매 사업자인 이동통신사 간 협상력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황 부회장은 “알뜰폰 사업자는 도매망을 공급받는 입장이라 협상력이 구조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며 “도매대가 인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저가 요금제를 유지하면서도 사업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신망을 직접 보유하지 않은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 구조 특성상, 망 임차료에 해당하는 도매대가와 각종 규제 비용이 수익성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는 셈이다.  

 

여기에 이동통신 3사의 저가 요금제 공세가 겹치며 가격 경쟁 구도도 급변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자급제 단말 전용 저가 요금제인 에어를, KT는 요고를, LG유플러스는 너겟을 잇달아 선보이며 그동안 알뜰폰이 주도해 온 저가·가성비 시장으로 직접 진입했다. 세 요금제 모두 기존 셀프 개통, 온라인 중심의 효율화된 채널을 활용해 비용을 낮추는 방식으로 설계돼, 알뜰폰의 핵심 고객층과 정면으로 겹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알뜰폰 사업자들은 가성비를 중시하는 고객이 이동통신 3사의 자급제 저가 요금제로 이동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한다. 대형 통신사는 브랜드 인지도, 고객센터 인프라, 번들 서비스 등에서 우위를 갖고 있어,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 이용자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알뜰폰이 가진 가격 경쟁력 자체가 제도와 시장 환경 변화 속에서 점차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책 측면에서 알뜰폰은 그간 가계통신비 절감과 통신 시장 경쟁 촉진을 목표로 도입된 대표적인 정부 정책 성과로 평가돼 왔다. 하지만 전파사용료 부과 확대와 도매대가 사후규제 전환, 금융범죄 대응 의무 강화 등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정책 목적과 사업 현실 사이에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황 부회장은 “알뜰폰은 가계통신비 절감을 위한 정책 수단으로 정부가 육성해 온 대표적인 성공 사례였지만, 현재는 제도와 시장 변화로 인해 심각한 경영 위기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업계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만큼, 전파사용료 구조와 도매대가 산정 방식 등에서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할 수 있도록 정책 당국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통신업계 안팎에서는 향후 정부가 전파사용료 전가 속도 조절, 도매대가 산정의 투명성 제고, 금융범죄 대응 비용에 대한 별도 지원 장치 등을 마련할 수 있을지가 알뜰폰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가를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에서는 알뜰폰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며 이통 3사와 차별화된 서비스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지, 그리고 정책 당국이 통신비 절감과 산업 생태계 균형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하고 있다.

신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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