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갯벌 위 산책”…시흥의 자연에서 찾은 쉼의 순간
요즘 도심 가까이 자연을 느끼러 떠나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기능적으로 분주했던 공간이, 어느새 감각을 깨우는 쉼터로 다가온다. 빗소리와 바람, 갯벌의 숨결이 스며든 시흥시의 풍경도 그런 변화의 한 장면이다.
경기도 시흥시는 서해안 특유의 광활한 갯벌과 염전, 그리고 그 역사의 흔적이 살아 있는 곳이다. 오늘, 흐리고 비가 내리는 오후. 장곡동 갯골생태공원에서는 길게 뻗은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간간히 눈에 띈다. 눈앞에 펼쳐진 내만 갯벌에는 갈대 숲이 비바람에 흔들리고, 흙 내음은 무심코 이곳을 찾은 이들의 마음 깊은 곳을 일깨운다.

갯벌 주변을 여유롭게 걷다 보면, 탁 트인 시야가 눌렸던 숨을 한껏 틔워 준다. 멀리 드리운 바다가 비와 어우러져, 색채마저 조용히 변한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이 분위기 덕분에 매번 같은 길이라도 새로운 감정이 깃든다. SNS에도 ‘시흥 갯골생태공원 인증샷’이 꾸준히 등장한다. “유난히 바람이 좋은 날이었다” “흙길을 맨발로 걷는 기분,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는 댓글이 모인다.
오이도 해안가 역시 인기다. 정왕동 바닷가에 늘어선 산책길, 넓게 펼쳐진 서해 풍경, 그리고 저녁이면 온 바다를 붉게染이는 노을이 도시인의 발길을 붙든다. 바닷바람 맞으며 해변을 거닐다 보면 일상의 복잡한 감정도 잠시 잊혀진다. 이곳을 찾은 한 방문객은 “일몰풍경 앞에선 별 말이 필요 없다”며, “그저 바다가 다 안아주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숫자로도 이런 경향은 드러난다. 지역 자연공원과 수목원 방문객 수는 코로나19 이후 꾸준히 증가세다. 시흥시 매화동의 용도수목원도 마찬가지. 잘 가꿔진 산책로, 다양한 나무와 꽃들, 맑은 공기… 일상과 떨어진 적막이 아닌, 오히려 일상의 무게를 덜고 하루에 작은 쉼표를 찍는 느낌이다.
전문가들은 자연에서의 ‘일상 탈출’이 마음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생태치유 분야 연구자인 최 모 박사는 “바다, 숲 같은 환경이 사람에게 정서적 안정을 준다”며 “비 오는 날 산책이 의외로 내적 휴식과 연결될 수 있다”고 느꼈다.
동네 산책, 바다를 볼 수 있는 짧은 여행이 소소한 트렌드가 된 지금, 커뮤니티에는 “촬영만이 아니라 내 감정을 머물게 하러 간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익숙한 동네의 자연 풍경조차 계절과 날씨에 따라 매번 다르게 다가온다.
시흥에서의 산책, 비 내리는 갯벌을 걷는 시간은 단순한 여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탁 트인 자연 앞에서 일상의 작은 무거움들도 흘러내리듯 사라진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