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100만 배럴 원유 아시아로 보낼 것”…캐나다, 신규 파이프라인로 대미 의존 축소 노린다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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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27일, 캐나다(Canada) 오타와에서 마크 카니 총리가 앨버타주와 하루 100만 배럴 규모의 신규 원유 파이프라인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북미 에너지 지형 변화 가능성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번 조치는 미국(USA)에 편중된 원유 수출 구조를 다변화하고 아시아 시장으로의 공급을 확대하려는 전략과 맞물려 주변국과 국제 에너지 시장에 직간접적 파장을 낳고 있다.

 

현지 시각으로 27일 오전, 카니 총리는 앨버타(Alberta)주 다니엘 스미스 주지사와의 공동 발표를 통해 앨버타 북부 산유지와 브리티시 컬럼비아(British Columbia)주 서부 태평양 해안을 잇는 총 1천100km 길이의 신규 원유 파이프라인 추진 계획을 공식화했다. 카니 총리는 “캐나다를 에너지 초강대국으로 도약시키는 동시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겠다”고 밝히며, 신규 노선 완공 시 캐나다산 원유의 아시아향 수출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캐나다, 1천100km 신규 원유 파이프라인 추진…아시아 수출 확대·대미 의존 축소 목표
캐나다, 1천100km 신규 원유 파이프라인 추진…아시아 수출 확대·대미 의존 축소 목표

이번 프로젝트는 캐나다 주요 산유지인 앨버타주 북부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브리티시 컬럼비아 서해안 수출 터미널까지 직송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미 앨버타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밴쿠버를 잇는 기존 파이프라인이 지난해 5월부터 본격 가동되며 하루 약 89만 배럴을 태평양을 통해 아시아로 보내고 있는 가운데, 신규 파이프라인이 더해질 경우 아시아 수출 여력은 하루 100만 배럴 이상 추가로 확보될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같은 결정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상 정책 이후 북미 시장 통합 구조가 흔들린 환경에서, 캐나다 경제의 대미 의존도를 낮추려는 카니 총리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캐나다산 원유 수출의 약 97%가 미국으로 향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전체 원유 수입량의 약 60%에 해당하는 하루 400만 배럴 규모다. 대부분이 세계 3위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앨버타 북부에서 생산되는 만큼, 수출 경로 다변화는 캐나다의 구조적 과제로 떠올라 왔다.

 

프로젝트의 국내 정치적 배경도 복잡하다. 보수 성향 앨버타보수연합당(UCP)을 이끄는 다니엘 스미스 주지사는 그동안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제2의 파이프라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으며, 이번 MOU를 통해 숙원 사업이 가시화됐다는 평가가 협력 진영에서 나온다. 반면 진보 성향 브리티시 컬럼비아신민주당(NDP)의 데이비드 에비 주총리는 협상 과정에서 자신이 배제됐다며 “용납할 수 없는 절차”라고 강하게 비판해, 주 정부 간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을 드러냈다.

 

환경·기후 공약과의 정합성도 쟁점이다. 양측 합의에 따르면 신규 파이프라인으로 인한 원유 증산에서 발생하는 추가 온실가스 배출분은 앨버타주가 추진 중인 탄소 포집·저장(CCS) 프로젝트를 통해 상쇄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앨버타주는 향후 10년간 메탄 배출을 75% 줄이기로 이미 합의한 상태다. 카니 정부는 한편으로 저스틴 트뤼도 전 총리가 추진했던 전국 단위 배출 상한제 도입은 포기하겠다고 밝히며, 기후 목표와 산업 경쟁력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겠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카니 총리는 지난 4월 취임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대캐나다 관세 부과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 산업계를 핵심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앨버타 석유 산업과의 공조 강화는 이른바 ‘정치권 대타협’의 일환으로 소개됐으며, FT는 이번 MOU를 “대외 충격에 대한 캐나다 경제의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에너지 수출 기반 확대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에 집중됐던 수요 구조를 아시아로 분산할 경우 가격 변동과 통상 갈등에 따른 리스크 관리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법적·사회적 저항은 상당할 것으로 점쳐진다. FT는 신규 파이프라인 건설이 환경 단체, 원주민 단체, 지방 정부 사이에서 이해관계 충돌을 촉발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장기간의 소송전이 벌어질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브리티시 컬럼비아 내 해안·삼림 지역을 관통하는 노선이 될 경우, 생태계 파괴와 기름 유출 위험을 둘러싼 환경 논란이 재점화될 수 있다.

 

캐나다 대형 로펌 캐스엘스의 제러미 바레토 변호사는 “영향을 받는 원주민 정부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길고 지루한 법적 분쟁을 피하고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데 핵심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캐나다의 위상을 끌어올리려는 이번 시도가 국내 정치 갈등과 환경·원주민 권리 논쟁 속에서 어떤 궤적을 그릴지 주목된다.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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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카니#앨버타#브리티시컬럼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