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1천억 AX 프로젝트…정부, 지역 AI혁신거점 가동해 산업지형 바꾼다
인공지능 전환, 이른바 AX가 국가 산업지형을 다시 짜는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가 내년부터 호남권과 대경권, 동남권, 전북 등 4개 권역에 3조1천억 원 규모의 AI혁신거점 조성에 착수하면서 지역 특화산업 중심의 디지털 대전환이 본 궤도에 오른다. 5극3특 전략 아래 기업 지원과 인프라를 결합하는 구조여서, 지역 균형발전과 동시에 글로벌 AI 기술패권 경쟁 대응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은 11일부터 이틀간 여수 베네치아호텔에서 2025년 지역 디지털 산업 활성화 워크샵 및 성과보고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에서는 2025년 한 해 동안 추진된 지역 AI와 디지털 사업의 성과를 점검하고, 2026년 이후 추진 방향을 논의한다. 지역 디지털 산업 발전에 기여한 유공자와 우수사례에 대한 시상도 진행된다.

특별연사로는 더밀크 손재권 대표가 나선다. 손 대표는 실리콘밸리 AI 기술과 투자동향을 주제로, 글로벌 빅테크의 전략과 스타트업 생태계, 자본 흐름을 짚어볼 예정이다. 특히 대규모 지역 AX 사업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성과관리 체계와 리스크 대응 전략, 민관 협업 구조 설계 등 사업 성과 극대화를 위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와 NIPA는 5극3특 전역에서 지역 산업의 AI와 디지털 기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SW 서비스 사업화, 선도기업 육성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그 결과 393개 기업을 지원했고, 11월 말 기준 사업화 성공률 55퍼센트, 일자리 2천126개 창출, CES 혁신상 17건 수상, 인재 양성 1만1천932명 등의 성과를 기록했다.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사업 모델이 실제 매출과 고용, 글로벌 수상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정책 효과가 가시화된 셈이다.
권역별로 보면 호남권은 광주와 전남, 전북을 축으로 농식품과 해양 산업에 AI 기반 혁신을 확산했다. 농작물 생육 데이터 분석, 해양 환경 모니터링, 스마트 양식 등 데이터 중심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1차 산업의 고부가가치화가 가속하는 모습이다. 대경권은 대구와 경북의 ICT 및 제조업을 AX 전환의 시험대로 삼았다. 생산설비에 센서를 부착해 수집한 데이터를 AI로 분석하고, 공정 최적화와 예지보전을 구현하는 프로젝트가 다수 추진됐다.
동남권은 부산, 울산, 경남에서 조선과 해양, 제조 중심 산업의 디지털화가 주요 과제로 설정됐다. 선박 설계와 운항 데이터, 조선소 작업 데이터를 결합한 AI 솔루션으로 안전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려는 시도가 본격화됐다. 충청권은 대전, 충북, 충남, 세종을 아우르며 물류, 바이오, 공공서비스 분야로 디지털 전환을 확장했다. 바이오 클러스터의 연구데이터 관리, 공공 행정서비스의 지능형 전환, 스마트 물류센터 구축 등 다양한 실증 사업이 추진됐다. 강원과 제주는 공공안전과 의료 분야에 초점을 맞춰 AI 모델 실증을 진행함으로써, 인구 분산 지역에서도 디지털 혁신 성과를 도출했다.
개별 기업의 사례도 산업 현장의 문제 해결과 신규 시장 개척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랩오투원은 강화되는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선박 배출가스와 연료 효율을 관리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글로벌 선급사 DNV 인증을 획득했다. 국제 규제를 충족하는 솔루션으로 해운사의 탄소중립 전략을 지원하며 해외 시장 진출 기반을 다졌다. 코드비전은 제조 공정 모니터링 솔루션에 AI를 고도화해 공정 이상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고 품질 불량률을 낮출 수 있는 시스템을 선보였고, 이를 토대로 AI신뢰성 인증 CAT를 획득하며 국내외 제조기업에 고객 기반을 넓히고 있다.
코리아노바는 식용곤충 생육관제 솔루션을 통해 스마트팜의 지능화를 구현했다. 온도, 습도, 사료 공급 등 생육 환경을 AI로 최적화해 생산성을 높이고 인력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사업 모델을 설계했다. 곤충 단백질 시장의 성장세와 맞물려 글로벌 공급망 진입을 모색하고 있으며, 지역 디지털 지원사업이 초기 기술 검증과 시장성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원 기업 중 일부는 글로벌 기술 전시회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했다. 핀테크, 휴먼시큐리티, AI, 모빌리티, 디지털헬스 등 다양한 분야의 17개 기업이 CES 2026 혁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들 기업은 과기정통부의 디지털혁신거점조성지원 사업 등을 통해 기술 컨설팅과 사업화 지원을 받으면서 제품 완성도와 시장 진입 전략을 정교화했다. 국내에서 개발된 AI와 디지털 솔루션이 글로벌 무대에서 혁신성을 인정받는 흐름이 자리 잡는 모습이다.
정부는 이 같은 지원 성과를 토대로 한 단계 더 나아간 인프라 구상에 착수했다. 급변하는 AI 기술 패권 경쟁과 5극3특 지역 균형발전 기조에 맞춰, 호남권과 대경권, 동남권, 전북 등 4개 권역에 총 3조1천억 원 규모의 AI혁신거점 조성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이미 의결했다. 국비와 지방비, 민간 투자를 결합한 대형 프로젝트로, 내년에는 사업 적정성 검토를 마친 뒤 단계적으로 AI혁신거점을 가동할 계획이다.
AI G3 강국을 목표로 설정한 정부 전략에서 AX는 필수 조건으로 인식된다. 지금까지의 AI 발전이 빅테크와 B2C 서비스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지역 특화산업과 연계된 고난도 AI 기술 개발은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정부가 구상하는 AI혁신거점은 이런 구조적 한계를 해소하기 위한 장치다. 지역 산업이 가진 공정 지식과 운영 데이터, 대학과 연구기관의 인프라를 결합해 고성능 AI 모델과 솔루션을 개발하고, 이를 실제 공장과 농장, 항만, 병원 등에서 대규모로 실증하는 구조다.
또한 정부는 아직 대형 거점 구상이 진행되지 않은 중부권과 강원, 제주에 대해서도 AX 대전환 기획에 착수하기로 했다. 각 지역의 특화산업과 보유 인프라, 디지털 전환 역량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AI혁신거점을 추가 조성하는 방안을 설계한다는 것이다. 사업 타당성이 확인될 경우 2027년부터 순차적으로 가동이 예상되며, 전국 단위의 AX 네트워크가 완성되면 산업별 데이터와 AI 역량을 상호 보완하는 기반이 구축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이도규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은 초거대 언어모델에서 피지컬 AI로 이어지는 최근 기술 변화를 언급하며 속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세계가 AI 기술전쟁에 사활을 거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 자체를 확보하는 것뿐 아니라, 어떤 산업과 현장에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제조업 등 지역 산업계가 축적한 노하우와 풍부한 현장 데이터는 한국이 AI 경쟁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강점이라는 평가다. 이 실장은 5극3특 전역에서 AX가 균형 있게 확산될 수 있도록, 정부가 인프라와 규제, 인력 양성 측면의 지원을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산업계와 전문가들은 AX 프로젝트가 실제 현장 혁신과 수익 창출로 이어질지, 그리고 지역 간 격차를 줄이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AI 기술 발전 속도뿐 아니라 산업 구조와 제도의 전환 속도를 맞추는 것이 관건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책 지원과 기업 혁신, 지역사회 수용성이 맞물려 균형을 이룰 때, AI가 국가와 지역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 조건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