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투자 키운다…정부, 민간자본 촉진책 모색
바이오 기술이 미래 성장 산업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면서 정부가 민간 투자 활성화 방안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약 개발과 첨단 바이오 소재, 진단 기술 등은 막대한 초기 자본과 장기간의 개발 기간이 필요한 영역으로,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계와 정책 기관은 이번 논의를 바이오 투자 생태계 전환의 분기점으로 보고 제도 개선 요구를 구체화하는 데 주력하는 분위기다.
국가바이오위원회 지원단은 9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 위원회 회의실에서 바이오 투자생태계 강화를 위한 정책간담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간담회에는 지원단을 비롯해 한국바이오협회, 한국투자파트너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KISTEP, 한국보건산업진흥원 KHIDI 등 바이오 투자와 정책을 담당하는 민간과 공공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정부 측은 국내 바이오 산업이 신약 개발, 재생의료, 디지털 헬스케어 등으로 빠르게 확장되는 상황에서 민간 자본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규제 정비와 재정 인센티브 방안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현장의 의견을 청취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초기 연구개발 단계에 머무르는 프로젝트를 임상과 사업화 단계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 수단에 관심이 집중됐다.
참석자들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의 바이오 투자 촉진 사례를 공유하면서 한국 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짚었다. 미국은 대형 벤처캐피털과 연기금, 공공 펀드가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 바이오 펀드를 통해 신약 파이프라인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중국은 국가 전략 산업으로 바이오를 지정해 세제 혜택과 인프라 투자를 결합해 성장 동력을 마련한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 역시 제약사와 대학, 벤처가 연계된 오픈 이노베이션 모델을 확대해 안정적인 기술 이전과 라이선스 아웃 구조를 구축한 사례로 소개됐다.
국내 상황에 대한 진단도 이어졌다. 신광민 한국바이오협회 이사는 현재 국내 바이오 업계는 자금순환이 원활하지 않고 글로벌 신약 개발 경험이 부족해 도약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비상장 바이오 기업의 가치 변동성이 커지면서 성장 단계별로 이어져야 할 후속 투자가 끊기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후보물질 발굴 이후 고비용이 수반되는 임상과 대규모 글로벌 시험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의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환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팀장은 일본 사례를 언급하며 개발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 진입을 전제로 한 벤처 생태계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은 초기 스타트업 단계에서부터 기술 수출과 글로벌 제약사와의 공동 개발을 목표로 투자 구조를 설계해 꾸준히 신약 수출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서도 기술개발 단계에서부터 국제 규제 기준과 다국가 임상을 전제로 한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간담회에서는 기술개발, 임상, 인허가, 사업화로 이어지는 전주기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연구개발 지원과 별개로 임상 시험 인프라, 데이터 관리, 규제 과학 역량을 묶어 지원하는 통합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각 단계의 리스크와 소요 기간을 예측하기 어려워 투자를 주저하게 되고, 기업은 상장이나 단기 기술 이전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 요구도 커졌다. 참석자들은 세제 지원, 정책금융과 민간 펀드의 매칭 투자, 기술 기반 담보 제도 등 다양한 수단을 거론했다. 특히 임상 2상 이후와 같은 이른바 데스밸리 구간을 넘기기 위한 브리지 펀딩 성격의 정책 금융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공공 연구 성과의 이전 절차를 간소화하고, 기술 가치 평가 기준을 현실화해 투자 결정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글로벌 기준에 맞춘 규제와 인허가 환경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참석자들은 미국 식품의약국과 유럽의약품청 등 주요 규제 기관이 바이오 의약품과 첨단 재생의료,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가이드라인을 신속히 업데이트하며 산업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관련 부처가 초기 단계부터 기업과 소통하는 규제 샌드박스형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국가바이오위원회 지원단은 간담회에서 제기된 내용을 토대로 유관 기관과의 협업을 강화해 실효성 있는 투자 지원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향후에는 분야별 세부 간담회를 통해 신약, 의료기기, 디지털 헬스케어 등 세부 영역별로 수요를 정교하게 파악하고, 민간이 체감할 수 있는 제도 개선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이번 논의가 실제 예산과 제도에 반영돼 바이오 투자 생태계 전반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