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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비만약 GLP1 나오면…아시아, 처방패턴 바뀐다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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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P1 기반 비만 치료제의 경구제 전환이 글로벌 비만 치료 시장의 판을 흔들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주사에 대한 거부감이 큰 아시아에서는 ‘먹는 비만약’이 실제 처방 패턴을 바꾸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이미 주사형 비만 치료제에 익숙해진 미국과 유럽에서는 파급력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업계는 향후 허가 시점에 따라 비만 치료 시장의 지형이 지역별로 엇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박소영 한국아이큐비아 상무는 25일 열린 아이큐비아 인사이트 포럼에서 GLP1 기반 경구형 비만치료제가 상용화될 경우를 가정한 시장 변화를 제시했다. 박 상무는 아시아 지역 환자와 의료인을 중심으로 한 조사 결과를 근거로, 주사제에 대한 낮은 선호와 경구제 선호가 맞물리면서 한중일 등에서 처방 확대가 두드러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미국과 유럽 주요 5개국에서는 경구제 등장에도 주사 중심 구조가 상당 부분 유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은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 등 주사형 GLP1 계열 약물이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GLP1은 장에서 분비되는 인크레틴 호르몬으로, 인슐린 분비 촉진과 식욕 감소, 위배출 지연 등을 통해 체중 감소 효과를 내는 기전이다. 다만 지금까지는 대부분이 피하주사 제형으로만 개발돼, 매주 혹은 일정 간격으로 스스로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점이 순응도와 편의성의 한계로 지적돼 왔다.

 

GLP1 계열 경구제는 이 같은 제형 한계를 보완하는 카드로 부상했다. 위산과 소화효소에 민감한 펩타이드 약물을 정제 형태로 안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흡수 촉진 기술, 제산·보호 코팅, 특수 보조제 조합 등이 동원된다. 위에서 약물이 분해되기 전에 소장에서 흡수될 수 있도록 방출 위치와 시간을 조절하는 제형 설계가 핵심 경쟁 포인트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경구 투여 시에도 주사와 유사한 체중 감소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가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이큐비아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은 복약 편의성 개선과 적응증 확대에 힘입어 연평균 38퍼센트 성장해 2030년 1000억 달러, 약 145조원 규모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비만은 당뇨, 심혈관질환, 지방간 등과 직결되는 만성질환으로 인식이 바뀌며 장기 치료 대상이 됐고, 이에 따라 환자가 스스로 오랜 기간 투약하는 환경이 정착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복용 부담이 적은 제형이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실제 지난해 기준 전 세계 비만 신약 파이프라인 169개 가운데 경구제가 40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제약사들이 초기에 주사제 위주로 개발하던 전략에서, 이제는 동일 기전의 경구 버전 확보를 병행하는 추세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특히 장기 치료를 전제로 할 때 매주 침습적 주사를 맞는 것보다는 매일 정제를 복용하는 방식이 심리적 장벽이 낮고, 의료기관 방문 간격과 교육 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아시아 시장에서는 경구제에 대한 선호가 유독 두드러진다. 박 상무는 한중일 환자와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인용해 아시아는 주사제를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고 강조했다. 예방접종 외에 자가 주사 경험이 적고, 주사 바늘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강한 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여기에 병원 재방문을 줄이려는 수요, 업무·학업과 병행하는 환자의 생활 패턴 등이 맞물리면서 경구형 비만약이 한중일에서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박 상무는 서구권에서는 주사제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이미 위고비와 젭바운드 등 주사제가 먼저 도입되면서 처방과 사용 경험이 널리 축적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 주사형 GLP1 비만약은 대부분 주 1회 투여 스케줄인 반면, 다수 경구형 후보물질은 매일 복용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이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는 주 1회 주사가 매일 알약을 먹는 것보다 편하다고 느낄 가능성도 있어, 복약 편의성 우위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서구 의료진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비용 구조도 변수다. 주사제는 고가 생물학제제에 속해 연간 치료비 부담이 상당하지만, 경구제는 합성제제 기반으로 상대적으로 제조 단가와 보험 재정 부담을 낮출 여지가 있다. 아시아 국가처럼 공공 건강보험 재정 압박이 큰 지역에서는 저렴한 경구제 도입이 급여 전략 차원에서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반면 사보험 중심 구조가 강한 미국에서는 보험사가 주사와 경구 중 어느 쪽에 더 유리한 급여 조건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시장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이미 경구형 GLP1 개발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주사제 위고비의 유효성분과 동일 계열인 세마글루타이드 경구제를 비만 적응증으로 개발해 임상 3상을 마쳤으며,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 심사가 진행 중이다. 같은 회사의 아미크레틴은 아밀린 수용체 작용제 계열로 비만 치료를 겨냥해 2상을 완료했다. 일라이 릴리는 오포글리프론을 비만 관련 경구 파이프라인으로 개발 중이며 3상 단계에 들어섰다.

 

아스트라제네카의 AZD5004, 바이킹 테라퓨틱스의 VK2735, 스트럭처 테라퓨틱스의 알레니글리프론 등도 2상에서 효능·안전성을 검증하고 있다. 이들 후보는 GLP1 단일 작용에서 한 걸음 나아가 GIP, 글루카곤 등 다른 인크레틴과 복합 작용을 노리는 이중·삼중 작용제 전략으로 개발되는 사례도 포함돼, 체중 감소 효과와 대사 개선 폭을 기존 주사제보다 더 키운 차세대 경구제 후보로 평가받는다.

 

국내 제약사도 경구형 비만약 레이스에 합류했다. 일동제약은 GLP1 기전 기반 후보물질 ID110521156을 대상으로 1상 임상을 진행하며 안전성과 약동학 특성을 확인하는 단계에 있다. 디앤디파마텍, 종근당, 셀트리온, 한미약품 등도 자체 비만·대사질환 파이프라인에 경구형 후보를 포함하고 개발을 진행 중이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글로벌 빅파마보다 다소 늦게 출발했지만, 아시아 특화 적응증과 복약 패턴에 맞춘 차별화 전략으로 틈새를 노릴 여지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규제 측면에서는 비만 치료제의 안전성 관리가 관건으로 떠오를 수 있다. GLP1 계열 약물은 대체로 혈당 조절과 체중 감소 효과가 입증됐지만, 장기 복용 시 위장관 부작용, 췌장 관련 이상반응, 담낭 질환 등 안전성 이슈가 꾸준히 관찰돼 왔다. 각국 규제당국은 비만이라는 예방·생활습관 영역에 가까운 질환에 장기간 투여하는 약물인 만큼, 당뇨 등 기존 적응증보다 보수적인 위험 평가를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경구형 비만약도 이와 같은 안전성 우려를 면밀히 검토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비만 치료제의 사용 대상을 어디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논의도 남아 있다. 체질량지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지, 동반 질환이 없는 단순 비만이나 미용 목적 사용까지 허용할지에 따라 시장 규모와 보험 재정 영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는 보험 급여 적용 기준을 엄격히 설정할 가능성이 커, 초기에는 비급여 시장과 고위험 비만 환자를 중심으로 확산이 진행될 공산이 있다.

 

전문가들은 경구형 GLP1 비만약이 상용화될 경우 제형 경쟁이 시장 지형을 좌우하는 새 국면이 열릴 수 있다고 전망한다. 아시아처럼 주사 기피와 비용 부담이 큰 시장에서는 경구제가 비만 치료의 기본 옵션으로 자리잡을 수 있고, 서구권에서는 주사와 경구가 병존하는 선택지 경쟁이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산업계는 결국 비만을 만성질환으로 인식하고 조기에 적극 치료하려는 의료 시스템 변화가 어느 지역에서 먼저 정착하느냐가 시장 판도에 결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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