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치매 치료 접근권 넓힌다…KAIST, RED OLED 전자약 실마리 제시
약물 대신 빛으로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기억 기능을 조절하는 전자약 접근이 본격화되고 있다. KAIST와 한국뇌연구원 공동 연구진이 균일 조도의 OLED 광자극 플랫폼을 구축하고, 색상과 주파수에 따라 치매 병리와 인지 기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체계적으로 규명했다. 특히 적색 40헤르츠 자극이 뇌 속 독성 단백질을 줄이고 기억력을 회복시키는 데 가장 뛰어난 효과를 보여, 향후 웨어러블 전자약과 비침습 광치료 시장의 판도를 바꿀 분기점으로 거론된다. 업계와 의료계는 안전성과 재현성을 확보한 전자약 플랫폼이 기존 약물 치료를 보완하는 새로운 축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최경철 교수팀과 한국뇌연구원 구자욱·허향숙 박사팀은 3가지 색상의 균일 조도 OLED 광자극 기술을 개발하고, 빛의 색과 주파수 조합에 따라 알츠하이머 병리 지표와 기억 기능 개선 정도를 정량 분석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청색, 녹색, 적색 등 다양한 파장의 빛을 동일한 밝기와 주파수, 노출 시간 조건에서 비교해 적색 40헤르츠가 가장 우수한 병리 개선과 기억력 회복 효과를 보인다는 점을 확인했다. 관련 결과는 10월 25일 ACS 바이오매터리얼즈 사이언스 앤 엔지니어링에 게재됐다.

핵심은 빛의 색상에 따른 생체 반응 차이를 정밀하게 분리해낸 실험 설계다. 기존 광자극 연구는 주로 LED를 활용해왔지만, LED는 빛의 밝기가 공간적으로 고르지 않고 열이 많이 발생해 피부와 조직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약점이 있었다. 또 머리의 움직임이나 장시간 사용 시 자극 강도가 불균일해지기 쉬워, 정량적인 비교 연구에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얇고 넓은 면적에서 균일하게 빛을 내는 OLED 기반 플랫폼을 마련하고, 색상·밝기·깜박임 비율·노출 시간 등을 미세하게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OLED는 유기 발광 다이오드로, 전류를 흘리면 유기층이 스스로 빛을 내는 구조다. 얇고 휘어질 수 있어 웨어러블 기기에 적합하며, LED 대비 발열이 적고 표면 전체에서 균일한 조도를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머리 위 특정 뇌 영역을 대상으로 안정적인 광자극을 제공했고, 색상별·주파수별 자극 조건을 표준화해 재현성 높은 데이터를 확보했다. 특히 기존 LED 방식과 달리 동물의 움직임에 따른 빛 세기 편차를 최소화한 점이 차별점으로 꼽힌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 동물 모델을 대상으로 초기 병기와 중기 병기를 나눠 실험을 진행했다. 초기 병기인 3개월령 모델에서는 하루 한 시간씩 이틀 동안 빛을 조사하는 단기 자극만으로도 기억력이 유의미하게 향상되고 병리 지표가 개선되는 양상을 보였다. 백색과 적색 빛 자극 모두에서 장기기억이 좋아졌지만, 특히 적색 40헤르츠 조건에서 효과가 두드러졌다. 해마 등 기억 형성의 핵심 뇌 영역에서 알츠하이머의 대표적 병리 물질로 알려진 아밀로이드베타 플라크가 줄어들었고, 플라크 제거를 돕는 효소 ADAM17의 발현이 증가했다.
주목할 점은 약물 투여 없이 매우 짧은 기간의 광자극만으로 이런 변화가 관찰됐다는 사실이다. 통상 알츠하이머 약물은 수개월에서 수년 단위의 투여와 혈액뇌장벽 통과, 전신 부작용 관리가 필요하다. 반면 비침습 광자극 방식은 외부에서 뇌를 간접적으로 자극해 병리 환경을 조정하기 때문에, 환자 부담과 부작용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연구진은 단 2일의 자극으로도 플라크 축적이 줄고 인지 기능이 나아지는 경향을 확인해, 비약물 전자약 접근의 실효성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염증 반응 조절 효과도 확인됐다. 적색 빛을 조사한 그룹에서는 알츠하이머 진행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염증성 사이토카인 IL-1베타 수치가 크게 감소했다. IL-1베타는 뇌 조직에 스트레스를 주고 신경세포 손상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데, 적색 OLED 자극이 이 물질을 억제하면서 뇌 염증 환경을 완화한 것이다. 이는 적색 광자극이 단순히 플라크 축적만이 아니라, 신경염증이라는 또 다른 축에도 동시에 개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기 병기인 6개월령 동물 모델에서는 효과 차이가 더 뚜렷했다. 동일하게 2주간, 하루 한 시간씩 장기 자극을 가한 결과 백색과 적색 두 조건 모두에서 기억력 향상은 나타났다. 하지만 알츠하이머의 핵심 병리 지표인 아밀로이드베타 플라크 감소는 적색 빛 조건에서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관찰됐다. 즉 병이 더 진행된 단계에서는 색상 선택에 따른 병리 개선 격차가 커진 셈이다.
분자 생물학적 분석에서도 적색의 우위가 드러났다. 적색 빛 자극을 받은 그룹에서는 플라크를 제거하는 데 관여하는 효소 ADAM17이 증가하고, 플라크 생성에 관여하는 효소 BACE1의 발현은 감소했다. 플라크 생성 억제와 제거 촉진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중 효과가 실험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반면 백색 빛은 BACE1 감소만 관찰됐고 ADAM17 증가 효과는 크지 않아, 플라크 제거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빛의 색상이 알츠하이머 병리 개입의 핵심 변수로 기능한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다고 정리했다.
이번 성과는 색상·주파수·기간 조합을 조절해 알츠하이머 병리지표를 단계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체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 광자극 치매 치료 연구는 주로 특정 주파수의 깜박임이 뇌파와 시냅스 활동에 영향을 준다는 관찰에 집중돼 있었다. 이번 연구는 여기에 색상이라는 변수를 추가하고, 병기별로 어떤 조합이 가장 효과적인지 수치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술적 의미가 크다.
시장 관점에서 보면, 균일 조도 OLED 기반 광자극 플랫폼은 향후 웨어러블 전자약과 가정용 인지 재활 기기로 확장될 여지가 크다. 얇고 가벼운 특성을 활용하면 안경형, 헤드밴드형, 모자형 등 다양한 형태의 착용형 기기로 구현할 수 있고, 색상·밝기·주파수 조절 기능을 탑재해 환자 개인의 병기와 반응 패턴에 따른 맞춤 자극 처방도 구상할 수 있다. 특히 약물과 병용해 부작용을 낮추거나, 약효가 제한적인 고령 환자에서 보조 치료 옵션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 현장의 관심이 이어질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광자극 기반 치매 치료기기와 전자약 플랫폼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LED 기반 광자극 장비를 활용한 초기 임상 연구가 진행 중이고, 일부 기업은 비침습 전자약으로 분류되는 인지 개선 디바이스를 상용화하는 단계에 올라섰다. 다만 LED 장비는 크고 무겁거나 열 발생, 자극 균일성 이슈 등이 있어 장기간 착용과 정밀 실험에는 제약이 따른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이번에 제시된 OLED 플랫폼은 이런 한계를 보완해, 한국이 차세대 웨어러블 광전자약 분야에서 기술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 기술로 평가된다.
향후 상용화를 위해서는 의료기기 인허가와 임상 설계가 핵심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약물이 아닌 빛 자극으로 인지 기능과 병리 지표를 조절하는 기술 특성상,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해외 규제기관은 안전성과 유효성을 동시에 검증해야 한다. 피부 및 눈 안전성, 장기간 자극 시 조직 손상 여부, 특정 신경회로 과흥분 가능성 등에 대한 전임상 데이터가 요구된다. 동시에 전자약으로 분류될 경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데이터 기록 기능까지 통합적으로 인증을 받아야 해 개발사 입장에서는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규제와 보안 요구사항도 고려해야 한다.
연구진은 표준화된 색상·조도·주파수 제어 능력을 바탕으로 사람 대상 초기 임상 연구 설계에도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플랫폼 자체가 색과 밝기, 깜박임 비율, 노출 시간을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 병기별·연령별로 다른 자극 프로토콜을 설계하는 데 유리하다. 특히 알츠하이머 외에도 경도인지장애, 파킨슨병, 우울증 등 뇌회로 불균형이 관여하는 다양한 신경정신질환으로 응용 범위를 확장할 여지도 거론된다.
연구에 참여한 노병주 박사는 색상 표준화의 실험적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이번 성과가 빛 치료 연구에서 색상 변수를 정량적으로 통제하고 효과를 비교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특히 적색 OLED가 알츠하이머 병기별로 ADAM17 활성화와 BACE1 억제를 동시에 유도하는 핵심 색상임을 확인한 점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했다.
최경철 교수는 OLED 기반 플랫폼의 공정성과 안전성에 주목했다. 그는 균일 조도 OLED가 기존 LED 구조의 한계를 넘어 높은 재현성과 안전성 평가를 가능하게 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일상생활 속에서 착용해 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웨어러블 적색 OLED 전자약이 알츠하이머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산업계는 이 기술이 실제 임상과 시장에 안착해, 약물 중심이던 치매 치료 전략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