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바꾼 도시공간 넷워크…K컬처, 생활 인프라로 부상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OTT 기술이 도시와 문화 소비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플랫폼이 한국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을 전 세계에 동시 유통하면서 서울 풍경과 한국적 라이프스타일이 수억 명이 공유하는 가상 생활권으로 확장되는 구조다. 업계와 학계는 이러한 디지털 유통망이 단순한 콘텐츠 수출을 넘어, 도시 이미지와 관광 동선, 소비 패턴까지 재편하는 일종의 공간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한류가 반짝 유행을 넘어 장기 트렌드로 유지될 수 있을지 여부가 IT 기반 문화 네트워크의 다음 과제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넷플릭스가 서울 성수 앤더슨씨에서 개최한 넷플릭스 인사이트 행사에서 현대인의 공간 경험이 온오프라인을 합쳐 완성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넷플릭스 같은 OTT를 통해 한국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사람은 실제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누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한민국 풍경은 수억 명의 시선을 모으는 무대가 되고, 그 결과 서울과 한국적 공간이 글로벌 이용자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전환된다는 분석이다.

유 교수는 자신의 성장기에는 LA와 맨해튼이 가장 힙한 공간으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여러 K드라마의 배경으로 노출되는 서울이 새로운 힙 플레이스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IT 기술의 발전이 첨단 제품 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이 제품들로 구축된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 콘텐츠가 역수출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고 평가했다. 이 디지털 인프라가 K컬처의 영향력을 지탱하는 핵심 배경이라는 해석이다.
김태훈 팝칼럼니스트는 OTT 플랫폼을 지역 맛집 앞에 새로 놓인 고속도로에 비유했다. 이전에는 지역 내에서만 알려졌던 음식점이었지만, 고속도로가 연결되면 인근 도시 사람들까지 유입되듯,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유통망이 한국 콘텐츠를 모르는 이들에게까지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가 스스로를 문화 강국으로 인정하는 데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며, 현재의 열풍을 의심하기보다 이를 어떻게 지속 가능한 경쟁력으로 유지할지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숙영 미국 UCLA 연극·공연학과 교수는 OTT 도입 전후의 팬덤 형성 구조도 비교했다. 과거에는 특정 콘텐츠가 인기를 얻어도 지역별로 시간차가 발생해 동시다발적 반응이 제한적이었지만, 지금은 글로벌 OTT가 동일한 시점에 콘텐츠를 공급하면서 전 세계 시청자가 동시에 감정과 취향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많지만, 현재 구조를 볼 때 미래 전망은 상당히 밝다고 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류 확장을 위해 김 교수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는 새로운 세대가 주목하는 한국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다. 그는 한국을 내부와 외부의 시선에서 동시에 이해하는 이민자와 글로벌 크리에이터의 참여 확대를 주문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매기 강 감독을 사례로 들며, 이들이 재해석한 한국적 정체성과 향수가 더 넓은 글로벌 대중에게 소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K콘텐츠와 K프랜차이즈, K라이프스타일이 일상 속 대중문화로 스며드는 방향성이다. 김 교수는 한류가 지속되려면 단발성 소비로 그치지 않고, 해외 이용자의 일상 경험으로 축적되는 생활 문화로 확장돼야 한다고 봤다. OTT 플랫폼을 통해 시청자가 드라마 속 카페 인테리어, 음식, 패션을 실제 소비로 연결하는 흐름이 강화될수록, 콘텐츠 산업과 외식, 유통, 관광 산업이 연결된 복합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의미다.
셋째는 다양성 측면에서의 경쟁력이다. 김 교수는 과거 지상파 채널이 장르와 표현의 한계를 뚜렷하게 가지고 있었던 반면, 다양한 OTT 플랫폼의 확산으로 한국 콘텐츠가 장르적 혼종성과 문화적 다층성을 자유롭게 보여줄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스릴러와 로맨스, 사회 비판과 코미디가 결합된 혼종 장르는 글로벌 시청자에게 차별화된 매력으로 작용하고, 이는 다른 국가 콘텐츠와의 경쟁에서 중요한 우위 요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의 기술 인프라가 단순한 영상 스트리밍을 넘어, 국가 이미지와 도시 브랜드, 나아가 공간 경제 구조까지 바꾸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류가 단기 유행을 넘어 생활 인프라로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IT 기반 문화 네트워크 속에서 한국이 어떤 전략으로 강국의 지위를 유지할지가 향후 산업과 정책 설계의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산업계는 이러한 변화가 실제 도시와 시장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릴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