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무어의 법칙은 계속될까”…찰리멍거, 말년까지 AI·에너지 고민한 가치투자자의 유산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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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26일, 미국(USA) 로스앤젤레스에서 전해진 보도를 통해 전설적 투자자 찰리 멍거의 말년 행적이 새롭게 조명됐다.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을 지낸 그는 별세 직전까지 가치투자 원칙을 유지하며 인공지능(AI)과 에너지 수요 변화를 고민했고, 마지막 배달 음식으로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보도는 워런 버핏과 함께 미국 금융 시장을 이끌어온 멍거의 마지막 나날을 인간적 단면과 함께 비추고 있다.

 

현지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 멍거가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보낸 말년의 생활상을 상세히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에어컨도 설치되지 않은 자택을 말년의 거처로 고수하며, 평소 친분이 깊던 친구와 지인들을 꾸준히 만나는 등 90대 후반에도 활발한 교류를 이어갔다. 고령에도 투자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새로운 기술과 미래 산업 구조에 관한 질문을 계속 던지며 지적 호기심을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찰리 멍거’ 말년까지 가치투자·AI 고민…생전 마지막 배달음식은 K치킨
‘찰리 멍거’ 말년까지 가치투자·AI 고민…생전 마지막 배달음식은 K치킨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오랜 파트너인 멍거는 ‘오마하의 현인’ 버핏과 더불어 글로벌 금융 시장에 가치투자 철학을 전파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단기 유행보다 기업의 내재가치와 수요·공급 구조를 중시하는 접근법으로, 여러 차례 시장 변동 속에서도 장기 수익을 거두며 투자자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버크셔해서웨이의 사업 구조와 투자 방향에도 그의 조언과 통찰이 깊이 반영돼 왔다.

 

WSJ는 멍거의 일상에서 음식이 중요한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가족들은 고령의 건강을 고려해 식단을 관리하려 했지만, 멍거는 엄격한 제한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손부 위트니 잭슨은 결국 가족들이 그의 뜻을 존중해 배달 음식을 허용했으며, 말년에 주문한 마지막 배달 음식이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멍거는 치킨 한 마리에 김치볶음밥과 와플 프라이(감자튀김의 한 종류)를 함께 주문해 식사한 것으로 소개됐다.

 

WSJ는 또 멍거가 스팸을 특히 좋아했다고 전했다. 스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전투식량으로 여러 국가에 보급된 가공육 제품으로, 군 복무 경험이 있는 멍거에게는 추억이 깃든 음식이었다는 설명이다. 잭슨은 시조부였던 멍거를 위해 직접 스팸 볶음밥을 여러 차례 만들어 대접했다고 회고했다. 한국과 아시아 지역에서도 대중적인 스팸과 김치볶음밥, K프라이드치킨을 즐겼다는 사실은 글로벌 금융 거물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의 지적 호기심은 생의 마지막 시기까지 이어졌다. 친구 제이미 몽고메리에 따르면, 멍거는 별세 1∼2주 전에도 “무어의 법칙이 인공지능 시대에도 계속 유효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집적도가 약 1년 반∼2년 주기로 두 배씩 높아져 컴퓨터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향상한다는 무어의 법칙이, AI 확산 이후에도 같은 속도로 기술 발전을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WSJ는 이를 두고 멍거가 말년까지 기술 패러다임 전환을 주시했다고 평가했다.

 

멍거는 생의 마지막 해인 2023년 투자 포트폴리오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를 보였다. 그는 그동안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석탄 기업들에 새로 투자해 상당한 수익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석탄 산업이 구조적으로 사양 산업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도, 전 세계 에너지 수요가 높아질 경우 석탄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자금을 배분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결정은 단기적인 친환경 트렌드보다 실제 수요와 가격·공급 구조에 기반해 기업 가치를 평가해 온 그의 가치투자 원칙이 말년까지 유지됐다는 방증으로 해석됐다.

 

이러한 행보는 기후 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글로벌 논의와 맞물려 논쟁적 평가도 낳을 수 있는 대목이다. 주요국과 국제기구가 탄소중립을 목표로 석탄 사용 감축을 추진해 온 가운데, 멍거의 석탄 투자는 시장 현실과 과도기적 에너지 수요에 초점을 맞춘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전통 에너지 자산의 가치 재평가라는 관점에서 투자자들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흐름과 전통 가치투자가 어떻게 공존할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멍거의 말년은 워런 버핏과의 마지막 인사로 마무리됐다. WSJ에 따르면 그는 별세 며칠 전 병원에 입원했고, 입원 중 버핏 회장과 전화 통화를 통해 작별 인사를 나눴다. 버크셔해서웨이의 공동 설계자로 평가받는 두 사람의 인연은 멍거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글로벌 투자 업계에서는 멍거와 버핏의 파트너십을 20세기 후반 이후 자본시장의 상징적 동맹으로 평가하며, 그가 남긴 투자 원칙과 철학이 앞으로도 시장과 투자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금융가에서는 멍거가 남긴 질문들, 특히 AI 시대 기술 발전 속도와 에너지 수요 구조에 대한 고민이 향후 투자 전략의 주요 화두로 남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의 삶과 말년의 선택은 초고령 사회와 기술 대전환기, 에너지 전환이 교차하는 현 시점에서 투자자와 정책 결정자 모두에게 복합적인 시사점을 남겼다는 평가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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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멍거#워런버핏#버크셔해서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