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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사경 건보공단 직원 확대”…의협, 권한 남용 우려 표해 의료현장 긴장

강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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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 재정 관리와 의료 규제의 경계선에서 의료계와 정부·공단 간 충돌이 거세지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누수 차단을 명분으로 건보공단 직원에게 특별사법경찰 권한을 부여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강하게 반발하면서다. 연명의료 중단에 인센티브를 붙이려는 논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한방 난임치료 지원 확대 논쟁까지 겹치며, 의료 재정 운영과 의료기술 검증 방향을 둘러싼 정책 논의가 한층 예민해지는 모습이다. 의료계는 수사 권한과 재정 인센티브가 결합될 경우 진료 행태 뿐 아니라 디지털 헬스·보험심사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18일 정례브리핑에서 건보공단 직원에 대한 특별사법경찰 권한 부여 정책과 관련 법안 추진에 우려를 공식 표명했다. 요양급여 부당청구 문제는 사무장병원 불법 개설과는 성격이 다른데, 현행 공단 심사와 사후관리 체계만으로도 부당청구 적발과 환수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특사경 권한을 공단에 부여하는 것은 제도 취지에서 벗어난 과도한 공권력 확대라는 것이 의료계의 시각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누수 차단을 위해 건보공단의 수사 역량 강화를 검토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16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와 소속·산하기관 업무보고 자리에서 건보공단 특사경 인력과 관련해 필요한 만큼 지정하라고 주문했다. 앞서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부당 진료비 청구와 관련해 특사경 권한이 없어 수사 의뢰 후 평균 수사 기간이 11개월가량 소요된다고 호소한 바 있다.

 

특별사법경찰은 특정 분야에서 한정된 수사권을 행사하는 제도로, 불법 개설 의료기관 단속, 보험사기 적발 등에 활용돼 왔다. 현재 사무장병원 단속은 보건복지부 특사경, 경찰 전담수사팀, 지방자치단체 사법경찰단이 맡고 있다. 의협은 이 같은 수사체계가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공단 직원에게까지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면 중복 수사와 권한 남용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사무장병원은 의사 면허를 빌려 개설한 불법 의료기관으로, 과잉진료와 허위청구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을 잠식하는 대표적 요인으로 꼽혀 왔다.

 

의협은 건보공단의 제도적 지위도 문제 삼았다. 공단은 의료기관과 요양급여 수가 계약을 체결하는 당사자로, 강제지정제와 임의조사권을 통해 이미 우월적 지위에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수사권까지 결합될 경우 의료기관은 공단에 대한 권력적 종속관계에 놓일 수 있고, 이는 적극적 진료를 위축시키고 방어적 진료를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환자 안전을 위한 적정 진료보다, 추후 분쟁과 조사를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진료 쪽으로 유인이 형성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인력에게 수사 권한을 부여하는 데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의협은 공단 직원은 본래 보험자 기능 수행을 위한 행정 인력인데, 수사 전문성과 법률 소양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법권을 부여하는 것은 심각한 위험을 내포한다고 비판했다. 의료 정보와 청구 데이터가 디지털 형태로 집중된 공단에 수사권까지 더해질 경우, 빅데이터 분석 결과가 사실상 수사 단서로 직결되며 의료기관을 압박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의료계에서 나온다.

 

사무장병원 근절 대책과 관련해 의협은 수사권 확대 대신 구조적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의료기관 개설 단계에서의 검증을 강화해 위장 개설을 사전에 차단하고, 위법행위에 가담한 주체가 먼저 신고할 경우 제재를 완화해주는 리니언시 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한의사협회에 대한 자율징계권 법제화도 요구했다. 현행 제도에서는 의료계 내부 자율규제가 제한적인 만큼, 전문 직역 스스로가 비윤리적·불법 행위를 걸러낼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재정 누수 방지에 더 실효적이라는 주장이다.

 

의협은 건강보험 재정 논의가 생명윤리와 직결된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데도 우려를 드러냈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에 대한 인센티브 도입 논의를 두고, 환자의 자기 결정권과 존엄한 죽음에 관한 사회적 합의 위에 세워진 제도라고 강조했다. 제도의 어느 과정에도 비용 절감이나 재정 효율성 같은 경제 논리는 개입돼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연명의료 중단과 연계된 인센티브가 도입될 경우 제도의 근본 취지가 훼손될 수 있고, 의료기관이나 의료진이 연명의료 중단을 권유하거나 유도하는 구조로 비칠 소지가 크다고 경계했다.

 

의료기술의 과학적 근거와 건강보험 재정 투입 기준을 둘러싼 논쟁도 이어졌다. 의협은 한방 난임치료 지원 사업에 대해 현재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객관적·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임상 근거도 충분치 않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거나 국가가 치료 효과를 사실상 보증하는 듯한 정책을 추진하면 난임 환자들에게 잘못된 기대를 심어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근거 기반 의학에 기초한 보험 급여 체계가 흔들릴 경우, 디지털 난임 진단·배란 예측 솔루션 등 첨단 바이오·헬스 기술과의 형평성 논란도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의협은 정부와 지자체에 한방 난임 지원사업을 중단하고, 해당 사업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객관적 연구, 투명한 자료 공개를 우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제 임신 성공률, 유산·부작용 발생률, 기존 보조생식술과의 비교 연구 등 정량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적 재원을 투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과학적 검증 결과를 토대로 급여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에서, 향후 임상데이터 수집과 공공 데이터베이스 구축 여부가 정책 결정의 핵심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

 

한편, 한의사 단체와 정부 간 갈등도 표면화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17일 성명을 내고,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한의약 난임치료의 과학적 입증이 어렵다는 취지로 발언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한의협은 복지부 내부 자료를 무시하고 개인적 의견을 피력한 발언이라고 규정하며, 한의치료로 난임을 극복했다고 믿는 난임부부와 한의계에 대한 진솔한 사과를 요구했다. 양측의 공방은 근거 중심 의학과 전통의학의 역할, 그리고 건강보험 재정 지원 기준을 둘러싼 구도 속에서 장기화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건강보험공단 특사경 권한 부여 논쟁, 연명의료 인센티브 논의, 한방 난임 지원사업 갈등은 모두 의료 재정과 수사 권한, 과학적 근거와 윤리가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디지털 청구 시스템과 의료 빅데이터 분석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누가 어떤 권한으로 데이터를 해석하고 제재를 가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중요해지고 있다. 산업계와 의료계, 정부와 환자단체는 기술과 제도, 재정과 윤리의 균형점을 어디에 둘지 치열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으며, 이번 쟁점들이 향후 제도와 산업 구조 방향을 가를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와 정책당국이 어느 지점에서 절충점을 찾을지에 따라, 의료 현장의 신뢰와 국가 건강보험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이 갈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강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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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국민건강보험공단#특별사법경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