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막지 못했지만 돕지 않았다"…한덕수, 내란 방조 혐의 결심공판서 무죄 호소
내란 혐의 수사를 둘러싼 정치적 충돌 지점에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섰다. 비상계엄 선포를 둘러싸고 검찰과 특검, 그리고 전직 국무위원들이 맞붙은 가운데, 한 전 총리는 스스로를 내란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가담 혐의는 전면 부인했다.
한덕수 전 총리는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이진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위증 등 혐의 결심공판에서 "비록 비상계엄을 막지 못했지만, 찬성하거나 도우려 한 일은 결단코 없다"고 최후진술했다. 재판부는 이날 심리를 종결하고 내년 1월 21일을 선고기일로 지정했다.

한 전 총리는 "작년 12월 비상계엄 선포로 국민이 겪은 고통과 혼란을 가슴 깊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제게 많은 기회를 줬고, 전력을 다하는 게 그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자신이 국정 운영 과정에서 책임감을 갖고 일해 왔다고 강조했다.
특히 비상계엄 선포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그 길 끝에 비상계엄 선포 사태를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그날 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하겠다고 하는 순간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또 "땅이 무너지는 것처럼 그 순간 기억은 맥락도 없고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자신이 대통령에게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고 했지만, 막을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국무위원들과 다 함께 대통령의 결정을 돌리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밝혔다. 스스로를 비상계엄을 저지할 실질적 권한과 수단이 부족한 위치에 있었던 인물로 규정한 셈이다.
변호인단은 한 전 총리에게 적용된 내란 우두머리 방조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정면으로 다퉜다. 우선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곧 내란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계엄 선포가 내란 실행과 구별돼야 한다는 법리적 방어에 나섰다. 변호인은 "비상계엄 선포 외에 구체적인 내란 행위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대통령은 이미 선포를 결심한 상태에서 피고인이 반대 취지의 발언을 하는 것 외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저지할 수 있는지 헌법과 법률상 의무가 없다"고 강조했다. 내란 방조는 정범의 범행을 알면서 고의적으로 협력했을 때 성립하는데, 한 전 총리는 내란 계획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고, 저지 의무도 없었다는 논리다.
특검이 재판 진행 중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한 점도 쟁점이 됐다. 변호인단은 구체적 사실관계 변경 없이 혐의를 추가한 것은 위법하다고 맞섰다. 내란죄에서 우두머리, 중요임무, 부화수행으로 세분된 구성요건은 법정형이 다른 별개의 유형인데, 처음엔 우두머리에 대한 방조 개념을 적용했다가 다시 중요임무 종사를 붙인 것은 사실관계가 상이하다는 주장이다.
앞서 변호인단은 "방조는 간접·보조적 행위를 전제로 하고, 중요 종사는 적극·능동적 행위를 전제로 한다"며 "둘 다 가능하다는 식의 공소장 변경은 실질적 방어권에 문제가 생긴다"고도 주장해 왔다. 이날 재판에서도 내란 방조 혐의는 행위 인식과 방조의 고의가 있어야 하고, 내란 중요임무 종사는 모의 참여와 지휘 등 보다 적극적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특히 내란죄의 구조적 특성을 둘러싼 법리 공방도 이어졌다. 변호인단은 내란죄가 필요적 공범 구조를 가진 집합범이며, 내부자 사이에는 일반적 의미의 공동정범, 교사범, 방조범이 성립할 수 없다는 학설이 있다고 언급했다. 내란죄는 애초 여러 명의 참가와 단체 행동을 전제로 성립하는 범죄로, 참가자의 기능과 지위, 역할에 따라 우두머리, 중요임무, 부화수행으로 법정형을 달리 정하고 있어, 내부자에게 다시 방조범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한 전 총리는 국무총리로서 대통령 권한 남용을 견제해야 할 헌법상 책무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법 비상계엄 선포를 막지 않고 방조한 혐의로 지난 8월 29일 재판에 넘겨졌다. 이와 함께 최초 계엄 선포문의 법률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사후 선포문을 작성한 뒤 폐기한 혐의,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 선포문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위증 혐의도 함께 적용됐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내란 사태를 막을 수 있는 핵심 위치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특검은 이날 "내란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사람임에도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의무를 저버리고 계엄 선포 전후 일련의 행위를 통해 내란 범행에 가담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 전 총리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하며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특검 측은 한 전 총리가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장관 등과의 논의 과정에서 계엄 선포의 위법성과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이를 제동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추가는 한 전 총리가 단순한 소극적 방관자가 아니라 계엄 선포 및 후속 조치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 인물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이날로 심리를 마무리하고 내년 1월 21일 선고를 예고한 상태다. 일정이 그대로 진행될 경우, 내란 혐의로 기소된 국무위원 가운데 한 전 총리가 처음으로 1심 판단을 받게 된다. 법조계에선 이 선고가 윤 전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 재판의 법리와 양형 기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첫 잣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비상계엄 선포 책임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도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국회와 여야는 내란 방조와 헌정 질서 파괴 책임 소재를 두고 거센 논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며, 향후 관련 입법과 제도 개선 논의도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