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MO 특별법 통과…바이오업계, 규제지원으로 공급망 키운다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기업을 별도 체계로 규율하는 CDMO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며 국내 바이오 생산 생태계가 제도 전환점을 맞고 있다. 개별 의약품 중심이었던 기존 규제 틀을 공정·플랫폼 단위로 보완해 글로벌 CDMO 공급망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첫 독립 법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는 수출제조업 등록제와 원료물질 인증, 인력 양성 조항을 축으로 송도 중심 대형 생산 클러스터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보건복지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기업 등의 규제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됐다. 한지아 의원 등 12인이 발의한 법안으로, 국내 바이오의약품 CDMO 산업을 명시적으로 정의하고 규제지원 근거를 일괄적으로 담은 첫 독립 법률이다.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는 3일 논평을 내고 독립 법률 제정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CDMO 관련 규율은 약사법, 첨단재생의료 관련 법 등 여러 법률에 나뉘어 존재해 산업 특성을 반영한 정의와 지원 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꾸준했다. CDMO는 제약사가 개발한 바이오의약품을 대신 생산하거나, 개발 단계 일부를 함께 수행하는 위탁개발생산 모델로, 대규모 배양 설비와 품질관리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다. 하지만 기존 법체계에서는 개별 제품 허가와 GMP 기준 위주로 규제가 작동해 플랫폼 기반 대량 생산 전략을 설계하는 데 제도적 마찰이 있었다는 게 업계의 오랜 문제의식이다.
이번 특별법은 우선 수출제조업 등록제를 도입해 글로벌 수요 대응 구조를 손질했다.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바이오의약품 CDMO 기업이 약사법상 의약품 제조업 허가가 없어도, 별도 등록을 통해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기존에는 내수용과 수출용을 동일 구조로 관리해 허가·심사 절차가 중첩되는 사례가 있었는데, 수출 중심 공장과 공정 설계를 유연하게 구성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협회는 이를 두고 글로벌 규제 수준과 고객사 요구에 맞춰 생산 체계를 설계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질 것으로 해석했다.
품질 규제도 CDMO 특성에 맞게 정비됐다. 특별법은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및 품질관리기준 인증을 법제화하되, 약사법상 GMP 적합 판정과 내용이 겹치지 않도록 설계했다. 공통 품질 기준은 GMP로 유지하면서도, 위탁개발생산 과정에서 필요한 추가 관리 항목과 공정 검증 요소를 별도 인증 체계로 반영해 이중 규제 부담을 줄이려는 취지다. 국내 대형 CDMO 기업들이 글로벌 빅파마와 진행하는 다수의 위탁계약에서 공정 변경과 증설이 반복되는 점을 고려하면, 공정 단위 규제 명료화가 실무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예상된다.
원료물질 인증제도는 공급망 체질 개선에 직결되는 대목이다. 법에 근거를 둔 원료물질 인증 체계가 마련되면 바이오의약품 핵심 원료의 국산화와 품질 관리를 제도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현재 바이오 공정용 세포주, 배지, 핵심 시약 등은 해외 의존도가 높아 공급 차질과 원가 변동성이 상시 리스크로 지목돼 왔다. 정부 인증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과 안정성을 확보한 국산 원료가 늘어나면, CDMO 기업 입장에서는 조달 다변화와 리스크 분산이 가능해지고, 소재 기업에는 시장 진입 신호가 강화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전문 인력 양성도 특별법의 축으로 포함됐다. 백신안전기술지원센터 등 기존 인프라를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전문 인력 양성기관으로 지정해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진행하도록 한 것이다. 대량 배양, 정제, 품질관리, 밸리데이션 등 CDMO 공정 전 주기를 이해하는 실무 인력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으로 꼽힌다. 제도권 교육과 현장 실습을 연계하면, 수도권과 인천 송도에 집중된 생산 클러스터의 인력 수급 불균형 완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국제 경쟁 구도에서 보면 CDMO 전용 법률 제정은 비교적 이른 편에 속한다. 미국과 유럽은 GMP와 개별 의약품 허가 체계를 기반으로 CDMO를 관리하면서, 수요·공급 확장에는 세제 혜택과 입지 지원 중심으로 대응해 왔다. 한국은 바이오 생산 능력과 공장 집적도 면에서 이미 글로벌 상위권에 올라 있지만, 규제는 여전히 제약사 직접 생산 모델에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번 특별법으로 생산 플랫폼과 수출 전용 공장에 특화된 제도 틀을 갖추게 되면서, 선제적 규제 설계를 통한 경쟁력 강화 시도가 본격화된 셈이다.
업계가 주목하는 또 다른 지점은 송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바이오의약품 생산 클러스터와의 연계다.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는 세계 최대 수준으로 평가받는 송도 생산 클러스터가 이번 특별법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공장 증설, 신규 수주, 원료 국산화 프로젝트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중복 규제 최소화와 예측 가능한 심사 체계는 장기 투자 판단의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법적 근거가 명확해지면, 다국적 제약사 입장에서도 한국 CDMO와의 장기 파트너십 체결에 따른 규제 리스크를 보다 정밀하게 산정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시행령과 하위 고시 단계에서 실제 산업 효과가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제조업 등록제 세부 기준, 원료물질 인증 범위, 인력 양성 커리큘럼과 지원 방식에 따라 대기업 중심 지원이 될지, 중견·중소 CDMO와 소재 기업까지 포괄하는 생태계 강화로 이어질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규제지원 특별법이라는 이름에 맞게, 안전성과 품질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공정 혁신과 글로벌 수주 경쟁을 뒷받침하는 균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는 이번 법 제정으로 우리나라 CDMO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원료물질 제조와 품질 인증 제도의 법적 기반 마련이 국산화 촉진과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정석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장은 이번 특별법 통과가 국내 바이오 CDMO 산업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완성된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새 규제 체계가 실제 투자와 수주 확대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향후 집행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