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진술 정치인 5명"…특검 "특정 정당 위한 편파수사 말 성립 안 된다"
편파수사 논란과 특검의 수사 원칙이 맞부딪쳤다. 여야 정치인이 함께 거론된 통일교 자금 의혹과 대통령실 관저이전 특혜 의혹을 두고,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수사 공정성 공방은 더욱 거세지는 모양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11일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에서 정례 브리핑을 열고,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을 조사할 당시 그가 실명으로 진술한 여야 정치인은 모두 5명이라고 처음으로 공식 확인했다. 다만 최근 법정 증언을 계기로 제기된 편파수사 지적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하며 수사팀 판단에 문제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박노수 특별검사보는 "지난 8월 말 윤 전 본부장의 진술에서 언급된 대상은 여야 정치인 5명이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통일교 측 지원 대상 정치인에 대해선 구체적 언급을 자제해왔으나, 윤 전 본부장 진술에서 거론된 인원 수만큼은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박 특별검사보는 해당 5명의 실명에 대해선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관련 의혹이 제기된 인사들은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일부 드러난 상태다. 여권에선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정동영 통일부 장관, 임종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야권에선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자신들을 향한 의혹에 일제히 사실무근 반론을 내놓은 바 있다.
수사보고서상으로는 정동영 장관과 나경원 의원에 대해 금품 수수 관련 구체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통일교 관련 의혹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번지면서, 의혹 제기 자체를 정치 공세로 보는 시각과 검증 필요성을 강조하는 시각이 맞서고 있다.
앞서 윤 전 본부장은 5일 자신의 재판에서 통일교가 국민의힘뿐 아니라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더불어민주당 측 정치인도 지원했다며 "이 사실을 특검팀에 말했지만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이 발언이 전해지자 야권에서는 특검이 여권 인사 연루 의혹을 축소했다는 비판이 나왔고, 여권에선 근거 없는 정치공세라는 반박이 이어졌다.
박 특별검사보는 이에 대해 "여권 인사가 연루된 해당 의혹이 특검법상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수사팀 내 어떠한 이견도 없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이 사안에 대해 수사하지 않은 게 특정 정당을 위한 편파수사라는 취지의 보도나 주장이 잇따르는 데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검은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없이, 해당 진술 사안이 특검법상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이라며 "이 점을 분명히 말한다"고 덧붙였다. 즉, 수사 범위를 정하는 기준은 정치적 유불리가 아니라 특검법이 규정한 대상 여부였다는 주장이다.
특검팀 설명에 따르면, 수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의 관련 진술을 확보했으나 정식 수사에는 착수하지 않고 수사보고서 형태로만 기록을 남겼다. 그러다 통일교 관련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지난달 초, 향후 이첩을 염두에 두고 내사 사건번호를 부여했다. 당시 금품을 주고받은 당사자들에게 뇌물죄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특별검사보는 수사 시점과 이첩 절차를 둘러싼 늑장 대응 비판에 대해서도 "통상 특검법상 수사 대상이 아니거나 추가 절차가 필요한 사안은 관련 수사가 종료되는 시점에 적법한 수사기관에 일괄 이첩하는 것이 실무상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통일교 관련 수사가 지난달 초 마무리되면서, 이첩을 위한 내사 기록 작성과 사건번호 부여가 이뤄졌다는 취지다.
또한 특검팀은 애초 통례에 따라 특검 수사가 끝나는 시점에 사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로 이첩할 방침이었으나, 5일 법정 증언을 통해 윤 전 본부장의 진술 내용이 알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박 특별검사보는 "언론 보도로 내사 사건의 기밀성이 상실됐고 그에 따라 증거인멸 우려가 커져 더는 이첩을 미루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윤 전 본부장의 최초 진술로부터 4개월이 지난 9일 사건을 국가수사본부로 넘겼다.
특검팀은 이러한 과정 전반에 대해 "모든 절차는 특검과 특별검사보 등 지휘부로 보고·공유되는 통상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쳤다"고 강조했다. 공소시효 논란에 대해선 구체적 혐의 사실은 밝히지 않으면서도, 윤 전 본부장 진술에 따라 적용될 수 있는 죄명을 감안할 때 수사기간 종료 후 일괄 이첩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5명 가운데 일부는 뇌물 또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검토되는 상태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뇌물죄 공소시효는 15년, 정치자금법 위반은 7년이다. 특검팀은 이 기준에 비춰봐도 수사 공백 우려는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한편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같은 날 대통령실 관저이전 특혜 의혹 수사의 고삐를 죄었다. 특검팀은 관저이전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김오진 전 국토교통부 차관과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출신 황 모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김 전 차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대통령실 관저 이전 실무를 총괄한 인물로,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와대이전TF 1분과장을 거쳐 대통령비서실 관리비서관을 지냈다. 관저이전 관련 의사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던 만큼, 그의 혐의 여부는 향후 특검 수사의 향배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특검팀은 김 전 차관과 황 씨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를 적용했다. 직권을 이용해 특정 업체에 이익을 안겨줬는지, 관련 입찰과 계약 과정에서 건설 관련 법규를 위반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관저이전 특혜 의혹의 뼈대는 인테리어 업체 21그램이 종합건설업 면허 없이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 및 증·개축 공사를 수의 계약 방식으로 수주해 특혜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야권은 사실관계 확인과 별개로 공사 과정 전반에 대한 자료 공개와 책임 규명을 요구하고 있고, 여권은 절차상 하자가 없었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통일교 자금 의혹과 관저이전 특혜 의혹을 둘러싼 공방이 격화되면서, 특검의 수사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은 여야 정치인 5명 실명 진술과 수사 범위 판단을 놓고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어, 향후 국회 국정감사나 상임위 회의에서 관련 공방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특검팀이 수사 결과를 정리해 최종 수사보고서를 제출하는 시점에는 정치권 공방이 한층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는 특검 수사 결과와 국가수사본부 수사 경과를 지켜보면서, 필요할 경우 추가 청문회나 관련 입법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