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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검사관 전면 가동"…식약처, 신약 허가 240일로 단축 추진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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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이 식품과 의약품 안전관리 체계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AI 기반 위험 예측과 온라인 불법유통 감시 시스템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국민 안전과 산업 혁신을 동시에 잡겠다는 전략을 공개했다. 신약 허가심사 기간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인 240일 이내로 줄이겠다는 목표도 제시돼, 제약·바이오 업계의 개발 전략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획을 두고 AI를 활용한 규제 혁신 경쟁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6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내년 업무계획 핵심과제를 브리핑했다. 브리핑에는 오유경 식약처장을 비롯해 주요 국장이 참석했다. 식약처는 내년 핵심 과제로 국민 안전, 안심 일상, 혁신 성장을 제시하며, 전 영역에 AI 기반 관리 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오 처장은 보고 내용이 선언에 머물지 않고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로 이어지도록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우선 식품 안전 분야에서 AI 기술이 핵심 도구로 투입된다. 수입식품 위험 예측과 식육 이물 검출 과정에 AI 알고리즘을 적용해 검사 효율성과 정확도를 동시에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수입이력, 생산국 정보, 과거 부적합 사례, 계절과 가격 변동 등 다양한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위험도가 높은 물량을 우선적으로 식별하는 방식이 활용될 전망이다. 식육 분야에서는 영상·이미지 분석 기술을 통해 육류 표면의 이물질이나 비정상 패턴을 자동 검출하는 AI 검사관, 이물조사관, 위해예측관이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이러한 기술 도입은 기존 표본 중심 점검에서 데이터 기반 선제 관리 체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사람 눈에 의존하던 검사 공정을 머신러닝 기반 자동 판독으로 보완해, 동일 인력으로 더 많은 물량을 더 빠르게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여기에 담배 유해성분 정보 공개를 병행해 국민의 알권리도 강화할 방침이다.

 

불법 광고와 온라인 유통 관리 영역에서도 AI가 전면 배치된다. 오유경 처장은 사이버조사단 인력을 늘린 결과 지난해 9만7000여 건의 온라인 부당광고를 적발했다며, 부당광고를 자동 필터링하는 AI 시스템까지 구축 중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AI를 이용해 실제 의료인이 아님에도 의사나 약사로 가장하는 광고를 정조준해 전면 금지하고, 건강기능식품과 의약품으로 오인될 수 있는 일반식품의 제형도 개선해 소비자 혼동을 줄일 계획이다.

 

온라인상의 불법 의약품과 의료용 마약류 유통 차단을 위해서는 온라인 AI캅스가 투입된다. AI캅스는 포털, 커뮤니티, SNS 등에서 수집한 게시물과 거래 정보를 분석해 특정 키워드, 판매 패턴, 우회 표현 등을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차단하는 시스템이다. 사람이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방대한 데이터를 AI가 1차 선별해 고위험 거래를 신속하게 적발하는 구조로, 마약류 유통 확산과 불법 의약품 거래에 대한 대응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식중독 대응 체계에도 데이터 기반 AI 시스템이 적용된다. 김성곤 식품안전정책국장은 식약처와 질병관리청이 보유한 식중독 역학조사 결과보고서 약 2700건과 식중독 균 추적관리사업 데이터 17만건을 통합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 중이라고 소개했다. 여기에 기상 정보, 지역 정보 등 외부 데이터를 연계해 특정 시기, 지역, 환경에서 어떤 원인균과 식품 조합이 의심되는지 AI가 확률적으로 제시하는 구조를 갖춘다.

 

이 시스템은 2025년 6월 시범운영을 거쳐 현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식약처는 이를 통해 현재 41% 수준인 식중독 원인식품 규명률을 내년 45%까지 높이고, 2027년에는 50%까지 단계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특히 이번 기술은 역학조사 인력의 경험과 직관에 크게 의존하던 기존 방식의 한계를 보완해, 초기 대응 속도와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제약·바이오 산업의 관심이 집중된 대목은 허가심사 체계 혁신이다. 오유경 처장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허가심사 서비스 기관이 되겠다고 밝히며, 현재 평균 420일이 소요되는 신약 등 허가심사 기간을 240일 이내로 대폭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AI 허가심사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 방대한 비임상·임상 데이터와 품질 자료를 자동 분석하고, 심사관이 확인해야 할 핵심 쟁점을 추려내는 방식이 도입될 전망이다.

 

AI 도입은 문서 검증 자동화, 통계 일관성 체크, 과거 유사 사례와의 비교 분석 등 반복 업무를 줄여 심사관이 안전성과 유효성 핵심 검토에 더 집중하도록 돕는 구조로 설계될 가능성이 크다. 식약처는 이러한 심사 혁신을 뒷받침하기 위해 1차 채용 인원으로 207명을 확정하고, 내년부터 채용 공고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력 확충과 디지털 심사 플랫폼이 결합될 경우 국내 신약의 시장 진입 시점이 앞당겨져, 글로벌 임상 전략 수립과 기술수출 협상에서도 유연성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제도 정비가 예고됐다. 식약처는 AI를 활용해 개발되는 의료제품의 허가심사 기준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고, 디지털 의료 건강지원기기 성능 인증제를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혈당, 심박, 수면, 정신건강 등 다양한 생체 데이터를 분석해 건강관리를 돕는 기기와 소프트웨어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할 수 있는 공적 기준을 세우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동시에 AI 디지털 기반 신기술 의료제품에 대한 규제 지원을 강화해, 기업들이 허가 전략을 조기에 설계하고 글로벌 규제와의 정합성을 확보하도록 돕겠다는 구상이다.

 

K-푸드, K-바이오, K-뷰티 수출 확대를 위한 규제 지원 전략도 제시됐다. 오 처장은 식품 할랄 인증 지원과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화장품 안전성 평가에 대한 규제 지원을 통해 국내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중동, 동남아 시장에서 필수 조건이 된 할랄 인증과 고부가가치 바이오 CMO, 안전성 검증이 강화되는 글로벌 화장품 시장 환경을 고려할 때, 인허가와 시험평가 단계에서의 지원은 국내 기업의 시간·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업무보고에서는 GMO 안전관리 문제도 논의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유전자변형식품 안전표시제 진행 상황을 점검하며, 품질이 지나치게 좋아 보이는 제품에 대한 경계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오유경 처장은 식약처가 유전자 분석을 수행해 GMO를 식별할 수 있다며, 안전성 평가를 통과한 품목은 신뢰해도 된다고 답했다. 김성곤 국장은 유전자변형 대두 등 국내 허가 GMO 6개 품목에 대해 독성,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 영양학적 문제 등을 엄격히 심사하고 매우 타이트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미국, 유럽 등에서 이미 AI를 활용한 규제 혁신과 디지털 헬스 인증 체계 구축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 FDA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특화된 인허가 제도를 운영하며, 반복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는 AI 알고리즘 관리 방식을 논의하고 있다. 유럽 역시 AI 활용 의료기기에 대한 규제 가이드라인을 정교화하는 추세다. 식약처가 AI 허가심사 지원 시스템과 디지털 기기 인증제 구축에 속도를 낼 경우, 규제의 예측 가능성과 심사 속도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여지는 커지고 있다.

 

다만 AI를 활용한 규제 혁신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성과를 내려면 데이터 품질, 알고리즘 투명성, 개인정보 보호 등 난제가 동시에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의료와 식품 안전 분야에서의 오류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AI 보조와 최종 책임을 지는 인간 심사관의 역할 분담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산업계와 의료계, 소비자단체 등 이해관계자 간 사회적 합의도 중요해지고 있다.

 

식약처는 이번 업무계획을 기반으로 AI와 데이터 기반 규제 체계를 고도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산업계는 실제 심사 기간 단축과 현장 체감도가 어느 수준까지 따라올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글로벌 시장에서의 한국 바이오·헬스케어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술과 규제의 접점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향후 성장 경로를 가를 분기점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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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경#식품의약품안전처#ai검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