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NA 백신플랫폼 띄운다…GC녹십자, 임상1상 진입으로 국산화 가속
mRNA 백신 기술이 차세대 감염병 대응 전략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GC녹십자가 국가 주도의 팬데믹 대비 mRNA 백신 개발 사업에서 임상 1상 연구 지원 기업으로 선정됐다. 국산 플랫폼을 조기 구축해 위기 상황에서 해외 공급망 의존을 줄이려는 정부 전략과, 자체 플랫폼으로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기업 전략이 맞물린 결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선정을 국내 mRNA 백신 개발 경쟁의 사실상 1차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GC녹십자는 질병관리청이 추진하는 팬데믹 대비 mRNA 백신 개발 지원 사업에서 임상 1상 연구 지원 기업으로 최종 확정됐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사업은 비임상 단계에서 먼저 선정된 4개 기업 가운데 두 곳만을 추려 초기 임상 진입을 지원하는 구조다. 정부 예산과 임상 인프라를 집중 투입해 팬데믹 상황에서 바로 활용 가능한 국산 mRNA 백신 플랫폼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질병관리청은 비임상 독성·면역원성 데이터와 제조 역량, 대량 생산 전환 가능성 등을 종합 평가해 임상 진입 기업을 가려낸 것으로 알려졌다. 선정 규모가 4곳 중 2곳으로 제한된 만큼, 후보물질의 성공 가능성과 플랫폼 완성도가 일정 수준 이상 검증된 업체에 한해 지원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해석된다.
GC녹십자는 자체 구축한 mRNA LNP 플랫폼을 내세워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이 플랫폼은 항원 설계와 mRNA 합성, 지질나노입자 LNP 제형화, 임상용 시제품 생산까지 전 과정을 단독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회사 측은 후보 물질 도출부터 임상용 원액과 완제 생산에 이르는 밸류체인을 한 기업이 모두 내재화한 사례는 국내에서 자사가 유일하다고 설명한다.
핵심 기술 요소도 다층적으로 쌓였다. 먼저 UTR 특허는 mRNA 양 끝단에 위치한 비번역 영역 서열을 설계해 체내에서 단백질 발현량과 지속 시간을 조절하는 기술이다. 같은 항원 정보를 담더라도 UTR 설계에 따라 면역 반응 강도와 안정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백신 효율을 좌우하는 핵심 설계 요소로 평가된다. GC녹십자는 이 UTR 설계를 특허로 확보해 플랫폼화했다.
AI 기반 코돈 최적화 기술도 플랫폼 차별점으로 꼽힌다. 코돈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정보를 담는 염기 3개 단위 서열을 의미한다. 이론적으로는 같은 단백질을 만드는 여러 코돈 조합이 가능하지만, 세포 내 번역 효율과 mRNA 안정성은 코돈 선택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GC녹십자는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방대한 코돈 조합을 시뮬레이션하고, 발현 효율과 안정성이 높은 서열을 자동으로 탐색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회사 측은 이로 인해 기존 경험 기반 설계보다 최적 서열을 찾는 시간이 단축되고, 후보물질 당 성공 확률도 높아졌다고 설명한다.
전달 효율을 높인 LNP 기술 역시 글로벌 mRNA 백신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LNP는 지질 성분으로 mRNA를 감싸 체내에서 분해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세포 안으로 정확히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구성 지질 비율과 입자 크기, 표면 전하 등에 따라 면역 반응과 부작용 프로파일이 달라진다. GC녹십자는 독자적인 조성 설계와 공정 제어 기술로 전달 효율을 고도화했다는 입장이다. 회사가 보유한 UTR, AI 코돈 최적화, LNP 세 기술이 묶여 mRNA 플랫폼 전체의 유효성·안전성·생산성을 동시에 높이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시장 측면에서 이번 사업은 단일 감염병 백신을 넘는 전략 투자로 해석된다. 팬데믹 상황에서는 새로운 변이가 빠르게 등장하는 만큼, 백신 항원을 신속히 교체하고 대량 생산하는 기동성이 중요하다. mRNA 백신 플랫폼은 항원 부위를 설계해 디지털 정보로 바꾸고, 이를 서열만 바꿔 생산 라인에 투입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불활화 백신이나 단백질 백신보다 개발과 생산 속도에서 우위를 가진다. GC녹십자가 플랫폼을 국산화하면, 향후 코로나19를 포함한 호흡기 바이러스, 신종 감염병 확산 시 정부가 국내 생산으로 대응할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다.
GC녹십자는 연내 코로나19 mRNA 백신 후보 물질에 대한 임상 1상 시험계획 IND 승인 획득을 목표로 일정을 추진 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으면 초기 용량 탐색과 안전성, 면역원성을 검증하는 임상 1상에 즉시 착수한다는 구상이다. 회사는 연구를 빠르게 진행해 내년 하반기에는 임상 2상 IND를 제출한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초기 단계에서 충분한 면역 반응과 안전성 데이터를 확보할 경우, 팬데믹 상황에서의 긴급사용 전략과도 연계될 여지는 남아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mRNA 플랫폼을 놓고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다국적 제약사와 미국, 유럽 바이오텍을 중심으로 감염병뿐 아니라 암 백신, 희귀질환 치료제까지 파이프라인이 확장되는 추세다. 한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늦게 뛰어들었지만, 정부 지원 과제를 통해 전임상과 초기 임상 단계 진입 속도를 높이고 있다. GC녹십자가 질병관리청 사업의 임상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것은 국내 기업 가운데 mRNA 플랫폼 상용화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신호로 읽힌다.
정책 측면에서는 팬데믹 대응 전략과 백신 주권 강화라는 두 과제가 맞물려 있다. 해외 백신 공급 지연을 경험한 이후, 정부는 국산 플랫폼 확보를 국가 안보 차원의 과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팬데믹 대비 mRNA 백신 개발 지원 사업은 단일 품목 지원을 넘어, 임상 설계, 생산 설비, 품질관리 체계를 함께 키우는 플랫폼 육성 사업에 가깝다. 다만 정기 접종 프로그램 편입 여부, 보험 급여 적용, 재정 부담 등은 향후 정책 조정이 필요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정재욱 GC녹십자 R&D 부문장은 국산 mRNA 백신 플랫폼 확보를 국가 방역 역량 강화의 핵심 과제로 규정하며, 이번 선정을 계기로 개발 속도를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GC녹십자가 임상 단계에서 의미 있는 안전성과 면역 반응 데이터를 제시할 경우, 국내 mRNA 백신 생태계 전반의 투자와 협력도 함께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산업계는 국산 플랫폼이 실제 팬데믹 상황에서 얼마나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쓰일 수 있을지, 임상과 생산의 이중 시험대를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