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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 상용화·GPU 인프라”…韓자율주행 산업대전환→제도·시장 재편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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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2027년 레벨4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목표로 자율주행 실증도시 조성과 인공지능 학습 인프라 확충, 법·제도 정비를 포괄하는 산업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는 대규모 실증 기반을 도시 단위로 확대하고, 그래픽처리장치 기반 AI 학습센터를 구축하는 한편, 완전자율주행 시대에 맞춘 민형사 책임체계 개편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을 미국,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3대 자율주행차 강국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 구체적 정책 패키지 형태로 제시된 셈이다.  

 

국토교통부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관계부처와 함께 발표한 자율주행차 산업경쟁력 제고 방안에 따르면, 한국의 현재 자율주행 기술 수준은 미국자동차공학회 기준 레벨3로 평가되며, 미국과 중국이 선점한 레벨4 기술 격차 축소가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정부는 도시 전체를 실증구역으로 지정하는 자율주행 실증도시를 구축하고, 약 100대 규모 자율주행차를 투입해 실제 도시교통 환경에서 다양한 주행 데이터를 축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기존 시범운행지구 47곳 중심의 제한된 특례 실증 체계가 도시 단위 통합 실증 구조로 전환되며, 완성차 제조사, 관제 플랫폼 기업,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이 함께 참여하는 K-자율주행 협력모델도 실증도시 안에서 가동될 전망이다.  

“레벨4 상용화·GPU 인프라”…韓자율주행 산업대전환→제도·시장 재편
“레벨4 상용화·GPU 인프라”…韓자율주행 산업대전환→제도·시장 재편

정부는 교통 인프라 취약성이 누적된 농어촌과 교통취약지역을 대상으로 자율주행 버스 운영 지원을 강화해 사회적 편익과 기술 실증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운송 서비스 사각지대를 자율주행 기술의 실증 무대로 삼아 대중교통 접근성 제고, 고령화 지역 이동권 보완 등 사회정책과 산업정책을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동시에 자율주행 연구개발을 뒷받침할 인공지능 학습센터를 구축해 기업, 대학, 연구소가 고성능 GPU 인프라를 공유하도록 하고, 대규모 영상 데이터를 활용해 자율주행 인공지능의 판단과 제어를 통합하는 엔드 투 엔드 기술 개발을 지원하기로 했다.  

 

자율주행차에 특화한 차체 플랫폼, 차량용 반도체와 같은 핵심 부품 국산화도 추진된다. 정부는 국내 생산망 구축을 정책 목표로 제시하고, 해외 공동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국가핵심기술 수출 심사 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미래 자동차 분야 대학과 대학원의 정원 확대를 통해 고급 인재 공급 기반을 강화함으로써 기술, 인력, 공급망이 맞물린 자율주행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자율주행 기술이 고도의 융복합 산업인 만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력 정책 사이의 단절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설계를 진행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정부는 레벨4 상용화를 가로막아온 규제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선 허용·후 관리 체계 구축을 명시했다. 핵심은 자율주행 인공지능의 정확도를 좌우하는 영상데이터 규제 합리화에 맞춰져 있다. 현재는 촬영 사실을 표시한 차량으로 수집한 영상에서 사람과 사물에 가명처리를 거쳐야 R&D에 활용할 수 있으나, 앞으로 관련법 개정을 통해 원본 영상데이터를 연구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열어주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원본 영상 활용 시 자율주행 인식 정확도가 가명처리 영상 대비 최대 25퍼센트 개선된다는 분석을 근거로 제시하며,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또한 차주의 동의를 전제로 개인 차량을 통한 영상 데이터 수집을 허용하되, 이 경우에는 익명·가명처리를 의무화해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활용의 균형을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도로 시험 운행을 가능하게 하는 임시운행허가 제도도 손질된다. 지금까지는 주로 자율주행 개발사가 허가 주체였으나 앞으로는 운수사업자 역시 임시운행허가를 취득할 수 있고, 모든 자율주행차 유형이 패스트트랙에 해당하는 신속 허가 절차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된다. 교통약자 보호구역에서의 자율주행 허용, 안전기준 특례 지역 확대, 시범운행지구 지정권한의 시·도지사 이양, 자율주행차 원격주행 허용 등도 병행해 실증과 상용화의 제도적 문턱을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완전자율주행 상용화는 교통안전, 보험, 형사 책임, 택시업 등 기존 제도와 산업구조 전반의 재편을 요구하는 만큼 정부는 민형사 제도 정비 작업도 동시에 추진한다. 먼저 자율주행차 운행관리 의무를 담당할 법적 책임 주체로서 안전관리자 제도를 도입해 신호위반, 도주 운전과 같은 법규 위반에 대한 형사·행정 제재 대상을 명확히 규율할 계획이다. 자율주행자동차 도로운행법과 도로교통법 등 관련법 제·개정을 통해 운행사업자, 제조사 등 이해당사자별로 구체적인 준수사항을 규정해, 사람과 시스템이 혼재하는 과도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책임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다.  

 

사고 발생 시 손해배상책임 구조 역시 재정비된다. 국토교통부와 교통안전공단, 보험업계가 참여하는 사고 책임 태스크포스가 구성돼 내후년 가이드라인 마련을 목표로 분담 구조를 논의한다. 레벨4 이상 자율주행차의 결함으로 사고가 다발하는 상황을 상정해 제조사의 책임 비중을 확대하는 방향이 검토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제조물책임법상 결함 추정요건 가운데 손해가 제조업자의 실질적 지배영역에 속한 원인으로부터 초래됐을 것이라는 조건을 삭제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더불어 피해자의 신청에 따라 법원이 제조사의 자료 제출을 명령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되, 제조사의 영업상 비밀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도 병행 마련해 산업 경쟁력과 소비자 보호를 동시에 고려할 계획이다.  

 

면허체계 왜곡과 생계 기반 약화를 우려하는 택시업계와의 갈등 조정도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정부는 택시업계와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해 자율주행 상용화 과정의 단계적 이행과 기존 운송업 종사자의 전환 지원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가 도입될 경우, 도시 교통망의 효율성은 높아질 수 있으나 기존 택시 수요 감소, 운전자 일자리 축소 등 구조적 충격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통 서비스 혁신과 생계형 운수업 보호를 조화시키는 합리적 절충안 마련이 상용화의 사회적 수용성을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레벨4 상용화를 위한 정부의 이번 로드맵이 기술, 인프라, 제도, 사회적 갈등관리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방향성은 분명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예산 집행 속도와 규제 개정 일정, 지자체와 중앙정부 간 조율 능력이 성공 여부를 가를 변수라고 진단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로보택시 상용 서비스와 대규모 실증이 진행 중이며, 유럽 역시 고속도로 자율주행과 물류 자율주행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한국이 2027년이라는 시한 안에 레벨4 상용화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책 계획이 실제 도로 위에서 구현되도록 행정역량과 민간 투자, 기술혁신이 정교하게 결합돼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르고 있다.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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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자율주행차#레벨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