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여덟 봉우리 따라 별까지 걸었다”…팔봉산이 완성한 서산의 가을 하루

최동현 기자
입력

요즘 주말마다 서산으로 향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그저 서해안 드라이브 코스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산과 별, 그리고 미식이 어우러진 하루 여행지의 일상이 됐다. 사소한 동선의 변화지만, 그 안에는 풍경과 맛을 천천히 음미하려는 달라진 여행 태도가 담겨 있다.

 

서산을 찾는 이들이 먼저 눈길을 주는 곳은 팔봉산이다.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에 자리한 팔봉산은 이름처럼 여덟 개의 봉우리가 능선 위에 차례로 솟아 독특한 실루엣을 그린다. 가을이면 붉고 노란 단풍이 봉우리 사이를 채우고, 그 사이로 서해와 들녘이 시원하게 펼쳐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을 선물한다. 사람들 발길이 북적이지 않아, 숨 고르듯 천천히 오르내리며 오롯이 산과 나만의 리듬을 만들기 좋다. 정상 부근에 서면 여덟 봉우리가 만든 굴곡이 한눈에 들어오고, 탁 트인 시야 속에서 서산의 가을 공기가 한층 더 깊게 느껴진다.

팔봉산 출처 : 대한민국구석구석 서산시청
팔봉산 출처 : 대한민국구석구석 서산시청

이런 변화는 숫자 대신 인증샷으로 확인된다. SNS에는 팔봉산의 바위 능선과 단풍을 배경으로 한 사진, 여유로운 산행 뒤 주변 맛집을 찾는 후기들이 잇달아 올라온다. 예전처럼 유명 산 하나만 찍고 돌아오는 일정 대신, 산책하듯 오르고 근처에서 천천히 차를 마시며 하루를 쪼개 쓰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모습이다.

 

등산 전후로 허기진 배를 달래줄 곳으로는 서산시 예천동의 산 비스트로가 자주 언급된다. 호주와 두바이에서 경험을 쌓은 셰프가 제철 재료에 집중하는 양식 전문점으로, 겉으로는 편안한 동네 레스토랑 같지만 한 접시 한 접시가 여행의 기억을 더 짙게 만든다. 거창한 코스 요리 대신 계절에 맞게 구성된 메뉴와 부담 없는 와인이 어우러져, 산행을 마치고 들른 이들에게 작은 축하 같은 시간을 건넨다. 따뜻한 조명 아래 식탁을 둘러앉은 사람들은 “이렇게 여유롭게 밥 먹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고 고백하며, 음식과 대화에 천천히 집중한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발걸음은 다시 성곽으로 향한다.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자리한 해미읍성 앞에는 해미읍성왕꽈배기 해미본점이 길손들을 맞이한다. 해미읍성 정문 바로 앞에 자리한 이곳의 패스츄리 왕꽈배기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층을 이룬다. 한입 베어 물면 고소한 향이 퍼지며, 산책으로 지친 다리에 달콤한 휴식을 건넨다. 해미읍성, 일락사, 개심사 등 주변 관광지를 둘러본 뒤 잠시 멈춰 서서 뜨거운 꽈배기를 손에 쥐고 있노라면, 서두르지 않아도 좋은 여행의 박자가 온몸에 스민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는 시각, 서산 여행의 분위기는 한 번 더 바뀐다.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의 서산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눈앞에 펼쳐지는 건 또 다른 세계다.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한 류방택을 기리는 이곳에서는 태양과 별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도록 문을 연다. 낮에는 태양 표면을 관측하며 천체의 움직임을 공부하고, 밤에는 반짝이는 별자리를 따라 우주의 이야기를 듣는다. 직원들의 친절한 설명과 체험 프로그램을 들으며, 방문객들은 어릴 적 별자리를 처음 외우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이제야 밤하늘을 제대로 보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팔봉산의 굴곡진 능선을 눈으로 더듬었던 낮이, 천문대의 둥근 돔 아래에서 별빛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서산의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을 때, 마지막으로 들르기 좋은 곳이 있다.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에 위치한 파우스542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빠져나와 숨을 고를 수 있는 카페 겸 브런치 공간이다. 갓 내린 커피와 따끈한 베이커리, 담백한 브런치 메뉴는 무리한 스케줄로 피로해진 여행자에게도, 근처 직장인에게도 같은 위로를 건넨다.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빛, 담백한 인테리어,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잔 하나가 어지러웠던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힌다. 누군가는 주말 여행의 아쉬움을 곱씹고, 누군가는 다음 서산 방문을 마음속으로 예약한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예전엔 서산 하면 바다만 떠올렸는데, 이제는 팔봉산이 먼저 생각난다”, “단풍 보고 꽈배기 먹고 별 보니 하루가 꽉 찬 느낌”이라는 기록들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더 화려한 곳 대신, 적당히 한적하고, 걸어서 닿을 수 있는 풍경과 음식을 찾아 떠나는 중이다. 여행지에서까지 속도를 높이기보다, 천천히 걷고, 충분히 맛보고, 밤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보는 시간을 선택하는 것이다.

 

팔봉산과 산 비스트로, 해미읍성 앞 왕꽈배기, 서산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 그리고 파우스542까지. 서산의 동선은 과하게 특별하지 않지만, 그만큼 일상으로 가져오기 쉬운 여행의 리듬을 제안한다. 여덟 봉우리를 따라 걷고, 한 잔의 커피와 한 접시의 제철 요리를 나누고, 별을 헤는 시간을 곁에 두는 일.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최동현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팔봉산#서산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해미읍성왕꽈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