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안전성평가 전면 도입”…식약처, 전주기 지원으로 K뷰티 고도화
화장품 안전성평가 제도가 K뷰티 산업의 규제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동을 걸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8년 본격 시행을 목표로 화장품 안전성평가를 제도화하고, 2025년부터는 평가에 필요한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전문 인력 양성, 기업 컨설팅 등 전주기 지원에 들어간다. 글로벌 시장에서 강화되는 화장품 안전 규제에 선제 대응하는 동시에, 할랄 인증 지원 확대를 통해 중소 화장품 기업의 신흥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정책이 안전성과 수출 경쟁력을 동시에 겨냥한 규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기획재정부의 2026년부터 이렇게 달라집니다 자료를 통해 화장품 안전성평가 제도 도입 계획과 실행 일정을 공개했다. 안전성평가는 화장품이 일반적이거나 합리적으로 예상 가능한 사용 조건에서 인체에 위해를 주지 않는지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절차를 말한다. 이미 관련 법적 근거는 2024년에 마련했으며, 2028년부터 단계적 의무 시행을 예고한 상태다. 내년부터는 제도 시행에 앞서 국내 기업들이 평가 체계를 미리 구축할 수 있도록 실무 중심 지원 사업이 가동된다.

기술적으로 안전성평가는 원료 독성 정보, 노출량 추정, 사용 패턴 분석, 위해성 평가 등 각종 데이터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유럽연합의 화장품 규제처럼 성분별 독성 데이터와 인체 적용 시험 결과 등을 체계적으로 결합해 특정 제품의 안전 마진을 수치로 산출하는 구조에 가깝다. 특히 국내 제도 설계 과정에서는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세포 기반 시험법이나 인실리코 독성예측 같은 신기술 활용 범위도 함께 논의될 수 있어, 안전성뿐 아니라 윤리성과 과학적 타당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방향으로 정교화가 진행될 전망이다.
식약처는 내년에 전문기관을 통한 맞춤형 컨설팅과 안전성 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 담당자 교육 프로그램을 병행해 기업이 제도 도입 전 과정을 사전에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성분별 안전성 자료를 검색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정보 인프라를 제공함으로써,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해외 자료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부담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평가보고서 작성 방법, 규제 대응 절차, 품목별 사례 분석 등 실무 교육을 더해 중소기업도 대기업 수준의 규제 대응 역량을 확보하도록 돕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이번 지원책은 K뷰티의 수출 구조를 고려할 때 시장성과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화장품 산업은 중소업체 비중이 높고, 이들 기업 상당수가 OEM과 ODM 방식으로 해외 브랜드와 거래하거나 직접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유럽과 중동, 동남아시아 등 주요 수출 시장에서 안전성 입증 요구가 강화될 경우, 체계적인 평가 자료를 보유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식약처의 전주기 지원 체계가 중소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춰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고르게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글로벌 규제 환경과의 정합성을 높이는 전략도 병행된다. 유럽연합은 이미 성분 중심의 위험 관리와 사전 평가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고, 미국과 동남아 주요국도 화장품 안전 규정을 잇따라 강화하는 흐름에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안전성평가 제도가 국제 기준과 정렬될 경우, 한국 화장품의 규제 신뢰도가 높아져 수출 심사 과정이 간소화되거나 상호 인정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반대로 준비가 미흡하면 국내 시장용과 수출용 제품을 이원화해야 하는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사전 대응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식약처는 안전성평가 제도와 연계해 할랄 화장품 지원도 확대한다. 내년부터 화장품 할랄 인증을 겨냥한 글로벌 진출 지원 사업 범위를 넓혀, 교육과 컨설팅, 정보 제공을 통합한 지원체계를 가동한다. 할랄은 이슬람 경전에 따라 허용된 원료와 제조 공정을 사용해 만들고 쓰는 제품 전반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원료 조달과 제조 공정, 유통 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종교적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무슬림 인구가 증가하면서 할랄 뷰티 시장도 빠르게 성장 중이지만, 중소기업이 국가별 규제를 개별적으로 파악하고 인증을 취득하기에는 정보 비대칭이 큰 편이다.
내년부터는 기존 컨설팅 제도를 고도화해 교육 중심의 체계를 더한다. 수강자 수준에 따라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눈 단계별 과정과 함께, 국내외 인증기관 전문가가 참여하는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국가별로 상이한 할랄 기준과 심사 절차를 구조적으로 정리해 제공하고, 원료 관리, 공정 설계, 문서 준비 등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지침을 제시함으로써 기업들이 시행착오를 줄이도록 돕는 방식이다. 맞춤형 컨설팅을 통해 유망 수출국을 중심으로 전략을 세우는 기업에는 보다 구체적인 시장 분석과 인증 로드맵을 제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규제 협력 측면에서는 해외 할랄 인증기관과의 상호인정 협정 추진도 언급됐다. 상호인정은 특정 국가나 기관에서 발급한 인증을 상대국이 일정 조건 아래 동등하게 인정하는 제도로, 체결될 경우 인증 획득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식약처는 향후 주요 할랄 인증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한국 내 인증 결과의 국제 신뢰도를 높이고, 국내 기업들이 여러 국가 인증을 중복으로 받지 않고도 다양한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각국의 종교적, 문화적 차이를 고려할 때 협상과 조율에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안전성평가와 할랄 지원을 축으로 한 이번 정책이 K뷰티 산업의 중장기 성장 동력을 제도적 측면에서 보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비자 안전과 윤리적 기준을 선제적으로 충족하는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를 얻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강화된 평가 기준이 단기적으로는 중소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지원 프로그램의 실효성과 현장 적용성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라는 지적도 뒤따른다. 산업계는 이번 정책 패키지가 실제로 시장 경쟁력과 직결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