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 실무협의 재개”…박정성 실장, 대미 투자·비자 문제 협상 난항
관세율 및 대규모 대미 투자 문제를 두고 한미 양국이 맞붙었다. 지난 7월 관세 협상 타결 이후 실무 논의가 미국 워싱턴DC에서 재개된 가운데, 자동차 관세 인하와 대미 투자 구성을 둘러싼 이견이 표면화되면서 협의가 진통을 겪고 있다. 여기에 한국 기업의 현지 비자 발급 문제와 농축산물 시장 개방 등 민감한 현안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정국이 격랑에 휩싸였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박정성 무역투자실장이 이끄는 한국 통상 실무대표단은 지난 7일부터 미국 무역대표부와 상무부 당국자들을 상대로 한미 관세협상 후속 실무협의를 진행 중이다. 이번 협의 테이블에서는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 자동차 관세 인하 실행 문제, 한국인 근로자 대규모 구금 사태에 따른 비자 발급 확대까지 폭넓은 현안이 오갔다.

박정성 실장 측은 “한국 기업의 이익 최대화를 전제로 민감한 현안도 우리 입장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미측과 협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미 투자 방식과 관련 “직접 투자보다는 보증 등 간접 지원으로 부담을 낮추고 싶다”는 점을 거듭 전달했다. 그러나 미국 측은 “한국의 선제적 이행”을 요구하며, 자동차 관세 인하를 미루고 조선·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 높은 비율의 직접 지분 투자를 고집하는 분위기다.
투자 이익 배분을 놓고도 양국 견해차가 두드러졌다. 한국은 ‘이익의 90% 재투자’ 해석을, 미국은 ‘90% 귀속 및 투자처 주도권’을 강조하고 있다. 자동차 관세 인하 역시 미국 측이 절차적 이유를 앞세워 집행을 미루고 있어, 실무채널에서 한국 측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자 문제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국 대표단은 이민단속 여파로 조지아주 내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공장에 투입된 근로자 300여명 이상이 구금된 데 대한 우려를 공식 제기했다. 박정성 실장은 “대미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비자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점을 미국 당국에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농산물 분야도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미국이 과채류 등에 대한 검역 절차 간소화와 추가 수입 확대를 압박하자, 산업부는 “쌀과 소고기는 합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못박으면서도, ‘과채류 수입 위생 협력 강화’ 조항 해석을 둘러싼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실무협의에서 투자 이슈가 미·일 구도와 비교해 어떤 결론을 내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일본은 투자금 회수 전 양국 수익을 절반씩, 회수 후엔 90%를 미국에 귀속시키는 방식으로 조율한 바 있다. 한국 대표단도 예산안에 1조9천억원 규모의 공적자금 출자를 반영한 가운데, 미국의 주도권 내지 ‘성과 과실 대부분 독점’ 움직임에 내부 부담이 커지는 형국이다.
정부는 실무협의 결과가 정리되면,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나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이달 중 미국을 방문해 장관급 협의를 최종 조율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8일 열린 범부처 통상추진위 회의에서는 주요 부처가 한미 실무 협상 현안에 대한 부처별 입장을 공유했다.
이날 협상이 어느 정도 마무리 수순에 가까워지면 장관급 확정이 진행될 전망이다. 정부는 향후 우리 기업 이익과 국익 극대화에 방점을 두고 미측과 추가 협상을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