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공장·달 광산 경제권"…우주항공청, 2045 청사진 제시
우주 제조와 자원 채굴 등 우주 기반 산업이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면서, 한국이 국가 차원의 장기 우주경제 전략을 공개했다. 우주항공청은 지구 저궤도에 반도체와 신약을 생산하는 우주 공장을 띄우고, 달과 화성에 경제 기지를 구축해 2040년 약 1473조원 규모로 전망되는 글로벌 우주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우주과학 탐사와 경제활동을 결합한 이번 전략은 발사체와 위성 중심이던 기존 우주 산업 구조를 넘어, 생산과 에너지, 자원 채굴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우주 경제권 경쟁의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우주항공청은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한민국 우주과학탐사 로드맵을 발표했다. 비전은 우주항공 5대 강국 진입을 위한 인류지식과 우주경제 영토 확장으로, 저궤도와 미세중력, 달 탐사, 태양 및 우주과학, 행성계 탐사, 천체물리 등 다섯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임무와 투자 전략을 포함한다. 단순한 과학 탐사 프로젝트가 아니라, 각 단계에서 신소재·바이오·에너지·통신 등 신산업을 실증하고 상용화까지 잇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산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우선 저궤도와 미세중력 분야에서는 지구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저궤도를 우주 제조와 신산업 실증 공간으로 활용한다. 중력이 거의 없는 미세중력 환경에서는 용융과 결정 성장 과정이 지상과 다르게 진행돼, 반도체 웨이퍼 결함을 줄이거나 단백질 결정 구조를 더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주항공청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475억원을 투입해 우주소형무인제조플랫폼실증사업을 추진한다. 발사부터 궤도 상 실험·제조, 지구 재진입과 회수까지 전 주기를 아우르는 소형 무인 우주 제조 플랫폼을 개발해, 실제로 어떤 소재와 의약품이 우주에서 생산 효율이 높은지를 검증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술 개발은 3단계로 나뉜다. 1단계에서는 우주 공정용 신소재, 바이오 시료 처리 시스템, 열 제어 등 우주 제조와 미세중력 활용을 위한 핵심 기반 기술을 확보한다. 2단계에서는 저궤도에서 자동화된 생산을 수행할 수 있는 제조 설비와 공정 제어 기술을 검증해, 지상 공장과 연동되는 생산 네트워크를 설계한다. 3단계에는 실제 저궤도 우주 공장을 구축해 반도체, 고성능 광학 소재, 희귀 결정 기반 신약 후보 물질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고, 향후 유인 임무 지원까지 염두에 둔 상시 운영 체제로 전환한다. 기존 국제우주정거장처럼 연구 위주가 아니라, 수익을 내는 제조 시설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달 탐사 분야는 우주 경제를 현실화할 핵심 단계로 설정됐다. 목표는 독자 기술로 달에 착륙하고, 달 표면 자원을 활용하는 달 경제 기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우주항공청은 2024년부터 2033년까지 10년간 총 5303억원을 투입해 1.8톤급 달 착륙선을 독자 개발한다. 이 착륙선에는 달 표면을 이동하며 지질과 자원을 조사할 로버가 탑재되며, 2032년 연착륙 성공을 통해 독자 달 착륙 기술을 실증하는 것이 1차 목표다.
이후에는 달을 단순 탐사의 대상이 아니라 장기 거주와 자원 생산의 거점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물과 광물 자원을 탐색·추출·저장하는 플랜트를 구축해, 물 분해를 통한 산소 생산이나 연료용 수소 확보 같은 현지 자원 활용 기술을 시험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35미터급 심우주 안테나 고도화, 지구와 달 사이의 광대역 통신망 확장, 달 표면 통신과 항법을 담당할 달 항법 시스템 구축이 병행된다. 더 나아가 달 기지 전력망과 소형 원자력 발전소, 착륙장 등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삼아, 장기적으로는 달에서 생산한 연료와 자원을 화성 탐사와 심우주 임무에 활용하는 시나리오도 염두에 두고 있다.
태양 및 우주과학 분야에서는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라그랑주 4점, 즉 L4 지점에 관측 탐사선을 보내는 도전이 핵심이다. L4 지점은 태양과 지구를 정삼각형으로 이룬 위치로, 태양에서 방출되는 고에너지 입자와 플라즈마 흐름을 안정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최적 지점에 해당한다. 현재 주요국이 활용 중인 라그랑주 1점보다 태양 표면의 활성 영역을 앞에서 관측할 수 있어, 대형 태양 플레어와 코로나 질량 방출을 더 이른 시점에 포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우주항공청은 L4 지점에 우주 환경 예보 시스템과 심우주 광통신 시험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다지점 태양 관측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인공지능을 접목한 수치 모델을 개발해, 위성 통신, 항공, 전력망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우주 폭풍을 더 정밀하게 예측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과 유럽도 태양 관측 위성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지만, L4 지점은 아직 본격적으로 개척되지 않은 영역이라 선점 효과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정적인 우주 기상 예보는 향후 유인 달 기지와 화성 탐사선의 안전 운용에 필수 기반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행성계 탐사 분야의 최종 목표는 2045년 한국 기술로 화성 표면에 착륙하는 것이다. 우주항공청은 먼저 2035년까지 화성 궤도 진입 기술을 확보해, 궤도선으로 화성 대기와 지표 환경을 정밀 분석한다. 그 다음 단계로 2045년에 무인 착륙선을 투입해 표면 탐사를 수행할 계획이다. 화성은 대기가 희박하고 중력이 지구의 약 3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진입·하강·착륙 과정에서 기술적 난도가 크게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열 차폐판, 초음속 감속 낙하산, 역추진 엔진 등 EDL 핵심 기술 개발이 필수 과제로 제시됐다.
장기 체류를 위한 에너지원 확보도 병행된다. 우주항공청은 100와트급 원자력 전지와 히터 개발을 추진해 극저온 환경에서도 탐사 장비와 거주 모듈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화성 토양과 대기를 활용해 산소와 물, 메탄 연료 등을 생산하는 현지 자원 활용 기술, 즉 ISRU 기술 개발에도 나선다. 식물 재배와 재활용 기반 식량·산소 생산이 가능한 스마트팜, 우주 방사선과 저중력 환경에서의 인체 변화에 대응하는 우주 의학 연구도 장기 거주를 뒷받침할 생명 유지 인프라로 제시됐다. 글로벌로는 미국과 유럽, 중국이 화성 샘플 반환과 유인 탐사 준비를 속도감 있게 추진 중인 만큼, 한국이 독자 EDL 기술과 ISRU 역량을 얼마나 빠르게 축적하느냐가 관건으로 지적된다.
천체물리 분야에서는 지상과 우주를 연계한 대규모 관측 인프라 확보를 통해 기초과학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전략이 추진된다. 한국은 인류 최대 규모 전파망원경 건설 프로젝트인 SKA에 참여할 예정이다. 2025년부터 2031년까지 483억원을 분담하고, 이 가운데 약 70퍼센트에 해당하는 130억원 규모를 국내 산업체 수주로 연계해 반도체, 수신기, 신호 처리 등 관련 기술을 키운다는 구상이다. SKA는 수많은 안테나를 묶어 축구장 수천 개에 해당하는 수신 면적을 확보하는 개념으로, 현재 전파망원경보다 수십 배 민감한 관측 성능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다.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중력파 등 현대 천체물리학 난제를 겨냥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우주항공청은 SKA 참여 경험을 발판으로 한국형 우주망원경을 독자 기획·개발해, 허블과 제임스 웹 이후의 차세대 관측 플랫폼 경쟁에도 합류한다는 방침이다. 지상망원경 기술을 우주 환경에 맞게 경량화·진동 제어·열 제어 측면에서 재설계하고, 장기적으로는 대기의 방해가 거의 없는 달 기지에 망원경을 설치해 심우주 관측 한계를 넓힌다는 구상이다. 달 기지 망원경은 지구의 하루 자전에 구속되지 않고 장시간 같은 천체를 관측할 수 있어, 외계행성 대기 분석과 초기 우주 탐사에 유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로드맵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된 키워드는 신산업 창출과 경제영토 확장이다. 우주항공청은 저궤도 우주 공장에서의 반도체와 신약 생산, 달과 화성에서의 자원 채굴과 에너지 생산, 태양 관측을 통한 우주 기상 서비스, SKA 및 우주망원경에서 나올 데이터 분석 산업까지 연쇄적인 산업 생태계 형성을 그린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우주 관광, 상업 우주정거장, 달 착륙선 서비스 시장을 열어가고 있어, 한국이 과학 탐사와 상업용 기술을 얼마나 긴밀히 연결하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꼽힌다.
노경원 우주항공청 차장은 이번 로드맵 공개와 관련해 5개 주요 분야에 모두 신산업 창출 목표가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우주 경제 논의가 발사체와 인공위성 중심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우주과학 탐사가 신산업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한국형 우주 공장과 달 경제 기지, 화성 탐사 프로젝트가 실제 시장과 연계된 수익 모델로 안착할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으며, 기술과 제도, 국제 협력의 속도가 향후 우주 경제 시대의 성패를 가를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