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연금이 된다”…핀테크, 개인연금 추천 고도화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활용해 ‘노후 걱정’을 덜어 주려는 핀테크 업계의 개인연금 추천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노후자금 마련이 투자자의 경험과 감에 의존했다면, 최근에는 금융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연금 상품을 비교하고 포트폴리오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모습이다. 업계는 급격한 고령화와 공적연금에 대한 불신이 겹치면서, 데이터 기반 사적연금 관리가 자산관리 산업의 핵심 영역으로 부상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본다.
국내 주요 핀테크 기업과 인터넷 은행은 마이데이터 사업을 발판으로 개인의 소득, 소비, 투자 성향을 종합 분석해 맞춤형 연금 전략을 제안하는 서비스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사용자는 앱에 접속해 본인의 국민연금 예상 수령액, 기존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계좌 현황을 통합 조회하고, 목표 은퇴 연령과 월 필요 생활비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부족 자금 규모와 적립 시나리오를 확인할 수 있다. 일부 서비스는 사용자의 위험 선호도에 따라 채권형, 혼합형, 주식형 상품 비중을 조정해 주는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핵심 기술은 머신러닝 기반의 수익률 예측 모델과 라이프사이클 자산배분 알고리즘이다. 과거 시장 데이터와 각 연금 상품의 운용 성과를 학습한 모델이 향후 변동성을 추정하고, 연령 구간별로 추천해야 할 주식과 채권 비중을 자동 계산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은퇴까지 20년 이상 남은 30대는 성장주 비중을 높이고, 50대 이후에는 채권과 대체자산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리는 식이다. 일부 알고리즘은 주기적으로 포트폴리오를 리밸런싱해, 특정 자산 비중이 과도하게 커질 경우 자동으로 조정하는 기능도 구현하고 있다.
이 같은 디지털 연금 설계는 전통적인 은행 창구 상담이나 보험 설계사 중심의 판매 구조가 가진 한계를 일정 부분 보완한다는 평가다. 과거에는 상품 라인업이 제한적이고 수수료 구조가 복잡해, 가입자가 자신에게 유리한지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웠다. 반면 앱 기반 서비스는 여러 금융사의 연금 상품을 수수료, 과거 성과, 위험도 등 지표별로 시각화해 보여주고, 연금 수령 시점별 예상 세후 수령액을 시뮬레이션해 줌으로써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데이터 기반 연금 관리 흐름은 이미 본격화됐다. 미국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가 401k 퇴직연금 계좌를 자동으로 관리해 주는 서비스가 보편화되고 있고, 유럽에서도 핀테크 기업이 은행과 제휴해 개인연금 적립과 투자 전략을 통합 제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장기 수익률보다는 변동성 관리와 은퇴 시점의 현금 흐름 안정성에 초점을 맞춘 알고리즘 연구가 활발하다. 국내에서는 아직 퇴직연금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을 크게 상회하지 못하고 있어, 알고리즘 기반 위험관리와 비용 절감 효과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규제 환경은 기회이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 마이데이터 제도에 따라 금융사는 고객의 동의를 전제로 흩어진 계좌 정보를 통합해 분석할 수 있지만, 동시에 개인정보보호법과 전자금융거래법을 준수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알고리즘이 연금 상품을 추천하는 행위가 투자자문에 해당하는지, 단순 정보 제공인지에 대해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중으로 알려졌다. 인공지능이 개입하는 자산관리 서비스에 대해 설명의무와 책임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지도 남은 쟁점이다.
전문가들은 AI가 연금 설계의 효율성을 높여 줄 수 있지만, 데이터의 한계와 예측 불확실성을 감안해 ‘참고 도구’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기적인 시장 변동, 제도 변화, 개인의 건강 상태와 소득 변동까지 완벽하게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시에, 디지털 소외 계층이 정교한 연금 관리 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공공 부문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핀테크 업계는 앞으로 의료비, 장기요양 비용, 주거비 등 개별 생활 패턴까지 반영한 초개인화 연금 설계 기술을 고도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산업계는 데이터와 AI가 설계한 ‘디지털 연금’이 실제로 중산층의 노후 불안을 줄여 줄 수 있을지, 제도와 시장의 조율 속도를 함께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