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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료비에 지쳤다”…올리버쌤, 왜곡보도 해명에 의료시스템 논쟁 확산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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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보험 중심의 미국 의료 시스템 부담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영어 교육 콘텐츠로 잘 알려진 유튜버 올리버쌤이 미국 텍사스에서 겪는 세금과 의료비, 공교육 붕괴 문제를 영상으로 공유했다가, 국내 일부 매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국행’ ‘한국 의료 무임승차’ 논란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개인 경험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국가별 의료재정과 커버리지 구조에 대한 공론이 왜곡된 채 소비되는 양상도 드러났다. 업계와 의료정책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가 공공보험 중심 한국과 민간보험 중심 미국의 구조 차이를 다시 짚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구독자 226만 명을 보유한 올리버쌤은 2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최근 보도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대형 언론사들이 저희가 한국행을 결정했다는 기사를 발행했다”며 “저희는 텍사스에 처한 가족 상황을 공유하고 고민을 나누었을 뿐, 구체적인 행방 결정을 내린 적도 한국을 언급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잘못 인용된 기사 이후 댓글창에는 ‘한국 의료에 무임승차하려 한다’는 비난이 이어졌고, 그는 “이미 정말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기에 날 선 댓글이 더 마음 아프게 느껴진다”며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논란의 출발점은 26일 공개된 영상이다. ‘한국인 와이프와 미국 이민 8년 차…이제는 진짜 포기합니다’라는 제목의 이 영상에서 그는 미국 생활의 비용 구조와 생활 인프라 문제를 구체적인 수치와 사례로 전했다. 먼저 주택 보유에 들어가는 세금과 보험료를 언급하며 “내년부터 재산세 8000달러, 주택 보험료 4402달러를 내야 한다”며 “집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1년에 1800만 원을 내야 하는 셈인데, 이 비용이 매년 15%씩 오를 거라는 전망이 있다”고 말했다.  

 

텍사스 지역 인프라와 기후 리스크도 지적했다. 올리버쌤 부부는 “텍사스는 여름에 40도가 넘고, 아이를 출산하기 2주 전에도 전력난으로 전 지역이 멈췄다. 그때 300명 정도가 사망했다”며 “당장 내년 여름에도 비슷한 정전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는데, 40도 폭염을 다시 견딜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디지털 헬스 인프라나 스마트 그리드 같은 기술적 보완책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는 지역 격차 문제도 간접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공교육 예산 축소 역시 ‘이민 생활을 포기하고 싶다’는 정서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그의 아내는 “학교 예산이 많이 줄어 주변 대도시 큰 학군도 폐교가 이어지고 있다”며 “선생님들이 많이 그만두거나 해고되면서 자격증 없는 일반인이 교사를 대체하는 경우가 늘고, 주 4일만 운영하는 학교도 생겼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일부 주에서 세수 부족과 교육 예산 삭감이 학생당 투자 감소와 학습 환경 악화로 직결되고 있다는 최근 교육 통계와도 맞닿아 있다.  

 

영상 후반부에서 가장 강하게 강조된 대목은 의료 시스템에 대한 경험담이다. 그의 아내는 가족의 의료보험료가 “내년부터 월 2600달러, 한화 약 376만 원 수준까지 오른다”고 밝혔다. 또 시아버지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을 때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때 받지 못한 경험을 언급하며 “한 달에 400만 원가량 보험료를 내는데도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곳은 그냥 아프면 소모품처럼 없어지는 곳 같다”고 비판했다.  

 

미국 의료 구조는 민간 상업보험과 고비용 병원 시스템에 크게 의존하는 반면, 한국은 단일 공공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을 중심으로 한 공공 지불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보험 상품 설계에 따라 자기부담금과 보장 범위가 크게 달라, 높은 보험료를 내더라도 중증 질환 시 본인 부담이 수천만 원 수준으로 치솟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한국은 건강보험과 산정특례, 재난적 의료비 지원 등 다층적 보조 제도가 작동해, 동일 중증 질환이라도 가계 파탄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구조를 보유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같은 구조 차이에도 불구하고,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영상 이후 ‘올리버쌤이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의료를 이용하려 한다’는 추측성 게시글과 악성 댓글이 쏟아졌다. 일부 언론은 ‘한국행을 결정했다’는 취지로 보도하면서, 정확한 발언 맥락을 확인하지 않은 채 의료비 발언을 한국 의료와 직접 연결지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보편적 건강보험 시스템을 재정적으로 ‘누가 부담하고 누가 혜택을 누리는가’라는 낡은 이분법으로 소비하는 논조가 뒤따랐다.  

 

올리버쌤은 재차 “어디로 갈지도, 어떤 선택을 할지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고, 영상 어디에서도 한국 의료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그는 “2년 동안 인플레이션과 병원 문제를 포함해 전반적인 생활 환경을 고민해왔다”며 “아버지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고, 이민 생활을 끝내야 할지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의료 접근성을 포함한 삶의 질 전반을 고민하는 ‘리로케이션’ 고민이, 한 국가의 의료 시스템을 겨냥한 선택 선언으로 과도하게 해석됐다는 취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논란이 디지털 플랫폼 시대 건강 정보 소비 방식에도 시사점을 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에서 개인의 의료비 경험은 의료제도와 바이오 산업 전반에 대한 대중 인식을 형성하는 주요 창구가 됐다. 그러나 이번 사례처럼 언론의 자극적 프레이밍과 결합될 경우, 실제 제도 설계와 재정 구조에 대한 사실 기반 토론이 아니라 ‘외국인의 무임승차’ 같은 감정적 논쟁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한국 모두 디지털 헬스케어와 바이오테크 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지만, 그 전제가 되는 보험 체계와 병원 재정 구조는 크게 다르다. 미국은 민간보험과 대형 병원 시스템이 원격의료, 데이터 기반 정밀의료 시장을 주도하는 방식이고, 한국은 공공보험 수가 체계 안에서 디지털 치료제와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의 지속 가능성을 조율하는 구조다. 각국의 의료비 경험을 단순 비교해 ‘어디가 더 싸다’는 결론으로 귀결시키기보다, 어떤 구조가 의료 접근성과 재정 지속 가능성, 바이오 산업 혁신을 동시에 뒷받침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의료정책 연구자는 “개인의 의료비 고통 경험은 제도 논의의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그것을 특정 국가 의료 시스템에 대한 혐오나 배제 논리로 연결하는 것은 또 다른 왜곡을 부를 수 있다”며 “디지털 플랫폼 시대일수록 팩트 체크와 제도 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온라인에서 불붙은 이번 논쟁이 실제로는 공공보험과 민간보험, 그리고 디지털 헬스 혁신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시하는 분위기다.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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