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초음파로 난소암 복막전이 본다…국내 연구진, 수술전 난이도 예측 근거 제시
질 초음파 기반 영상 기술이 난소암 수술 전략을 바꾸는 도구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수술 전 일상적으로 시행하는 질·직장 초음파 검사만으로 복강 내 암 확산 정도와 수술 난이도를 예측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면서다. 난소암 치료에서 핵심 지표로 꼽히는 완전 절제율을 높일 수 있는 영상학적 지표가 추가된 셈이라, 향후 정밀 수술 계획 수립과 다학제 협진 구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이번 결과를 복막전이 평가 방식 전환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강동경희대학교병원은 편승연 산부인과 교수와 이종민 교수 연구팀이 질·직장 초음파 영상이 복강 내 암 확산 정도를 정확히 반영한다는 사실을 다기관 연구로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연구팀은 수술 전 초음파 영상 소견이 실제 개복 수술 중 평가한 복막암 확산 지표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분석해, 질 초음파를 난소암 수술 난이도 예측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번 결과는 외과종양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유럽종양학회지 최신호에 실렸다.

난소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진단 시점에 이미 복막이나 장, 간 등 주변 장기로 전이된 경우가 적지 않다. 생존율을 좌우하는 요소는 수술로 얼마나 완전히 종양을 제거하느냐, 즉 완전 절제율이다. 그러나 수술 전 복강 내 암이 어느 정도까지 퍼졌는지를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CT 컴퓨터단층촬영과 MRI 자기공명영상이 표준 영상 도구로 사용돼 왔지만, 수 밀리미터 단위의 작은 복막 전이나 복막 표면을 얇게 따라가는 병변은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 결과 수술실에 들어가서야 예상보다 광범위한 전이가 확인되고, 장 절제나 광범위 복막절제 같은 고난도 수술이 급하게 결정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연구팀은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할 수단으로 접근성이 높고 반복 검사에 유리한 질·직장 초음파에 주목했다. 질과 직장을 통한 내장 초음파는 골반 내 장기와 더글라스와 같은 골반 복막 함요부를 고해상도로 관찰할 수 있어, 복막 표면에 위치한 작은 병변 포착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다만 그동안 난소암 수술 난이도 예측 지표로 쓰기에는 객관적 상관관계 자료가 부족했다.
연구는 강동경희대학교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인하대병원이 참여한 다기관 공동 연구로 진행됐다. 연구팀은 2022년 2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세 기관에서 난소암, 난관암, 복막암으로 수술을 앞둔 환자 101명을 대상으로 질 또는 직장 초음파 검사를 실시했다. 초음파에서 더글라스와 부위 복막의 종양 확산 양상을 네 단계, 즉 없음, 세망결절형, 장막형, 종괴형으로 세분해 분류한 뒤, 실제 개복 수술 중 평가한 복막암 지수 PCI와 복막암 확산 예측지표인 Fagotti 점수와 통계적으로 비교했다.
PCI 복막암 지수는 복강을 13개 구역으로 나눠 각 구역의 종양 크기를 점수화한 수치로, 값이 높을수록 복막 내 종양 부담이 크다는 뜻이다. Fagotti 점수는 복강경이나 개복 수술 시 육안 소견을 기반으로 복막전이 정도를 평가하는 예측 지표로, 장 절제 여부와 광범위 수술 필요성을 가늠하는 데 활용된다. 연구팀은 이 두 지표를 초음파 영상의 파종 정도와 연동해 분석함으로써, 비침습적 영상 소견이 수술 현장의 실제 상황을 얼마나 대변하는지 검증했다.
분석 결과 질·직장 초음파에서 파종 양상이 심해질수록 PCI와 Fagotti 점수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p값이 0.05 미만으로 나타나 초음파로 분류한 네 단계 파종 양상과 실제 복막암 확산 정도 사이에 의미 있는 상관성이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세망결절형에서 장막형, 종괴형으로 갈수록 복막암 지수와 예측 점수가 함께 높아졌고, 이는 곧 수술 범위 확대와 장 절제 같은 고난도 술기의 필요성과 직결됐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CT나 MRI를 병행하지 않아도 질·직장 초음파만으로 수술 난이도와 장 절제 가능성을 사전에 추정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초음파는 방사선 노출이 없고 반복 검사가 용이하며, 검사 비용과 대기 시간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난소암 환자의 경우 항암화학요법 전후로 종양 부담 변화를 자주 모니터링해야 하므로, 접근성이 높은 영상 도구의 활용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번 연구는 일상 진료에서 이미 사용 중인 질 초음파가 수술 전략 의사결정까지 포괄하는 정밀 진단 도구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임상적 의미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연구에 따르면 암 파종이 초음파에서 관찰된 환자군은 그렇지 않은 환자군보다 장 절제 시행 비율이 약 두 배 높았다. 이는 수술 전에 초음파 영상만으로도 장 절제 가능성과 수술 시간, 출혈량 증가 등 고난도 수술 위험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대장외과나 비뇨의학과와의 다학제 협진 여부, 중환자실 병상 배정, 수술 인력 구성 등 자원 배분을 보다 효율적으로 계획할 수 있고, 환자와 보호자에게도 수술 범위와 위험도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국제적으로도 난소암 수술에서 CT, MRI 중심의 복막전이 평가가 여전히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고해상도 초음파를 활용한 세부 평가법 개발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복막전이성 난소암 환자에게 수술 전 복강경을 이용해 PCI를 직접 측정하는 전략이 쓰이기도 하지만, 시술의 침습성과 마취 부담이 단점으로 꼽혀 왔다. 이번 국내 연구 결과는 비침습적 초음파만으로 복강 내 병변 분포를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음을 제시해, 향후 글로벌 가이드라인에서 초음파 기반 예측 모델이 하나의 옵션으로 검토될 여지도 열었다는 평가다.
의료 AI 및 디지털 헬스 기술과의 연계 가능성도 있다. 질·직장 초음파는 검사자의 숙련도에 따라 해석 편차가 발생하기 쉬운 검사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이 한계로 언급한 대로 판독 기준 표준화와 대규모 후속 코호트 구축이 이뤄질 경우, 향후 초음파 영상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복막전이 패턴을 분류하고 PCI나 Fagotti 점수를 예측하는 임상 보조 도구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지역 병원이나 저자원 환경에서도 난소암 수술 난이도를 균질하게 평가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적 파급력이 있는 영역으로 여겨진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결과를 해석할 때 몇 가지 제약 조건을 함께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101명이라는 비교적 제한된 규모의 환자 집단과 약 2년에 그친 관찰 기간은 장기 생존율과의 연관성을 분석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다. 또한 초음파 검사자와 판독자의 숙련도에 따라 파종 형태 분류가 달라질 수 있고, 병원 간 장비 성능 차이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연구진은 다기관, 대규모 후속 연구를 통해 질·직장 초음파의 재현성을 검증하고, 객관적 판독 기준과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편승연 교수는 난소암이 복막을 따라 광범위하게 전이되는 특성상, 수술 전 종양 확산 범위를 정밀하게 예측하는 일이 치료 성적을 좌우하는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질 초음파 영상만으로 수술 난이도를 상당 수준 예측할 수 있음을 확인한 만큼, 향후 질·직장 초음파를 활용한 정밀 진단 프로토콜이 난소암 완전 절제율을 높이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연구가 실제 진료 현장에서 얼마나 빠르게 표준 진료 지침에 반영될지, 그리고 향후 AI·플랫폼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영상 기반 정밀의료 모델로 확장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