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자녀 곁에 두는 게 견딜 수 없었을 것”…뉴질랜드 법원, 남매 살해 한국인 엄마에 종신형 선고 파장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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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25일, 뉴질랜드(Aotearoa New Zealand) 오클랜드에서 한국인 엄마가 어린 남매를 살해하고 여행 가방에 시신을 유기한 사건과 관련해 종신형이 선고됐다. 이번 판결은 심신 미약을 주장한 피고 측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은 결정으로, 뉴질랜드 사회와 한국에 적지 않은 반향을 낳고 있다.

 

오클랜드 고등법원은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한국 출신 뉴질랜드 시민권자 A씨에게 최소 17년 동안 가석방이 불가능한 종신형을 선고했다. 현지시각 기준 25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제프리 베닝 고등법원 판사는 A씨가 남편 사망 이후 자녀 양육을 감당하지 못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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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닝 판사는 “피고는 결혼 생활 동안 남편에게 크게 의존했다. 남편이 큰 병에 걸렸을 때 대처할 수 없었고, 과거의 행복한 삶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아이들을 곁에 두는 것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범행 동기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심리 상태가 범행의 배경이 될 수는 있어도 형사 책임을 면하게 할 정도의 심신 미약으로 볼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2018년 사건 당시 어린 자녀들에게 항우울제가 섞인 주스를 먹인 사실을 인정했다. A씨는 뉴질랜드에서 9살 딸과 6살 아들에게 약물이 든 음료를 마시게 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여행 가방에 넣어 오클랜드의 한 창고에 유기한 혐의를 받아왔다.

 

A씨 측은 남편이 암 투병 끝에 사망한 뒤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고, 범행 당시 정신 이상으로 심신 미약 상태였기 때문에 살인 의도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계획적 범행 정황과 이후 도피 행적 등을 종합해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은 범행 직후 곧바로 드러나지 않았다. A씨는 자녀 시신을 숨긴 뒤 뉴질랜드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와 생활을 이어갔다. 전환점은 2022년에 찾아왔다. A씨가 오클랜드 창고 임대료를 연체하면서 보관 물품이 온라인 경매에 부쳐졌고, 해당 물품을 낙찰받은 뉴질랜드인이 여행 가방 속에서 어린이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뉴질랜드 경찰은 수사 끝에 피의자가 한국에 거주 중인 A씨임을 특정했고, 한국 수사당국과 공조를 통해 행방을 추적했다. A씨는 2022년 9월 울산에서 체포됐고, 이후 뉴질랜드 당국의 요청에 따라 강제 송환됐다. A씨는 한국에서 태어난 뒤 뉴질랜드로 이주해 현지 시민권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과 국제 통신사들은 이번 사건을 뉴질랜드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대표적 아동 살해 사건으로 규정하고 재판 과정을 집중 조명해 왔다. AP통신은 “여행 가방 속에서 발견된 어린 남매의 시신이 국제적 수사를 촉발했다”며 “오랜 시간 베일에 가려졌던 비극의 전모가 법정에서 드러났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우울증과 정신 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피고라 하더라도 사전에 준비된 아동 살해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는 뉴질랜드 사법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해석한다. 아동 보호와 정신 건강 지원 체계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에서는 향후 유사 사건에서의 정신 감정 기준과 국가 간 수사 공조, 범죄인 인도 절차 등이 다시 주목받을 전망이다. 두 아이의 죽음과 관련된 법적 판단이 내려진 가운데, 이번 판결이 향후 아동 범죄 대응과 국제 형사 사법 협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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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엄마#뉴질랜드#오클랜드고등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