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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반도체·헬스케어”…강원특구, 10년 만의 신규지정으로 동북권 재편 노린다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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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와 반도체, 디지털 헬스케어를 한 축으로 묶는 강원특구가 10년 만에 등장하며 국가 연구개발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가 여섯 번째 연구개발특구로 지정되면서 수도권과 충청권에 치우친 첨단 연구·산업 인프라가 동북권으로 분산되는 효과가 예상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기술 창업과 연구소기업 확대, 규제 완화를 결합해 강원 특구를 새로운 성장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업계에서는 바이오와 의료기기, 센서 반도체를 잇는 융합 산업벨트 구축 여부가 향후 국내 혁신 클러스터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1일 강원특별자치도 일대를 신규 연구개발특구로 공식 지정했다고 밝혔다. 2015년 전북특구 이후 10년 만에 추가되는 광역 단위 특구다. 대덕, 광주, 대구, 부산, 전북에 이어 강원이 여섯 번째 축으로 편입되면서 국내 광역 연구개발특구 체계는 6극 구조로 확장됐다. 강원특구 지정은 올해 1월 강원도의 신청 이후 9개월 동안 진행된 지정 검토 태스크포스의 평가를 거쳐 확정됐다.  

강원특구는 권역별로 다른 기술 축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 특징이다. 춘천은 바이오 신소재, 원주는 디지털 헬스케어, 강릉은 반도체 센서 소재·부품을 중심으로 특화 전략을 세웠다. 연구개발특구 제도는 일정 지역 내 연구기관과 기업, 대학을 묶어 세제 혜택과 규제 특례, 기술 사업화 지원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동안은 기초·응용연구가 강한 대덕, 광공업 기반의 대구·부산, 광·에너지 중심의 광주, 탄소소재 특화 전북 등이 지역별로 다른 포지셔닝을 가져왔다. 강원은 의료와 바이오, 센서 반도체를 결합한 융합형 특구로 자리매김하는 전략이다.  

 

강원특구 지정에 앞서 과기정통부와 강원도는 전문가 11명이 참여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34개 세부 지정 요건을 검토했다. 연구기관 집적도, 기술역량, 산업화 가능성을 모두 따지는 구조로 심사했다. 강원특구에는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학, 지자체 및 기업부설 연구소 등 총 182개 연구기관이 모여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바이오, 헬스케어, 소재, 부품 등 핵심 분야에 걸쳐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연구 역량이 축적돼 있어 특구 지정 이후 기술 상용화 속도가 비교적 빠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기술 축 가운데 춘천의 바이오 신소재는 단백질·세포 기반 치료제나 신개념 바이오소재를 개발하는 연구와 연결된다. 예를 들어 세포막을 모사한 고기능성 약물 전달체나 차세대 백신 플랫폼 등은 고부가가치 바이오 소재로 분류된다. 기존 화학 합성 소재 대비 생체 적합성과 효능을 동시에 높일 수 있어 글로벌 제약·소재 기업의 관심이 큰 영역이다. 강원특구는 관련 연구기관과 기업을 묶어 후보물질 발굴부터 전임상, 제품화까지 이어지는 체인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원주가 맡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는 의료데이터와 정보통신 기술을 결합해 진단·치료 과정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기술 전반을 의미한다. 병원 밖에서 활용하는 웨어러블 센서, 스마트워치 기반 심전도 모니터링, 만성질환 관리 앱 등은 이미 상용 단계에 있다. 강원특구는 여기에 인공지능 진단보조와 디지털 치료제,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 등 소프트웨어 기반 의료기기까지 포함해 산업 스펙트럼을 넓힐 계획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플랫폼형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와 병원 정보시스템 연계를 실증 특례를 통해 앞당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강릉의 반도체 센서 소재·부품 특화는 대형 파운드리 공정이 아닌 앞단 소재와 후단 센서 모듈에 방점을 찍는다. 이미지 센서, 환경·바이오 센서, 자율주행용 라이다·레이더 등은 고감도·저전력 특성을 요구하며, 소자 구조와 패키지 기술에서 차별화가 이뤄진다. 강원특구는 이들 센서에 필요한 고기능 유전체·유기 재료, 패키징용 소재, 정밀 가공 부품을 개발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틈새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반도체 장비·소재 국산화 기조와 맞물려 국내 수요 연계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시장 측면에서 보면 세 분야 모두 성장성이 높은 영역에 속한다.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를 배경으로 연평균 고성장이 예상되고, 디지털 헬스케어는 고가 의료비를 줄이려는 각국 보건당국의 정책과 맞물려 보험 급여 제도 안으로 들어오는 흐름이 관측된다. 센서 반도체는 전기차, 자율주행, 산업용 사물인터넷, 스마트시티 인프라 등 미래 산업 전반에 필수 부품으로 사용된다. 강원특구가 세 축을 한 지역에서 엮어내면, 예를 들어 바이오센서를 활용한 헬스케어 기기나 반도체 칩 기반 진단 플랫폼 같은 융합 제품 개발이 수월해질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는 특구 지정을 계기로 도 전역에서 미래산업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30년까지 약 500개 이상 기업 유치, 매출 4조2000억 원 증가, 7800명 고용 창출을 가시적 성과 지표로 제시했다. 춘천·원주·강릉 3개 축을 중심으로 기업 집적도를 높이되, 장기적으로는 재난 대응 드론 등 강원 지역 특성을 반영한 추가 성장동력도 발굴해 특구 영역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재난·산불 감시용 드론에 고성능 센서와 통신 장비를 결합하는 모델 등은 강원의 지형과 기후를 고려할 때 실증 가치가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연구개발특구 형태의 혁신 클러스터는 이미 주요국이 경쟁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정책 수단이다. 미국은 보스턴, 샌디에이고 등 바이오·반도체 중심 허브를 중심으로 대학·연구소·벤처가 촘촘히 연결돼 있고, 독일과 프랑스는 공업지대와 연구소를 묶어 첨단 제조와 친환경 소재를 연계하고 있다. 중국도 광둥·장쑤 등지에 국가급 첨단기술개발구를 조성해 세제 혜택과 토지 공급 지원을 묶고 있다. 강원특구는 이들 사례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디지털 헬스케어와 바이오, 센서를 결합한 융합형 모델로 대덕·판교와는 다른 차별화를 모색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강원특구의 빠른 안착을 위해 재정과 제도를 동원한다는 방침이다. 과기정통부는 기술이전과 창업, 사업화 연계 기술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특구 전용 펀드 등 재정 지원 수단을 운용할 계획이다. 여기에 소득·법인세 감면과 같은 세제 혜택, 규제 샌드박스 형태의 실증 특례를 결합해 신기술 실험과 시장 진입 속도를 높인다는 전략도 제시했다. 특히 의료데이터 활용이 필수인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개인정보 보호 규정과 의료법, 의료기기법의 적용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관건으로 꼽힌다.  

 

규제와 제도 환경은 향후 강원특구의 성패를 좌우하는 변수다. 원격 모니터링이나 디지털 치료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 체계, 복지부의 비대면 진료 정책,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데이터 규제가 동시에 얽혀 있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한시적으로 허용된 서비스가 실제 제도화까지 이어지지 못할 경우, 기업은 장기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 반도체 센서 소재 분야에서는 환경 규제와 인허가, 바이오 신소재 영역에서는 생물안전과 윤리 심의 등 다층적인 규제 이슈가 함께 작동한다.  

 

전문가들은 강원특구가 연구개발 거점에 그치지 않고 실제 매출과 일자리로 이어지려면, 수도권·충청권 대형 클러스터와의 기능 분담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대덕과 판교가 대형 플랫폼 기업과 기초연구, 글로벌 투자사와 연결된 네트워크를 가진 만큼, 강원특구는 특화된 기술 영역과 실증 중심의 역할에 집중하는 편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강원 지역 내 대학과 지역 중소기업, 공공기관을 한 축으로 묶어 인력 양성과 시험·인증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확충할 필요도 제기된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은 강원특구를 5극3특 지역균형발전을 구현할 핵심 거점으로 규정했다. 그는 강원특구가 첨단산업 혁신 중심이자 지역경제 성장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산업계에서는 강원특구가 계획대로 2030년까지 기업 유치와 매출, 고용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그리고 바이오·헬스케어·센서 반도체를 묶는 융합 산업벨트 조성에 성공할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산업계와 정부, 연구계가 균형 있는 역할 분담을 이루는 것이 강원특구의 실질적 성과를 좌우하는 새로운 성장 조건이 되고 있다.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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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구#강원특별자치도#과학기술정보통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