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커팅 가속”…넷플릭스, 시청 데이터로 방송산업 흔든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중심 시청 문화가 국내 방송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에서 ‘1위’에 오른 콘텐츠가 지상파·케이블 시청률 표에서는 ‘4퍼센트대’에 머무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전통적인 실시간 시청률 지표만으로 콘텐츠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시청자 이탈을 의미하던 코드커팅이 이제는 방송사와 통신사, 글로벌 플랫폼이 얽힌 데이터 전쟁의 한 축이 됐다고 본다. 향후 편성 전략, 광고 모델, 네트워크 투자 방향까지 OTT 시청 데이터가 좌우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넷플릭스 공개 2주차에 국내 쇼 부문 1위를 기록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TV 본방송 평균 시청률 3에서 4퍼센트에 그친다. 같은 콘텐츠에 대한 이용 행태가 플랫폼별로 극명히 갈리면서, 시청 행위 자체가 실시간 방송에서 주문형 스트리밍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코어 시청층이 야근과 불규칙한 생활 패턴을 가진 직장인이라는 점에서, 원하는 시간과 기기에서 이어보기와 건너뛰기 기능을 제공하는 OTT 환경이 기존 방송 편성표보다 우위에 서는 구조다.

기술적으로 OTT는 인터넷 기반 주문형 비디오 방식으로, 시청자가 콘텐츠 서버에 개별적으로 접속해 스트리밍을 요청한다. 이 과정에서 플랫폼 사업자는 시청 시작 시각, 중단 구간, 재시청 횟수, 시리즈 완주율 등 세밀한 이용 데이터를 수집한다. TV 시청률이 표본가구의 실시간 시청 여부만 측정하는 단일 지표라면, OTT는 수백만 계정의 행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결합해 맞춤 추천과 제작 투자 의사결정을 동시에 최적화하는 구조다. 특히 모바일과 스마트TV, 태블릿 등 멀티 디바이스 접속을 통합 계정 기준으로 분석해, 어떤 연령대가 어떤 시간대에 어떤 에피소드에서 이탈하는지까지 파악 가능하다.
이러한 데이터는 콘텐츠 제작과 광고 비즈니스에 직접 반영된다. 플랫폼은 특정 연령·직업군에서 반응이 높은 소재와 장르를 추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후속 시즌 제작 여부와 편성을 결정한다. 광고 부문에서는 시청자의 시청 이력과 관심사를 반영한 타깃형 광고 집행이 가능해진다. 전통 방송 광고가 프로그램 시청률을 기준으로 단일 노출 단가를 매기는 구조라면, OTT 광고는 이용자의 세그먼트별로 상이한 노출 가격과 빈도를 적용할 수 있다. 코드커팅이 확대될수록 광고주는 정교한 타깃팅이 가능한 디지털 플랫폼으로 광고비를 이동시킬 유인이 커진다.
국내 시장에서도 방송사와 통신사가 공동으로 OTT를 운영하거나, 별도 플랫폼에 콘텐츠 공급자로 참여하는 방식의 생태계 재편이 진행 중이다. 통신사는 초고속 인터넷과 모바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용량 스트리밍 품질을 앞세우며, 자체 OTT 또는 제휴 OTT의 가입자를 모으고 있다. 반면 글로벌 플랫폼은 오리지널 콘텐츠와 추천 알고리즘 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이용 시간을 흡수하는 중이다. 결국 시청자는 실시간 채널 번호가 아니라, 홈 화면에 노출된 썸네일과 개인화 추천 목록을 통해 콘텐츠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코드커팅 현상이 이미 본격화된 상태다. 미국에서는 케이블 TV 가입 해지와 스트리밍 전환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전통 방송사가 자체 OTT를 출범시키거나 스포츠 중계권을 스트리밍 중심으로 재편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유럽과 일본 역시 통신사와 방송사가 연합한 통합 OTT가 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국내 시장 역시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케이블이 각각 개별 플랫폼을 유지하기보다, 데이터와 광고를 중심으로 한 합종연횡이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규제와 정책 측면의 과제도 부각되고 있다. OTT는 방송법과 전기통신사업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이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영역으로, 전통 방송과 동일한 규제 틀을 적용할지 여부가 논쟁 대상이다. 특히 시청 데이터가 광고와 추천 알고리즘에 활용되는 과정에서, 프로파일링과 맞춤 광고에 대한 사전 동의, 데이터 보관 기간과 익명화 수준을 둘러싼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외에서 플랫폼에게 일정 수준의 알고리즘 투명성과 데이터 활용 내역 공개를 요구하는 법제 논의가 진행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방송·미디어 산업의 경쟁력이 콘텐츠 제작 역량뿐 아니라 데이터 분석과 네트워크 인프라, 광고 기술을 아우르는 종합 역량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일정 수준 이상의 초고화질 스트리밍 품질을 안정적으로 제공하지 못하면 시청자 이탈이 빠르게 발생하고, 시청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면 OTT 환경에 맞는 기획과 편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산업계는 시청 행태 변화가 전통 방송 구조를 어느 속도로 재편할지, 그리고 글로벌 OTT와 국내 사업자 간 협력과 경쟁이 어떤 균형을 찾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