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성범죄 증거도 본다”…성범죄 디지털 포렌식, 사법 신뢰 시험대
인공지능과 디지털 포렌식 기술이 성범죄 수사의 핵심 도구로 부상하면서, 사법 판단의 신뢰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 교사와 제자 간 부적절한 관계 의혹을 둘러싼 공방에서 코스프레 교복에 남은 정액, 스마트폰 문자, 호텔 출입 기록 등 각종 디지털 흔적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다. 수사기관은 DNA 감정과 전자기기 분석 결과를 근거로 판단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행위가 있었는지까지 입증하는 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업계와 법조계에서는 성범죄 수사에서 정밀 데이터 분석 기술 의존도가 커지는 만큼, 증거 해석 기준과 디지털 포렌식 절차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당사자 측은 교복과 속옷에 남은 체액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사설 감정기관에서 DNA 간접 대조를 진행해 남학생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과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또 코스프레 의상 주문 내역, 특정 날짜별 호텔 투숙 기록, 문자 메시지 내용까지 제시하면서 수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수사기관은 관련 물증과 통신 기록 등 디지털 포렌식 결과를 검토했으나, 피해자가 만 18세가 되기 전 시점의 성관계 여부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불기소 처분했다. 같은 데이터를 두고도 수사기관과 당사자 측의 해석이 갈리면서, 디지털 증거가 갖는 증명력과 그 한계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모양새다.

성범죄 수사에서 디지털 포렌식은 문자와 메신저 기록, 위치정보, 클라우드 백업 파일, 사진과 동영상의 촬영 시간과 GPS 정보까지 광범위하게 다룬다. 여기에 DNA, 체액 성분, 섬유 조각, 피부세포 등 물리적 증거에 대한 유전자 분석과 화학 분석이 결합되면서, 사건 당시 행적과 관계를 퍼즐처럼 맞춰가는 형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반 영상 분석 기술을 활용해 호텔 복도 CCTV, 도어록 출입기록의 시간 패턴, 결제 내역까지 종합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특히 의류와 침구에 남은 미량의 정액 성분도 검출해 특정 개인과의 관련성을 판단하는 고감도 분석 장비가 실무에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수사에서 활용되는 기술의 정밀도가 높아질수록, 데이터가 말해주지 못하는 공백도 명확해진다. DNA가 검출됐다고 해서 언제, 어떤 동의 하에, 어느 장소에서 이뤄진 행위인지까지 특정되지는 않는다. 의류에 남은 체액이 현장 사용 당시 발생한 것인지, 이전 시점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디지털 메신저 기록 역시 시간대와 호칭, 표현 수위로 관계의 성격을 유추할 수는 있지만, 실제 물리적 접촉이나 강압 여부를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결국 기술은 정황을 촘촘히 보완하는 도구일 뿐, 행위의 위법성 판단은 여전히 법원의 해석과 증언 신빙성 평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글로벌 수준에서 성범죄 디지털 포렌식은 이미 고도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미국과 유럽 수사기관은 스마트폰 전체 이미징 복제, 클라우드 계정 동기화 이력 분석, 위치 기반 서비스 로그 등을 통합 분석하는 플랫폼을 운영한다. 일부 국가는 인공지능으로 대규모 채팅 로그에서 grooming 패턴, 미성년자 대상 유인 문구를 자동 탐지하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반면 한국은 포렌식 장비와 분석 인력 역량은 빠르게 따라잡았지만, 교사와 학생처럼 지위와 관계가 영향을 미치는 성범죄 사건에서 디지털 증거를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특히 교육 현장의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성범죄 의혹에 대해, 디지털 증거 기준을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교사가 제자를 특정 호칭으로 부르며 개인적 메시지를 보낸 경우, 과도한 애정 표현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객관 기준, 반복성, 심야 연락 빈도 등을 기술적으로 정량화해 수사 참고 지표로 삼자는 제안이 나온다. 호텔 출입기록, 교통카드 이동 경로, 결제 데이터 등 다양한 디지털 흔적의 결합 분석 역시 인공지능 기반으로 자동화해, 특정 기간 내 밀접 동선과 접촉 패턴을 통계적으로 보여주는 방식도 논의되고 있다. 다만 이런 기술이 자칫 과도한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 있어, 법적 근거와 영장 기준을 더 엄격히 설계해야 한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정책 측면에서는 피해자 보호와 증거 확보 간 균형이 핵심 과제로 떠오른다. 성범죄 수사에서 디지털 증거 수집 범위를 넓히려면, 피해자의 휴대전화와 계정에 대한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지만, 이 과정에서 2차 피해 가능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 사건의 경우 미성년자 혹은 막 성인이 된 학생이 연루되는 만큼, 디지털 자료 열람과 공개 범위를 단계적으로 제한하고, 포렌식 결과 보고서에서도 신원 정보를 최소화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교사와 공공기관 종사자에 대해서는 업무용 기기와 메신저 사용을 별도로 관리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비윤리적 대화 패턴이 감지될 경우 경보를 주는 내부 통제 솔루션 도입 논의도 시작됐다.
업계에서는 성범죄 전담 디지털 포렌식 솔루션 시장이 향후 커질 것으로 본다. 문자와 메신저뿐 아니라, 사진 속 메타데이터, 기기 간 블루투스 접속 흔적, 호텔 객실 내 사물인터넷 센서 로그까지 통합 분석하는 고급 수사툴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유전자 분석 분야에서도 소량의 체액으로도 혼합 DNA를 분리해 개별 인물 기여도를 추정하는 알고리즘, 체액의 노화 정도를 기반으로 시간 경과를 추정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다만 이런 기술이 실제 법정에서 어느 수준까지 증거력으로 인정될지는 각국 판례 축적과 법제 논의가 필요하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디지털 포렌식과 유전자 분석이 성범죄 수사의 필수 인프라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모든 진실을 대신 말해주지는 못한다며, 개별 사건에서 동일한 데이터를 두고도 해석이 갈리는 상황이 반복될 경우, 오히려 사법 불신이 커질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범죄 수사에서 기술의 역할과 한계를 법과 제도로 명확히 규정하고, 포렌식 절차와 증거 평가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산업계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첨단 수사 기술이 실제 시장과 제도에 어떻게 안착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